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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시리아 친구의 눈으로 ‘차별의 세상’을 보다

등록 2021-03-19 04:59수정 2021-03-19 10:10

중학교 국어교사와 시리아 유학생이 친구 된 이야기
우정 쌓으며 차별과 편견 허물고 소수자와 공존 배워

내 친구 압둘와합을 소개합니다: 어느 수줍은 국어 교사의 특별한 시리아 친구 이야기

김혜진 지음/원더박스·1만4800원

“안녕하세요? 압둘 와합이라고 합니다.” 2012년 7월, 중학교 국어교사 김혜진씨는 낯선 청년을 만났다. 어색한 한국어 말투로 인사를 건넨 그는 시리아에서 온 유학생이었다. ‘와합이 한국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중학교 은사의 부탁을 받고 이뤄진 만남이었다. 그는 “새까맣고 숱이 많은 곱슬머리와 상당히 높게 솟은 코, 반짝이는 커다란 눈동자”를 가진 와합의 외모에서 낯섦과 이질감을 느꼈다. 잘 알지 못하는 이슬람교도에 관한 종교 용어를 꺼내는 그를 보며 김씨는 ‘이 청년이 어떤 사람인가?’라는 의심과 두려움이 밀려왔다. 이날의 어색한 만남은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세계, 지금껏 관심도 없었고 전혀 몰랐던 낯선 세계로의 문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내 친구 압둘와합을 소개합니다>는 국적도, 성장 배경도, 종교도 다른 지은이 김씨와 압둘 와합이 친구가 된 이야기다. 와합이 한국에서 겪은 차별과 편견, 난민이 된 와합 가족들이 겪는 아픔을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이 기록돼 있다. 6장으로 구성된 책에는 각 장 끝에 시리아인의 관점에서 시리아 역사·전쟁·문화 등을 설명하는 ‘압둘와합이 들려주는 시리아 이야기’도 담았다.

김씨의 친구 와합은 시리아에서 변호사로 활동했다. 법 공부를 더 하려고 유학을 준비하다가 전액 장학금이 보장된 프랑스 대신 국교도 수립되지 않은 한국을 선택했다. 시리아에 온 한국인 유학생과 친해진 뒤 “한국과 시리아를 잇는 다리가 되겠다”는 마음을 품었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 한국의 대학원에서 상법을 공부하며 ‘아랍 법과 한국 법 비교 연구’를 주제로 박사 학위 논문을 준비 중이다.

내전이 계속되는 시리아를 떠나 터키에 온 압둘 와합 가족은 난민이 되었다. 가운데 파란 셔츠를 입은 사람이 압둘 와합이다. 원더박스 제공
내전이 계속되는 시리아를 떠나 터키에 온 압둘 와합 가족은 난민이 되었다. 가운데 파란 셔츠를 입은 사람이 압둘 와합이다. 원더박스 제공

김씨는 와합을 만나며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편견을 마주한다. “이슬람이란 말을 들었을 때, 무심코 떠올린 것은 ‘네 명의 부인, 테러, 명예 살인, 무섭다, 의심스럽다’와 같은 부정적인 단어들”이었다고 그는 고백한다. 처음 와합을 만났을 때 들었던 의심과 경계심은 그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다. 김씨는 친구 와합의 눈으로 그가 처한 차별의 세상을 본다. 김씨는 와합이 대학원 면접을 다닐 때 “무슬림과 이슬람이 싫다”고 노골적으로 입학을 거부한 교수의 이야기를 듣고 분노한다. 그의 다른 외모를 보고 피하는 사람들과 인터넷에 이슬람 혐오를 드러내는 악플을 예전과 달리 깊이 들여다본다. 가까운 친구가 한국사회에서 마주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뉴스에서 보는 시리아 내전, 폭격, 난민 등에 관한 것은 이제 더는 먼 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와합의 가족들은 시리아에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와합의 고향인 락까가 극단주의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의 본거지가 되면서 와합의 동생들은 그들에게 강제 징집을 당할 위기에 처했다. 그런 상황에 부닥친 가족을 생각하는 와합은 시리아의 상황에 따라 “잠을 못 이루고, 예민해지고, 절망하”고 있었다. 그는 “시리아의 가족들과 연락이 잘 되지 않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라는 와합의 말에 담긴 아픔과 고통을 조금씩 이해한다. “앎은 이해를 불러오고 이해는 공감으로 향하는 길”이었기에.

다른 나라의 친구를 만나니 다른 문화도 알게 됐다. 시리아에선 친한 친구끼리 자주 만나는 것은 물론이고 연락해서 만나자고 하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말이 나온 그날 만나서 식사하거나 차를 마신다. 이게 일상이고 예의다. 그런 문화에서 자란 와합은 한국 친구들에게 매일 연락했다. 하지만 한국 친구들은 그가 만나자는 약속을 잡자면 며칠 뒤나 다음 주로 미뤘다. 시리아에서는 한 해에 몇 번 만날까 말까 하는 사이에서나 일주일 뒤에 만나자는 약속을 잡는다고 한다. 와합은 “내가 친구들을 생각하는 것만큼 친구들은 나를 가까운 사이로 생각하지 않는구나” 생각했다고 김씨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김씨는 시리아에서 탈출해 터키에 온 와합의 가족을 만났다. 난민이 된 와합 가족은 그를 편안하게 가족의 구성원처럼 맞아주었다. ‘따뜻한 환대’였다. 가족은 다정하고 웃음이 많고 유쾌했다. “나에게 (터키) 이즈미르에서의 시간은 난민을 만난 시간이 아닌 그저 ‘친구의 친절한 가족과 함께한 아름답고 행복한 여름날’일 뿐이다. 난민이 되었지만 여전히 평범하면서도 소중한 삶을 사는 이들과 같이한 시간”이었다.

김씨와 와합의 우정은 ‘사회적 연대’로 이어졌다. 둘은 시리아 난민을 돕는 시민단체 ‘헬프시리아’ 활동을 함께하고 있다. 와합은 헬프시리아 사무국장을, 김씨는 운영위원을 맡고 있다. 그들은 시리아 난민의 상황을 알리는 거리 캠페인, 난민 캠프에 구호물자 보내기 등을 해왔다. 김씨에게 헬프시리아 활동은 멀리 있는 소외된 이웃에게 다가가는 첫 발걸음이 되었다.

“와합과 친구가 되니, 그 친구가 무슬림이나 외국인이라서 겪는 많은 차별이 내 눈에도 보이기 시작했다. 내 친구의 가족이 난민이니 난민 문제에도 저절로 관심이 갔다. 더 나아가 이주민이나 외국인 노동자 같은 사회 소수자에게도 점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그들도 누군가에겐 친구이고 소중한 사람일 테니까.”

김씨는 다른 이들도 자신처럼 낯선 존재와 친구가 되는 경험을 하길 바란다. 특히 미래 세대인 청소년들도 책의 독자가 되길 원한다고 했다. 그의 바람이자 이 책을 쓴 이유는 ‘책머리’에 이렇게 적혀 있다. “난민이나 이주민과 함께 사는 삶은 이제 더는 다른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책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소수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생각해 보고, 공존하는 삶에 대해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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