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위안부’: 애국심과 인신매매
니시노 루미코·오노자와 아카네 책임편집, 마에다 아키라 외 10인 지음, 번역공동체 ‘잇다’ 옮김/논형·1만9800원
“필리핀 다바오에는 같은 마을에서 온 세명의 여성이 있었다. 25세, 19세, 22세였던 그녀들은 간사이 사투리를 썼다. ‘남방특요원’에 응모해서 왔는데, 현지에 도착하고 나서야 ‘위안부’ 일을 하게 될 것을 알았다고 한다.”
<일본인 ‘위안부’>는 제목 그대로 일본인 ‘위안부’의 존재를 다룬 책이다. 전시 일본이 조선, 중국, 대만, 필리핀 등 식민지 여성들을 ‘위안부’로 강제동원해 성폭력을 가했다는 사실은 이제 상식이 됐지만, 자국민인 일본 여성을 대상으로도 같은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은 아직 생경하다. 당연하다. 가해국 국민인데다 ‘매춘부’ 출신이 다수였던 일본인 ‘위안부’는 스스로 피해 사실을 말하지 않았고, 전시 범죄를 감추기에 급급한 일본 사회도 이 문제를 앞장서 공론화하지 않았다. 현재까지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스스로 밝힌 일본인 여성은 시로타 스즈코(가명) 포함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피해 사실이 저절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을 쓰고 엮은 ‘전쟁과 여성에 대한 폭력 리서치 액션 센터’ 내 일본인 ‘위안부’ 프로젝트 팀은 군부와 내무성 자료, 일본 병사 수기 등 사료는 물론 잡지와 논픽션까지 3년 동안 폭넓게 조사한 끝에 이들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낸다.
일본인 ‘위안부’는 조선인 ‘위안부’와 같고도 달랐다. 국가의 지시로, 업자가 동원하는 ‘가해의 메커니즘’ 면에선 일관성을 보였지만 본국과 식민지 출신이라는 신분 차이로 인해 피해 경험은 크게 달랐다.
일본 지바현 다테야마시에 위치한 ‘가니타 부인의 마을’의 교회 지하에 위치한 추모실. 이곳에는 시로타 스즈코 등 일본인 ‘위안부’ 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책에 수록된 ‘경찰청 관계 공표자료’에는 “중일전쟁 발발 직후부터 군부·내무성 등이 작부 등의 일본인 여성을 대상으로 ‘위안부’의 대규모 징집을 명령했다”는 사실이 기재되어 있다. 동원 과정에서 취업사기나 인신매매가 횡행했다는 점도 당시 조선과 비슷했다. 국가의 지시를 받은 업자들은 일본 여성을 대상으로 ‘특요원’, ‘특수간호원’을 모집한다는 거짓 공고를 냈는데, 이는 ‘중국 방직공장에서 사람을 구한다’, ‘간호원으로 일한다’는 말에 속아 위안소로 갔던 한국인 피해자 할머니들의 울먹임을 떠오르게 한다.
일본 지바현 다테야마시 ‘가니타 부인의 마을’에 세워진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진혼비. 일본인 ‘위안부’ 피해사실을 최초로 드러낸 시로타 스즈코의 요청으로 세워졌다. 출처: 비영리활동법인 아와문화유산포럼 홈페이지
반대로 조선인 ‘위안부’와 구별되는 지점도 명백히 존재한다. 일본인 ‘위안부’ 중에는 “위안소에서 병사들을 고무하는 일은 나라를 위하는 것”, “전사하면 군속으로서 야스쿠니에 모셔진다”는 말에 동요돼 위안소로 향한 이들도 있었다. “일본 사회에서 소외되어 온 여성의 강력한 콤플렉스를 전쟁 내셔널리즘이 이용한 것”이다. 위안소에서 일본인은 ‘요금’, 처우면에서 조선·중국인에 비해 ‘엘리트’ 대접을 받았는데, 이런 방식으로 “제국의식’을 심어줌으로써 “자신이 받는 피차별, 피해자성, 여성차별을 보기 어렵게” 했다는 분석도 있다. 전쟁을 성전(聖戰)이라 믿어온 병사가 자신의 가족이 ‘위안부’로 차출되면 크게 동요할 것을 우려해 ‘성의 방파제’로 일한 ‘전력’이 있는 여성(유곽에서 일한 여성)을 위주로 ‘위안부’를 꾸렸던 일본과 달리, 조선인 ‘위안부’는 성병으로부터 병사를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성 경험 없는 미성년 여성 위주로 구성됐다는 점도 다르다.
‘가해국의 피해자’이자 ‘매춘부’ 출신이 적지 않은 일본인 ‘위안부’의 존재를 마주하는 일은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나면 일본의 가해행위에서 드러나는 선명한 ‘일관성’에 찜찜함이 남지 않는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