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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설탕 가루를 발라 만든 소설이에요”

등록 2021-04-16 04:59수정 2021-04-16 09:36

‘일의 기쁨과 슬픔’ 장류진 첫 장편 ‘달까지 가자’

달까지 가자

장류진 지음/창비·1만4000원

장류진의 등장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2018년 창비신인소설상 수상작인 그의 단편 ‘일의 기쁨과 슬픔’은 판교 테크노밸리를 배경으로 삼았는데, 입소문을 타고 평소 소설을 읽지 않는 이들까지 독자군으로 끌어들였다. 창비는 이 작품을 누리집에 무료로 공개했고, 접속자 폭주로 서버가 마비되는 소동 속에 누적 조회수 40만을 상회할 정도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등단 이듬해 낸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은 신인 작가의 첫 소설집으로는 이례적으로 발간 1년 반 만인 지금까지 10만부가 넘게 팔려 나갔다.
2019년에 낸 첫 소설집 &lt;일의 기쁨과 슬픔&gt;으로 좋은 반응을 얻은 작가 장류진이 첫 장편 &lt;달까지 가자&gt;를 내놓았다. 14일 &lt;한겨레&gt;와 인터뷰에서는 “습작할 때부터 선생님들이 저는 장편이 어울린다고 말씀하셨지만, 저는 단편 쓰는 것도 좋아해서 적어도 당분간은 단편과 장편을 다 쓸 생각”이라고 말했다. ⓒ 유재욱
2019년에 낸 첫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으로 좋은 반응을 얻은 작가 장류진이 첫 장편 <달까지 가자>를 내놓았다. 14일 <한겨레>와 인터뷰에서는 “습작할 때부터 선생님들이 저는 장편이 어울린다고 말씀하셨지만, 저는 단편 쓰는 것도 좋아해서 적어도 당분간은 단편과 장편을 다 쓸 생각”이라고 말했다. ⓒ 유재욱

그 장류진이 첫 장편 <달까지 가자>를 내놓았다. ‘흙수저’ 직장 여성 3인방이 가상화폐 이더리움에 투자해 등락을 거듭하는 롤러코스터 장세를 타고 오르내리는 이야기다. ‘달까지 가자’(to the moon)라는 제목은 가상화폐 가격 폭등을 바라는 전 세계 투자자들의 은어라고. 14일 오후 창비 서교빌딩에서 만난 장류진은 “제 소설에서는 스토리가 중요하기 때문에 기사를 작성할 때에도 ‘스포일러 주의’를 미리 안내해 주시면 고맙겠다”는 당부를 했다. 그 당부에 따라 미리 주의를 하고 얘기하자면, 소설의 결말은 세 주인공이 결국 투자에 성공해서 돈을 번다는 해피 엔딩이다.

“제가 이십대 때, 항상 돈이 부족해서 ‘아이씨, 누가 백만원만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소설가가 되고서 가장 좋은 게, 내가 손가락만 놀리면 원하는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누가 3억쯤 주는 얘기를 항상 쓰고 싶었어요.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지만, 소설에서는 내가 내 마음대로 줄 수 있으니까.”

소설의 세 주인공은 마론제과에 근무하는 ‘나’ 정다해와 직장 동료 강은상, 김지송. 세 사람은 집안 형편도 넉넉하지 않고 회사에서도 입지가 불안정한 전형적인 ‘흙수저’들이다. 셋 중 가장 먼저 이더리움에 투자해서 돈을 번 은상 언니는 “이게 우리 같은 애들한테 아주 잠깐 우연히 열린, 유일한 기회”라며 다해에게도 투자를 권유하는데, 그가 말하는 ‘우리 같은 애들’을 다른 말로 하자면 ‘흙수저’가 되겠다. 소설의 배경은 2017년 1월부터 2018년 8월까지인데, 장류진은 “소설에 나오는 시세 숫자와 그래프는 다 실제 그대로”라고 했다. “소설을 그에 맞춰서 쓰느라 힘들었다”고도 덧붙였다.

먼저 투자한 은상 언니가 가장 큰 돈을 벌고, 망설이다가 나중에 들어간 다해 역시 은상 언니보다는 적지만 그래도 꽤 벌었는데, 지송은 둘의 투자를 걱정하다 못해 그에 반발하며 저항한다. 더 나아가 셋이 있는 단톡방에서 은상 언니와 다해가 이더리움으로 번 돈에 관해 얘기하는 모습을 보며 “묘하게 박탈감이 느껴져서 불쾌하다“고까지 말한다. 그랬던 지송 역시 나중에는 투자 대열에 합류하고 다해보다는 조금 덜해도 역시 적잖은 돈을 벌게 되지만, 소설 주인공들이 가상화폐라는 ‘허깨비 놀음’으로 큰 돈을 손에 쥐는 모습을 보며 독자들이 애초의 지송처럼 알 수 없는 박탈감을 느끼게는 되지 않을까.

“박탈감이라면 소설 속 인물들에게보다는 현실에서 더 많이 느끼지 않을까요? 사실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오히려 더 허무해질 수도 있겠는데, 저는 애초에 이 소설 자체를 설탕 가루를 발라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기분이라도 좋으라고, 몸에 좋지는 않지만요.”

이 말을 듣자 어느 날 다해가 점심 시간을 이용해 출장 사주를 보러 갔다가 핫도그 세 개로 점심을 대신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감자핫도그와 체다치즈핫도그, 고구마핫도그 하나씩을 주문한 다해는 “셋 다 설탕에 굴려드릴까요?”라는 질문에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네. 설탕 많이요.” <달까지 가자>의 속표지에는 “달달한 일들만 가득하길 바랍니다”라는 작가의 친필이 인쇄되어 있는데, 이 소설이 좋은 의미의 당의정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읽을 수 있다.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듯 속도감 있게 읽히는 문장은 장류진이 제공하는 또 다른 당의정이라 하겠다. 그의 첫 소설집에 해설을 쓴 평론가 인아영은 “여기에는 한국문학이 오랫동안 수호해 왔던 내면의 진정성이나 비대한 자아가 없다”고 했고, 작가 자신은 ‘깊이가 없다’는 평가에 오래도록 콤플렉스를 느꼈다는 말도 한 바 있다.

“저는 아직도 내면이나 깊이란 게 뭔지 모르겠어요. 저는 나름대로 내면을 잘 묘사한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리고 제가 한국 소설의 찐팬이어서 거의 모든 소설을 읽거든요. 한국 소설이 그렇게 줄거리가 없거나 사유와 관념이 지나치다고도 생각하지 않아요. 한국문학에는 다양한 소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앞으로 어떻게 쓸 거냐고 물어본다면, 앞으로도 지금 쓰는 것처럼 쓸 것 같아요. 제 소설 주인공들도 생각을 많이 한다고 봅니다.”

소설 앞머리에서 팀장의 어처구니없는 언행을 접한 다해는 생각한다. “사람이 그렇게 ‘네네’만 반복하며 살다가는 뜨거운 증기를 가득 머금은 밀폐용기처럼 위험해진다”고. 소설 속에서 내내 팀장과 직장 생활 자체에 대해 불만과 회의를 표하던 다해는 막상 이더리움 덕에 직장을 그만둘 수 있는 순간이 오자 “일단은, 계속 다니자”라며 자신을 주저앉힌다. 이것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인데, 이런 결말은 주인공 안나가 월급을 믿고 홍콩행 왕복 티켓을 결제하는 ‘일의 기쁨과 슬픔’의 마지막 장면을 떠오르게도 한다. “인물들이 그래도 조직에 남아서 무언가를 하는 이야기에 제가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고 작가는 말했다.

“저는 책을 몇 권 낼 수 있는 계약서가 있었기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를 택한 거지, 아무것도 없었다면 무작정 전업을 택하지는 못했을 거예요. 소설을 쓰고 싶어서 회사를 그만두었지만, 지금도 회사와 회사 사람들이 그립다는 생각이 자주 들어요. 특히 요즘처럼 코로나로 집에만 갇혀 있게 될 때는 더더욱요.”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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