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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편혜영표 스릴 랜드로의 초대

등록 2021-03-26 05:00수정 2021-03-26 09:42

어쩌면 스무 번
편혜영 지음/문학동네·1만3500원

편혜영(사진) 소설의 뚜렷한 특징 하나는 스릴이다. 편혜영은 얼핏 사소하고 범상해 보이는 상황에도 뜻밖의 불안과 공포를 심는 데 능하다. 그의 소설을 읽는 독자는 친숙한 풍경과 안락한 일상이 돌연 낯설고 두려운 얼굴로 표변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가 2019년, 미국의 공포문학 작가를 기려 제정한 셜리 잭슨상의 첫 한국인 수상자가 된 것은 이런 긴장감 조성 능력 덕분일 것이다.

2000년 등단 이후 열한 번째 책인 소설집 <어쩌면 스무 번>에 실린 여덟 단편 역시 편혜영 소설에 대한 독자의 기대를 배반하지 않는다. 표제작과 ‘홀리데이 홈’은 시골 집을 배경으로 삼은 일종의 전원 소설이라는 점에서 한데 묶을 만하다. 표제작에서 화자 ‘나’는 치매를 앓는 장인을 모시고 아내와 함께 산골로 이사하는데, 애초의 예상과는 달리 산골 외딴집은 온갖 불편과 불안 요소로 가득하다. 집 주위의 광활한 옥수수밭과 이들을 방문하는 사이비 전도사와 보안업체 직원들이 부부가 느끼는 불안감을 점차 고조시키는 과정은 편혜영의 장인적 역량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홀리데이 홈’에서 소령으로 예편한 이진수와 그 부인은 도시에서 식당을 하다가 실패하고 전원주택을 팔고자 시골 집으로 내려온다. 거센 비가 내리는 어느 날, 집을 보겠다며 두 남자가 나타나면서 이진수의 군 시절 행적이 드러나고 네 사람 사이에는 긴장과 불안이 팽만하게 된다. 긴장과 불안은 사실 두 남자가 나타나기 전부터 야금야금 덩치를 키워 왔는데, 그 핵심에는 베일에 싸인 이진수의 군대 내 행태가 있다. 과감한 생략과 암시로써 장교 이진수의 부패와 폭력을 독자가 미루어 짐작하게 하는 작가의 솜씨가 일품이다.

‘호텔 창문’에서도 역시 작가는 정보를 야금야금 제시하는 방식으로 긴장감을 유지하고 소설이 끝난 뒤에도 여운과 파장을 남긴다. 한 인물의 실종을 소재로 삼은 단편 ‘리코더’는 소설이 끝나기까지 실종의 원인 또는 진실을 알려주지 않는데, “어떤 말은 내내 품고 있지만 결코 소리 내어 말할 수 없게 된다”는 소설 말미의 문장은 이 소설만이 아니라 편혜영의 소설 철학을 대변하는 말처럼 읽힌다.

불안과 공포라는 편혜영 소설의 주조가 책 전편을 관류하는 가운데, 미약하나마 인간적 온기와 희망의 조짐이 섞여 드는 모습 역시 주목된다. ‘미래의 끝’에서 보험 아줌마가 어린 ‘나’를 데리고 보험금 수급을 하러 다니며 삶의 현장을 학습시키는 장면, 미용사 출신 홀어머니와 장성한 아들이 동반 몰락하는 이야기를 담은 ‘좋은 날이 되었네’ 결말부의 따뜻한 회상 장면 등이 대표적이다.

글·사진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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