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이라는 우주: 씨앗에서 씨앗까지, 식물학자가 들려주는 푸릇한 생명체의 여정
안희경 지음/시공사·2만3000원
식물은 어떻게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울까. 다양한 병균에 맞서는 방법은 뭘까. 식물학자 안희경 박사는 <식물이라는 우주>에서 식물 성장과 노화 과정 등을 과학의 언어로 설명해 식물에 관한 다양한 궁금증을 풀어준다.
식물은 다양한 호르몬의 상호작용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식물은 생장, 발달, 환경 적응 등에 영향을 미치는 물질인 식물호르몬을 갖고 있다. 현재까지 밝혀진 식물호르몬은 지베렐린, 옥신, 사이토키닌, 앱시스산, 에틸렌, 브라시노스테로이드, 살리실산, 자스몬산 등이다. 지베렐린은 식물의 길이 생장, 종자 발아를 촉진하는 호르몬이다. 앱시스산은 발아를 지연시키는 물질이다. 노화가 일어나는 식물 부위에 많이 분포하며 발아가 시작되면 분해된다. 지베렐린과 앱시스산, 두 호르몬은 서로 균형을 맞추며 공존한다. 어떤 호르몬이 우위를 차지하느냐에 따라 씨앗은 휴면상태를 유지하기도, 발아하기도 한다.
식물은 두 방향으로 자란다. 뿌리는 아래로, 새싹은 위로 커간다. 뿌리 끝과 줄기의 끝눈에 생장점이 있어서다. 두 끝눈에서 끊임없이 세포가 분열하면서 새로운 식물 기관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생장점에서 일어나는 변이 현상 중 하나가 ‘대화현상’이다. 줄기의 일부가 편평해지거나 꽃이 납작한 모양이 되는 것이다.
식물은 병균에 맞서 스스로를 지킨다. 녹이 슨 것처럼 잎이나 줄기에 누렇게 혹은 하얀 반점이 나타나는 녹병, 잎이 시드는 마름병이나 시듦병, 잎 색깔이 얼룩덜룩해지거나 잎이 우는 모자이크병 등 다양한 병이 그들을 위협한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식물에 병을 일으키는 건 박테리아, 곰팡이, 바이러스 등이다. 이들 병에 맞서게 하는 호르몬이 살리실산이다. 병들지 않은 잎에 병균의 침입을 알리는 신호를 보내고 식물 면역력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살리실산의 발견은 식물에서도 병원체에 감염되지 않은 다른 잎에 병저항성을 촉진하는 획득저항성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식물이 세균, 바이러스 등에 노출될 때 동물의 면역반응과 유사한 반응을 보인다는 얘기다.
식물학 연구의 대표 모델 식물인 ‘애기장대’도 비중 있게 다룬다. 애기장대는 유럽과 아시아 등 북반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잡초다. 민들레처럼 땅에 붙어서 자라다가 꽃대가 올라오면서 꽃이 핀다. 일년생식물이기 때문에 씨를 맺은 뒤에는 노화되어 죽는다. 2만여 개의 유전자가 있는 애기장대는 유전자와 돌연변이 실험에 적격이다. 세계 곳곳에 있는 종자 은행에 애기장대의 각종 돌연변이가 보관돼 있을 정도로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애기장대는 식물 발달 과정에서부터 환경 스트레스, 미생물과 상호작용까지 다양한 연구에 쓰이고 있다.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식물학자의 일상도 소개한다. 지은이는 “모든 게 얼어붙는 영하 196도 액체질소에 준비해둔 식물 잎을 넣어 얼리고, 얼어붙은 잎을 막자사발에 가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녹즙’을 만드는 것 같은 이 실험은 식물세포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알아내려는 것이다. 식물은 연구 대상일 뿐만 아니라 관심 대상이다. 그는 매일 관찰하는 “새싹 사진을 찍어두느라 핸드폰 용량이 가득 차고”, “아기 태명을 ‘새싹’으로 했”다고 한다. 식물학자이자 식물애호가인 지은이의 식물을 향한 열정과 애정을 책 곳곳에서 발견하게 된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