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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덜 설우와사 눈물나주(덜 서러워야 눈물나죠)

등록 2021-04-02 05:00수정 2021-04-02 09:13

제주4·3 희생자 유품 27점, 사진과 시로 숨결 불어넣어
“아름다운 풍광 뒤 아리도록 아픈 광풍 있음을 기억하길”

기억의 목소리: 사물에 스민 제주4·3 이야기

허은실 글, 고현주 사진/문학동네·1만7500원

강숙자씨 약지 손가락에는 언제나 은반지(사진③)가 끼워져 있다. 제주 4·3 때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품이다. 어머니가 ‘남긴 것’이 아니라 숙자씨가 어머니 묘를 열어 ‘찾은 것’이다. 이들에겐 작별의 시간이 없었다. 강씨가 두살 때 총살당한 어머니. 어머니는 처형 직전 입고 있던 저고리와 치마를 벗어 강씨를 덮고, 먹자주색 긴 목도리로 둘둘 싸매 지나가던 이웃에게 휙 건넸다. 그 덕에 강씨만 살았다. “어느 날 꿈에 버스를 탔는데 앞자리에 얼굴이 길쭉하니 곱고 키도 크고 훤한 사람이 앉아 있는 거예요. 그 순간 ‘아, 어머니구나!’ 알겠더라고요. (…) 어머니 묘를 이장하느라고 무덤을 열었는데, 꿈에서 본 딱 그 얼굴이에요.” 무덤에서 찾은 어머니 은반지는 맞춘 것마냥 강씨 손가락에 꼭 들어맞았다.

제주 4·3 사건 민간인 희생자는 1만4000여명. 유가족이 직접 신고한 사례만 취합한 게 이 정도고, 실제 피해자는 3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당시 제주 인구 9분의 1에 해당하는 수치다. 사람이 떠나면 유품이 남는다. 그래서 제주는 ‘유품의 섬’이기도 하다. 제주 4·3사건 73돌을 맞아 출간된 <기억의 목소리>는 제주가 간직한 희생자의 유품을 매개로 제주 4·3사건을 재감각하려는 시도다. 사진작가 고현주는 유가족이 보따리나 궤 속에 간직해온 희생자의 유품을 꺼내 사진으로 보여주고, 시인 허은실은 유품에 얽힌 이야기를 시와 인터뷰로 들려준다. 고 작가의 사진에서는 퀘퀘한 먼지 냄새가 나고, 허 시인이 쓴 시에서는 바짝 마른 슬픔이 만져진다. 어설프게 알고 있던 4·3 사건은 그렇게 유품을 통해 시각, 청각, 후각, 촉각으로 되살아난다.

ⓒ고현주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럴듯한 유품은 남겨진 자들에게 위안을 주지만, 너무 소박한 유품은 외려 서글픔을 안긴다. 은수저가 아닌 놋쇠 숟가락, 비단 저고리가 아니라 쌀자루를 안감으로 댄 저고리 같은 것들이 그렇다. 양남호씨는 아버지의 놋쇠 숟가락(사진②)만 보면 애달프다. 아버지가 붙잡혀간 뒤 어머니는 30년 동안 남편의 놋쇠 숟가락으로만 밥을 떴다. 당신 생일상은 한 번을 받지 않으면서도 남편 밥은 꼬박 새로 지어 벽장에 놓았고, 매일 볏집에 재를 묻혀 숟가락을 닦았다. “숟가락을 놓는 것/ 당신을 눕히는 일 같아/ (…) 밥을 담고 약을 개어/ 세월을 삭이고 열을 삭였다”(‘녹슨 한술’ 중)

강은택씨의 아버지는 토벌대에 집단학살 당했다. 강씨 세살, 아버지 스물네살 때였다. 왜 죽임을 당했는지는 아직도 모른다. 유품이라고는 동백꽃 색 저고리(사진①) 하나. 그마저도 “정미소 쌀 담던 일본 자루를 안에 기지(‘천’의 일본말)로 대서” 만든 옷이다.

강중훈씨 아버지는 앉은뱅이책상을 남겼다. 옆면에 봉황이 섬세하게 새겨진 책상이다. 강씨는 한때 이 책상으로부터 멀리 달아나려 했다. 갑자기 집에 들이닥친 경찰이 이 책상 서랍을 거칠게 뒤졌던 ‘그날’이 선명하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강씨의 아버지는 물론, 할아버지·할머니, 아버지의 형제, 고모까지 모조리 다 학살됐다. 강씨는 그 현장을 직접 봤다. “멸치떼가 밀려와서 덤으로 죽듯이 그런 죽음”이었다고 했다. “10대 때는 여기가 싫어서 서울로 도망을 갔지만, 결국 돌아와 이 학살터 앞에 집을 지었어요. 안 볼래야 안 볼 수 없는 풍경이지. 그런데 그렇게 마주하면서 마음이 다스려져요.” 강씨는 요즘 아버지가 채 다 쓰지 못하고 간 가계부 뒷장에 시를 쓴다.

안순실씨는 시아주버니 내외의 영정 사진(사진⑤)을 가지고 있다. 총각일 때 총살당한 시숙이지만 ‘아내’가 있는 데엔 사연이 있다. 시숙이 죽고 일기장을 펴보니 첫사랑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수소문해 찾아가 보니 그 집안도 몰살당한 뒤였다. 남은 거라고는 교복 입은 첫사랑의 사진 한 장. 유족은 이 사진을 가져와 시숙의 사진과 합성했다. 시숙의 빡빡머리는 조금 길게, 첫사랑의 교복은 한복으로 갈아입혔다. 그리고 그 둘을 한 무덤에 합장했다. “희,/ 무덤 속에서 비로소 잡아보는 손./ 다행이에요. 따뜻해서”(‘이제,’)

몸 자체가 유품인 이들도 있다. 윤옥화씨는 엄마 치마 속에서 총을 맞았다. “엄마가 우리 네 형제를 치마 속에 다 안았어요. (…) 나는 등에 한 발 맞고 기절했다가 깨어났지. 그 자리가 평생 아파요. 그때 눈밭에 맨발로 끌려다녀서 지금도 한라산에 첫눈만 왔다 하면 벌써 발이 시려 살지를 못해.” 그 눈밭에서 어머니, 언니, 동생을 잃었다. 아픔을 달래주는 건 바다였다. “물옷 입으면 살아져/ 물에만 들면 사라져/ 그립고 서러운 마음도/ 총알 자국 욱신거림도/ 호오이 휘이잇 숨 비우듯”(‘검은 살붙이’) 책에는 어머니의 유품 대신 윤씨의 두번째 피부, 고무옷(사진⑥)이 실렸다.

4·3 때 형과 아버지를 잃었지만, 김두연씨에게는 유품이 한 점도 없다. ‘빨갱이 새끼’ ‘폭도’라는 말을 들을까 봐 겁이 나서 진작에 다 태워버렸다. 대신 4·3 평화공원 입구에 있는 ‘총알 박힌 망주석’(무덤 앞 혼유석의 좌우에 세우는 돌기둥)(사진④)으로 그때를 기억한다. “당시 중산간 초토화작전이 이뤄질 때 사람들이 숨어 살았잖아요. 밤이라 이게 사람인 줄 알고 총을 쏜 거지. (…) 제주 돌이 세잖아요. 근데 그 돌이 쪼개졌어요.”

4·3은 제주 사람들의 일상에 불쑥불쑥 나타난다. “인형들만 보면 개 죽은 거 같고, 말 죽은 것 같고, 4·3 때 보았던 게 떠오른다”며 손주 인형을 모조리 불태웠던 할머니(4·3 트라우마로 평생 고통 받았던 할머니는 세상을 떠날 때 물빛 저고리(사진⑦)를 입고 있었다)가 있고, 바다에 던져진 아버지 어머니가 생각나 “멸치고 뭐고 바당고기(바다고기)를 일절 안 먹는” 유족도 있다. 또 다른 할머니는 턱에 총을 맞은 이후 별세하기 전까지 “모든 문마다 자물쇠를 달고, 화장실에 갈 때나 마당가로 나올 때도 방문을 잠그고 다녔”고 한다.

4·3은 박제된 역사가 아니다.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 현재다. 그래서 두 작가는 청한다. “제주 곳곳 이 아름다운 풍광 뒤에, 아리도록 아픈 광풍이 있었음을 이제 당신도 알아주면 좋겠다”고. 당신이 추억의 ‘배경’으로 삼는 성산일출봉·함덕해수욕장·다랑쉬오름도, 당신의 렌터카가 주차된 터진목도 수많은 생이 졌던 집단학살터였다는 사실을 당신만은, 잠시라도 기억해 달라고.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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