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나는 감염되었다”…소수자가 되자 그들 삶이 보였다

등록 2021-03-12 05:00수정 2021-03-12 13:57

인권전문가, 코로나 혐오와 차별을 온몸으로 겪다
‘성북구 13번 확진자’ 유엔 인권위원이 기록한 감염 이후의 삶
사회적 소수자 되어보니 “인간다움의 의미 ‘마음으로’ 깨달아”

그래픽 동혜원
그래픽 동혜원

나는 감염되었다: UN 인권위원의 코로나 확진일기

서창록 지음/문학동네·1만4000원

지난해 3월 그는 ‘성북구 13번 확진자’가 됐다. 같은 달 유엔(UN)체제학회 참석차 미국에 갔다가 코로나19에 걸린 것이다. 바이러스는 삶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채 병원에서 격리 치료를 받았다. 퇴원한 뒤에도 후유증에 시달리고 확진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나는 감염되었다>를 쓴 유엔(UN) 시민적·정치적권리위원회(자유권위원회) 위원이자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인 서창록의 이야기다.

서 교수는 코로나19 확진자가 된 이후 겪은 일들을 적어나갔다. 그가 병원에 입원한 기간 적은 메모, 에스엔에스(SNS)에 쓴 글 등을 토대로 담았다. 4부로 이뤄진 이 책은 감염경로, 확진 검사 과정, 병원격리, 퇴원 이후 회복기로 구성돼 있다. 코로나라는 감염병에 걸려 달라진 삶을 보여주는 ‘질병 서사’이자 확진자라는 차별과 배제의 대상이 된 인권전문가가 쓴 ‘코로나 인권 보고서’라고도 할 수 있다.

코로나 확진자가 된 그는 고립과 격리의 세계로 옮겨졌다. 그는 양성 판정을 받은 뒤 감염병 환자를 격리해 치료하는 음압 병실에 입원해야 했다. 음압 병실은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공간이다. 환자를 24시간 감시하는 카메라가 있다. 그곳에서 마땅한 치료제가 없어 말라리아 치료약 등 다양한 약을 먹으며 “실험용 쥐”가 된 듯 지냈다.

매일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내 곁엔 아무도 없다는 압도적인 고립감”에 시달렸다. 3주 입원 기간 내내 흰 벽을 응시하고 천장을 올려다보며 계속 웅얼웅얼 말하곤 했다. 가슴 답답함과 어지럼증으로 나타난 심리적 문제로 인해 정신과 치료제를 복용해야 했다. 남들에게 자신의 심리적 문제를 말하기도 쉽지 않았다. “코로나에 감염된 것도 말하고 싶지 않은데, 정신질환이 생겼다는 것까지 말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두려웠다.”

그를 더욱 힘들게 한 것은 코로나 확진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다. 인터넷 세상에서는 확진자라는 이유만으로 ‘바이러스 숙주’ 취급을 하고, 무차별적 ‘악플’이 끊이지 않았다. 혐오는 대상을 바꿔 퍼졌다. 중국인에서 시작해 집단감염이 일어난 대구·경북 지역, 신천지, 성소수자 등으로 이어졌다. 사람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저도 모르게 공포의 감정을 만들어”낸다. 이때 “인간의 본성에 있는 혐오”가 드러난다. “코로나 시국이 장기화되면서 기약 없는 상황에 지친 상태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책임을 돌리고, 방역 기준을 지키지 않는 시민들에 대해 분노한다. 실직자는 급증하고 취업준비생들의 상실감 등 부정적 에너지가 사회적으로 폭발했다.”

혐오는 배제로 이어지고 낙인으로 확산된다. 팬데믹 시기에 드러난 인권 문제 중 하나가 ‘사회적 낙인’이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때도 마찬가지였다. 메르스 환자들의 유가족과 격리 해제자를 대상으로 한 상담 결과를 보면, 그들이 가장 힘들었던 것은 잘못된 정보로 인한 사회적 낙인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완치 뒤에도 계속 병원에 머물러야 하는 고통과 퇴원 후에도 집에만 머물러야 하는 갑갑함을” 느끼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 역시 퇴원 뒤 두려움이 더욱 크게 밀려왔다. 확실치 않은 재감염 가능성, 어지러움 같은 후유증, 나를 불안해하는 듯한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떳떳하게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지 못했다. 코로나에 감염된 피해자임에도 가해자가 된 것 같은 죄책감과 스트레스에 휩싸였다. 사람들이 “코로나19를 경험한 나를 두려워할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컸다.

당시 완치 뒤 다시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은 재양성자에 관한 뉴스가 나오면서 확인되지 않은 괴담까지 인터넷에 퍼졌다. 재양성자가 전염력이 없다는 정부 발표에도 주위 사람들이 자신을 피하는 걸 눈치챘다. 확진자를 바라보는 부정적 시선은 “약자를 강제로 침묵시킨다.” 그 침묵은 “피해자가 당당히 자신의 권리를 말하고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는 환경, 피해자가 피해자로서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됐을 때 비로소 깨질 수 있다.

사회적 소수자가 되니 그제야 그들의 삶이 보였다. 인권전문가로 활동한 그에게 코로나 치료 기간은 온몸으로 배우는 ‘인권 학습’의 시간이었다. 난민, 장애인, 성소수자 등이 차별과 배제를 당했을 때 어떤 마음이었는지,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을 어떻게 느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예전보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모든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을까를 깊이 생각했다. 인권은 오직 ‘함께’라는 가치 위에 굳건하게 설 수 있다는 것도 다시 한 번 되새겼다. “지금까지의 인생이 인권에 대해 ‘머리로’ 찾는 과정이었다면, 코로나 감염 경험은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마음으로’ 깨닫게 해주었다.”

코로나로 인해 강제로 쉬면서 자신이 살아온 삶도 돌아봤다. 세계의 고통받는 사람들, 편들어줄 이 없는 약자를 위한 ‘대의’만을 생각하느라 나를 돌보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일에 소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제야 인생의 중요한 가치를 자신에게 묻고 답을 찾았다. “내가 나를 소중히 여기며 가족과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인권 역시 나와 가족의 존엄성을 소중히 여기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서창록 교수는 10일 <한겨레>와 한 전화인터뷰에서 “<나는 감염되었다>라는 책 제목은 코로나 감염뿐 아니라 편견과 차별 등 사회의 잘못된 생각에 감염된 모습을 의미한다. 여기에 필요한 백신은 인권 교육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코로나 상황에서 이 책을 보며 사람이 사람으로서 존엄성을 가지고 함께 살아가는 일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믿음’이 당신을 구원, 아니 파멸케 하리라 [.txt] 1.

‘믿음’이 당신을 구원, 아니 파멸케 하리라 [.txt]

[꽁트] 마지막 변신 2.

[꽁트] 마지막 변신

500억 들이고도 2%대 시청률…우주로 간 콘텐츠는 왜 잘 안될까 3.

500억 들이고도 2%대 시청률…우주로 간 콘텐츠는 왜 잘 안될까

‘인공초지능’ 목전, 지능의 진화 다시 보다 [.txt] 4.

‘인공초지능’ 목전, 지능의 진화 다시 보다 [.txt]

일 피아니스트 후지타 마오 “조성진이 롤모델…임윤찬은 놀라운 재능” 5.

일 피아니스트 후지타 마오 “조성진이 롤모델…임윤찬은 놀라운 재능”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