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달콤한 직업: 소설가의 모험, 돈키호테의 식탁
마음산책/1만5500원
먹어야 기운을 차리는 사람도 있지만 ‘먹여야’ 기운을 차리는 사람도 있다. 소설가 천운영은 후자다. 15년을 작가와 함께한 반려견 ‘민’이가 세상을 떠났다. 한동안 곡기를 끊었던 민이가 죽기 전 뜨거운 계란프라이에 비빈 차가운 사료를 맛있게 먹어치우던 모습이 자꾸 아른거렸다. 뭐라도 맛있게 먹여서 보냈다는 사실이 한 줌의 위안이 됐다. 일주일을 앓아누웠던 소설가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식당을 차려야겠다. (…) 누군가에게 무언가 해먹이지 않고서는 살 수 없다.” 아파트 담보대출을 받아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작은 스페인 식당을 냈다. 상호는 ‘돈키호테의 식탁’. 소설가는 자영업 황무지 대한민국에서 식당을 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쓰고 달콤한 직업>은 그 “겁대가리 없던” 도전을 기록한 책이다. 2000년 등단 이후 21년 만에 내놓는 첫 산문에서 천운영은 사료에 비빈 계란프라이처럼, ‘먹이는’ 일의 고소함과 비릿함을 독자의 그릇에 먹음직스럽게 덜어준다.
소설가 천운영이 서울 마포구 연남동 자신의 식당인 ‘돈키호테의 식탁’(2018년 운영종료)에서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이재안
음식을 차리고 치우며 위안을 주고 또 받고 싶어 시작한 일이었지만 식당은 역시나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준비를 한다고 했지만 개점 전날에야 “오븐을 돌려봤”고, “동료 작가들이 다 모여 누구는 와인 잔에 붙은 라벨을 떼고, 누구는 냅킨을 접고 메뉴판을 만드”는 집단적 ‘재능 낭비의 현장’이 펼쳐지기도 했다. 잘 먹이고 싶은 마음이 앞서 “원가가 (음식값의) 60%를 훨씬 넘”기 일쑤였고, 제대로 맛보이고 싶다는 욕심에 빠에야(스페인식 해산물 볶음밥)는 4인 이상이 아니면 주문을 받지 않았다. 아마도 작가가 <골목식당>에 나갔다면 백종원에게 호되게 혼났을 것이다. 대신 이웃 가게 업주들이 작가를 ‘정신 교육’했다.
돈키호테 곁 산초처럼, 작가 곁에는 ‘명자 씨’가 있었지만 먹이는 일은 좀체 쉬워지지 않았다. 명자 씨는 남편의 공장에서 20년, 그 공장을 물려받은 아들 곁에서 10년 동안 공장 직원의 끼니를 책임졌던 베테랑 셰프이자 작가의 엄마다. ‘명자 씨’는 “친구의 남편의 사촌 여동생의 시댁 어른”을 통해 홍원항에서 귀한 식재료 갑오징어를 조달받고, 재료 손질은 물론 몇몇 요리까지 도맡았다. 이런 든든한 ‘뒷배’가 있음에도 “가게 문을 열었다가 다시 닫고 명자 씨와 의원 침대에 나란히 누워 링거를 맞은 날”도 있을 정도로 일은 고됐다. 불판 옆 조리도구를 덥석 잡았다가 수없이 데기도 했다. “주방에 숨어서 두어 번 울었다. 일이 정말 힘들어서, 소설이 너무나 쓰고 싶어져서.” ‘작가님’에서 ‘업주님’이 되면서 작가의 꿈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막혔던 소설이 술술 풀리는 꿈을 꿨다면, 이제는 갑오징어나 문어를 구하겠다고 다급하게 어느 항구를 헤매다 잠에서 깼다.
“여기까지. 밥은 차릴 만큼 차렸으니 되었다. 근육인지 흉터인지도 여기까지. 돌아간다, 그곳으로.” 2년 동안 원 없이 ‘먹인’ 작가는 다시 노트북 앞으로 간다. “칼이 잘라낸 세상을 보여주기” 위해서(작가는 신춘문예 당선 소감에 이렇게 썼었다), 살면서 작가에게 건네졌던, 또 작가가 건넸던 “복잡한 계란프라이의 맛”의 비밀을 마저 풀기 위해서. “나서지 않았다면 결코 맛볼 수 없는 고단하지만 달콤한” 모험의 맛을 혀끝에 간직한 작가가 앞으로 써낼 글들에 벌써 군침이 돈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