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책거리
이번주 표지 기사 ‘데스킹’은 눈물 나는 일이었습니다. 70년이 넘도록 풀리지 않는 원과 한. 누가 감히 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치마폭에 아이들을 감춰 살리고 죽어 간 엄마의 마음을. 꿈에서 만난 엄마 얼굴을 무덤에서 확인하고 은가락지를 건네 받은 딸의 속내를. 저고리 한 벌 남기고 학살당한 아버지를 기억하는 아들의 아픔을. 첫사랑의 아픔조차 앓지 못하고 삶을 놓아야 했던 청춘의 눈물을. 형과 아버지의 유품마저 모두 태워버린 남자의 두려움을…. 그러나 인간성 말살의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봄날 제주의 돌과 바람, 흙과 파도를 떠올립니다. 아스팔트 바닥과 시멘트 벽으로 이뤄진 도시에서 번뜩이는 유리와 단단한 쇳덩어리들의 무감과 대비되는 심상이 떠올랐습니다. 그들은 몰랐을 것입니다. 바다와 돌이, 흙과 바람이 만행을 기억하고 있으리라는 것을. 저들끼리 은밀히,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들 몰래 잔혹한 봄날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었다는 것을. 상처를 딛고 일어서려는 이들을 다독이고 있었다는 것을요.
73년 전의 제주를 다시 이야기해온 사람들에게서 말살할 수 없는 본연의 인간을 확인합니다. 슬프고도 기쁜 일이기에 힘겨운 용기를 낼 수 있었으리라 짐작합니다. 삶의 터전까지 옮겨 오랜 시간 듣고 기록하고 노래해온 분들에게, 앞으로도 용감한 작업을 이어갈 분들에게, 제주의 돌과 바람은 계속 속삭일 것입니다.
4·3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숨겨진 이야기들을 찾아가고 들춰내고 알리고 나누는 작업을 이어가는 소중한 사람들이 있는 한, 4·3의 정신은 더욱 크고 강하게 세상을 바꾸어 나가겠죠. 그리하여 인간을 짓밟고 정의를 희롱하며 몰염치를 자랑하는 이들을 몰아내고, 소박하여 장대한 인간성으로 세상을 밝혀나갈 것입니다. 이런 마음의 힘이, 부디 미얀마의 ‘우리들’에게도 전해지기를 바라며 두손 모읍니다.
김진철 책지성팀장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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