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을 세탁해 드립니다!

[책&생각] 한미화의 어린이책 스테디셀러

걱정 세탁소
홍민정 글, 김도아 그림/좋은책어린이(2020)

어린 시절 “작은 일에 감동하고 큰일에 대범하라”라는 말이 멋있어 보여 그런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살다 보니 대체로 큰일에 비겁하고 ‘조그만 일에 분개’한다. 시인 김수영은 설렁탕집 주인을 탓하거나 야경꾼을 증오하였지만 나는 대체로 개인적인 불안과 두려움이 낳은 걱정에 사로잡혀 산다.

돌아가신 이윤기 선생은 실패나 좌절 같은 부정적 경험의 긍정성에 관한 이야기를 즐겨 했다. “겨울이 오고 있는데도 화분 몇 개는 집 안으로 들여놓지 않고 있다. 겨울을 경험하지 않으면 다음 해 꽃을 피우지 못하는 식물도 있다. 대부분의 알뿌리 식물은 겨울을 경험해야 다음 해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만사를 긍정적인 렌즈로 바라보는 일이 중요하지만 실은 콤플렉스, 실패, 좌절, 걱정 같은 두려운 마음이 에너지가 될 때도 많다.

홍민정의 <걱정 세탁소>는 걱정을 주제로 삼은 동화다. ‘걱정이 많은 편’이라고 밝힌 작가가 다음으로 선보인 동화가 따듯한 마음을 지닌 ‘고양이 해결사 깜냥’인 데는 이유가 있어 보인다. 초등학교 3학년 재은이는 개학 첫날인데 지각하면 어쩌나, 개구쟁이 승민이랑 짝이 되면 어쩌나, 진단평가를 못 보면 어쩌나, 직장에 다니는 부모님 대신 재은이를 길러준 할머니가 아픈데 돌아가시면 어쩌나 걱정이 많다. 걱정이 걱정을 낳고, 걱정의 무게는 늘어만 간다. 이런 재은이 앞에 브이아르(VR) 세탁기가 걱정을 세탁해준다는 ‘걱정 세탁소’가 떡하니 나타난다. 세탁할 시간을 선택하면 그 시간만큼 걱정이 없어진다니 솔깃하다. 처음 1시간 코스에 이어 12시간 코스 급기야 30일 코스를 선택한다. 이제 재은이는 만사태평이다. 미끄럼틀에서 다칠 걸 두려워하지 않고, 발표를 못 할까 봐 걱정하지도 않는다. 이렇게 영원히 걱정 없는 세상에 살면 되는 걸까. 재은이에게 걱정하는 마음은 영영 필요 없는 걸까.

동화는 어린이가 마법의 공간에 들어가 현실의 소망을 직접 겪도록 이끈다. 판타지 공간에 들어가 새로운 힘을 부여받는 설정은 <만복이네 떡집>을 떠올리게도 한다. 다만 <걱정 세탁소>는 영원히 마법의 공간에서 머물지, 현실을 선택할지를 재은이의 몫으로 남긴다. 동화를 읽을 어린이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혹시 영원히 걱정 없는 세상에 머물고 싶다면 이유를 하나씩만 물어보자. 쑥떡을 먹은 만복이라도 된 듯 어린이의 마음에 숨은 이야기가 들릴지도 모른다.

얼마 전 인터뷰를 했던 소설가는 이런 말을 했다. “어릴 때부터 늘 단점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소설가가 되니 장점이 되더라고요.” 세상에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듯 한 사람의 단점은 곧 장점이기도 하다. 시험을 걱정하는 마음이 있어야 공부를 열심히 하고, 발표가 걱정스러워야 준비를 한다. 마감이 두려워야 원고를 쓴다. 무엇보다 할머니를 걱정하는 재은이의 마음은 할머니에게 위로와 힘이 된다. 걱정을 걱정하지만 않는다면, 걱정은 정상이다. 초등 3학년 이상.

출판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