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홍한별 옮김/민음사·1만7000원
201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뒤 처음으로 신작소설 <클라라와 태양>을 내놓은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 한국 독자에게 보낸 영상 메시지에서 이 소설이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남아 있는 나날>과 <나를 보내지 마> 사이에 다리를 놓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Jeff Cottenden
<클라라와 태양>은 일본계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가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 뒤 처음으로 발표한 장편소설이다. 이시구로는 <나를 보내지 마>와 같은 에스에프(SF)나 가까운 과거를 배경으로 한 역사물 <남아 있는 나날>, 추리적 기법을 활용한 <우리가 고아였을 때>, 판타지물인 <파묻힌 거인> 등 다양한 장르와 소재를 다루는 작가로 유명하다. 그는 신작 <클라라와 태양>을 자신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남아 있는 나날>과 <나를 보내지 마> 사이에 다리를 놓는 작품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
<클라라와 태양>은 <나를 보내지 마>와 비슷한 에스에프물이다. <나를 보내지 마>가 인간의 장기 이식을 목적으로 복제된 클론의 이야기를 그렸다면, <클라라와 태양>의 주인공은 아이들의 친구 노릇을 하도록 제작된 인공지능 로봇 에이에프(Artificial Friend, 인공 친구)다. 자신의 주인인 소녀 조시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에이에프 클라라는 <남아 있는 나날>에서 주인인 달링턴 경을 위해 자신을 버리고 헌신했던 집사 스티븐스를 떠오르게도 한다.
동료 에이에프들과 함께 매장 쇼윈도에서 자신을 데려갈 주인이 나타나길 기다리는 클라라의 묘사로 소설은 시작된다. 도입부에서 특히 부각되는 것은 클라라의 남다른 호기심과 관찰력 그리고 인지와 공감 능력이다. 클라라를 구입하는 조시의 엄마 크리시에게 매장 매니저가 강조하는 것도 클라라의 “관찰하고 배우려 하는 욕구”다. 클라라의 이런 특성이 일종의 복선이 되어 소설의 중요한 비밀과 연결된다는 사실은 소설 후반부에 가서야 드러난다.
클라라는 첫 만남에서 자신을 마음에 들어하고 나중에 다시 와서 데려가겠노라 약속한 소녀 조시를 기다리며 다른 아이의 관심을 뿌리친다. 그런 클라라에게 매니저는 “고객이 에이에프를 선택하는 거지, 절대 그 반대가 아니”라고 질책하지만, 에이에프답지 않은 클라라의 주견과 고집은 결국 조시의 재방문과 구매로 보상을 받는다. 그런가 하면 클라라는 나중에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조시 친구의 무례한 주문에 “도와드릴 수 없어 죄송합니다”라고 답하는데, 이 모습은 허먼 멜빌 소설 ‘필경사 바틀비’의 주인공 바틀비의 고집을 연상시킨다. “아무 감정이 없는 게 가끔은 좋을 거야. 네가 부럽다”고 크리시는 클라라에게 말하지만, 그에 대한 클라라의 반응은 예상과는 다르다. “저에게도 여러 감정이 있다고 생각해요. 더 많이 관찰할수록 더 다양한 감정이 생겨요.”
에이에프라는 존재를 인형이나 장난감 자동차와 다를 바 없는 물건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의식과 감정을 지닌 존엄한 생명체로 볼 것인지 하는 문제는 이 소설의 핵심 주제에 해당한다. 클라라는 병약한 소녀 조시의 건강 회복을 위해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바치겠다는 다짐을 하고 실제로 ‘희생’에 해당하는 행위를 마다하지 않는다. 조시가 잘못될 경우에 대비해 자신이 조시의 ‘몸’을 입고 조시로서 살아가게 될 가능성 앞에서 클라라는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그에 대해 크리시는 “그게 뭐가 중요하겠니? 겉껍질일 뿐인데”라고 무심히 대꾸하지만, 그것이 클라라의 의문에 대한 충분한 답이 되지 않음은 물론이다.
에이에프 클라라가 인간인 조시를 대체할 수 있을지를 가름하는 핵심은 무엇일까. 조시 아버지 폴에 따르면 그것은 ‘마음’이다. “너는 인간의 마음이라는 걸 믿니? (…) 인간의 마음. 그런 게 존재한다고 생각해? 사람을 특별하고 개별적인 존재로 만드는 것?”이라고 그는 클라라에게 묻는데, 이 질문의 답을 그는 이미 알고 있다. 기억이나 인지 및 판단 능력과 다른, 개별 인간의 고유한 심리적 특성은 결코 복제하거나 전송할 수 없는 것이다.
클라라가 겪고 있는 건강상의 문제가 이른바 ‘향상’ 때문이라는 사실은 이 소설의 또 다른 중요한 주제와 관련된다. ‘향상’이란 인위적인 유전자 편집을 통해 지능이 높아진 상태를 가리키는데, 소설에서는 그 혜택에서 배제되거나 그것을 거부한 이들과 향상된 존재들 사이의 계급적·이념적 대립 그리고 그로 인한 사회 문제도 부각된다. 유전자 가위가 상용화하고 인간 게놈 편집이 기술적으로 가능해진 현실에서 ‘향상’의 빛과 그림자에 관한 문학적 관심은 시의적절하다 하겠다.
“처음에는 일자리를 빼앗아 가고. 이제는 극장 좌석까지 차지해?”
클라라가 포함된 조시네 식구들과 극장 앞에서 마주친 낯선 여성은 에이에프에 대한 적대감을 이렇게 표출한다. 에이에프를 비롯한 인공지능 로봇들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음은 물론 감정적 교류와 문화 향유의 기회마저 앗아 가는 현실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다. 인간의 관점에서 이런 분노와 적대감은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지만, 같은 상황을 에이에프의 처지에서 보자면 다른 관점이 열린다. 일찍이 소설 초반부에서 클라라는 쇼윈도 바깥을 주인과 함께 오가는 구형 에이에프들의 위축된 모습을 보며 그들이 신형 모델로 교체될 가능성 때문에 두려워하는 거라고 짐작한다. 클라라 자신도, 조시가 다행히 병을 이겨 내고 성장해서 대학에 갈 즈음 용도 폐기되어 다용도실에 방치되었다가는 결국 쓰레기 신세로 야적장에 버려지기에 이른다.
“제가 서비스를 잘했고 조시가 외로워지지 않도록 방지했다고 생각해요. (…) 집안사람들 전부 저에게 아주 친절했어요. 아주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어요.”
야적장에서 우연히 지난날의 매니저와 조우한 클라라는 에이에프로서 자신의 임무와 처우에 대해 이렇듯 보람과 만족을 표한다. 그가 “되돌아보고 순서대로 배열할 기억들”과 더불어 서서히 소멸해 가는 최후는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결말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에이에프 클라라가 사람들 속에서 부대끼며 인간관계와 감정의 특별함에 대해 배운 것만큼, 인간들 역시 클라라로부터 무언가를 배웠다고 할 수 있을까.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