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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생활 이후 인류 역사는 ‘감염병과의 투쟁사’였다

등록 2021-04-16 05:00수정 2021-04-16 10:14

코로나19, 기나긴 팬데믹 목록에 하나 더해진 것뿐
과도한 행동면역체계가 타자 혐오·배제로 이어진다는 점 인식해야

14세기 벨기에 지방에서 만들어진 필사본의 삽화로 1349년 흑사병 유행 시기의 유대인 학살을 그리고 있다. 유대인을 모아 불에 태워 죽이고 있다. <감염병인류>는 감염병이 유행하는 시기, 타자들에 대한 혐오와 배제가 더 강하게 일어난다고 지적한다. 창비 제공
14세기 벨기에 지방에서 만들어진 필사본의 삽화로 1349년 흑사병 유행 시기의 유대인 학살을 그리고 있다. 유대인을 모아 불에 태워 죽이고 있다. <감염병인류>는 감염병이 유행하는 시기, 타자들에 대한 혐오와 배제가 더 강하게 일어난다고 지적한다. 창비 제공

감염병 인류: 균은 어떻게 인류를 변화시켰나
박한선·구형찬 지음/창비·2만원

“그는 이 연대기가 결정적인 승리의 기록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 페스트균은 결코 죽거나 소멸하지 않으며, (…) 아마 언젠가는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가져다주기 위해서 또다시 저 쥐를 흔들어 깨워서 어느 행복한 도시로 그것을 몰아넣어 거기서 죽게 할 날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이후 자주 소환되는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의 마지막 대목이다.(<감염병 인류>에서 재인용) 인류는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아직 ‘결정적인 승리’는커녕 일시적 승리조차 거두지 못하고 있다. 백신과 항생제가 등장하고 영양과 위생조건이 개선되면서 인류는 한때 감염병을 정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다. 하지만 아직도 매년 150만명이 결핵으로, 70만명이 에이즈로, 40만명이 말라리아로 사망한다. 감염성 질환은 전체 사망의 25%를 차지한다.

신경인류학자 박한선과 인지종교학자 구형찬이 공저한 <감염병 인류>는 인류가 감염병과 어떻게 싸워왔는지, 또 이에 어떻게 적응해왔는지를 다룬다. 설명의 틀은 진화인류학과 진화의학, 인지종교학이다. 저자들은 감염병과의 본격적인 투쟁의 시작을 신석기혁명, 즉 농경과 목축 생활 이후로 본다. 구석기 시대에도 감염병이 존재했지만 100여종이 채 되지 않았다. 수렵채집 생활이 정착생활로 바뀌면서 인류를 찾아온 불청객이 감염병이었다. 농경과 함께 ‘도무스(라틴어로 농장과 농장 주변을 의미) 복합체’가 형성되고, 여기에 인간과 가축의 분변과 각종 쓰레기가 쌓인다. “쥐와 모기, 파리가 찾아오고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도 동거를 감행한다. 인류가 맞닥뜨린 현실은 말 그대로 시궁창이었다.” 특히 가축을 키우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동물과 감염균을 나누게 된다. 이른바 ‘인수공통감염병’이다. 수많은 질병이 새로 생겼다. 콜레라, 천연두, 홍역, 볼거리, 인플루엔자, 수두 등 전통적 감염병은 모두 인수공통감염병이다. 홀로세(현세) 내내 인류를 괴롭힌 감염균의 종류는 약 1400종인데, 그중 800종이 인수공통감염병이다.역사시대에 접어들어서도 감염병의 위력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서기 541년 유스티니아누스 역병이 로마제국을 덮쳤다. 절정기에는 콘스탄티노플에서만 매일 5000명이 죽었고, 당시 유럽 인구의 절반이었던 1억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원인은 페스트균이었다. ‘제1차 구세계 팬데믹’으로 불린다. 14세기께, 또다시 흑사병으로 유럽인 세 명 중 한 명이 죽었다. ‘제2차 팬데믹’이다. ‘제3차 팬데믹’은 19세기 인도를 시작으로 중동, 아프리카, 지중해 등으로 퍼져나간 아시아 콜레라다. 20세기 초반에는 스페인 독감이 최대 2억명의 목숨을 빼앗았다. 1948년 창설된 세계보건기구(WHO)가 인정한 공식적 팬데믹은 1968년의 홍콩 독감, 2009년의 신종플루, 2019년의 코로나19, 세 번이다. 결핵과 발진티푸스, 매독, 장티푸스, 천연두, 한센병, 말라리아,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등 ‘공식적인 팬데믹’으로 취급하지 않는 수많은 감염병 역시 인류의 목숨을 앗아갔다. “우리는 늘 팬데믹 지구에서 살아왔다. 코로나19 유행으로 팬데믹이 시작된 것이 아니다. 수많은 팬데믹에 낯선 목록이 하나 더해진 것뿐이다.”

인류가 감염병의 공격에 ‘손놓고’ 있었던 것만은 아니다. 선천면역과 획득면역이라는 정교하고 복잡한 신체면역체계가 수억년 전부터 진화해왔다. 하지만 저자들이 중점을 두어 설명하는 것은 ‘행동면역체계’라는 개념이다. 행동면역체계는 감염 이전에 감염 가능성이 있는 대상을 미리 피하는 것이다. 인간은 “행동 도메인에서 회피(avoidance)를 보이고, 감정 도메인에서는 역거움(disgust)을 보인다.” 역겨움은 더러운 음식, 배설물, 해로운 곤충, 감염된 사람이 보이는 기침이나 구토, 설사, 부자연스러운 행동, 피부 발진 등을 대상으로 생긴다. 역겨움은 회피 행동을 유발한다. 더 나아가 “성관계에 대한 도덕적 기준, 음식에 대한 금기, 외국인 터부와 소수집단에 대한 편견” 등도 행동면역체계에서 기원했다는 것이 저자들의 견해다. 문제는 역겨움과 회피행동이 “금세 분노와 배척의 문화적 코드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신체면역체계가 오작동하면 알레르기나 자가면역반응이 생기듯이, 행동면역체계가 오작동하면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혐오와 배제, 차별의 행동반응이 일어난다. 코로나19 이후 세계 곳곳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 외국인 혐오가 대표적인 예다.

정확한 의학지식이 없었던 과거에는 과민한 행동면역체계가 생존에 유리한 측면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현대에서는 오히려 반대다. 새로운 문화나 질서를 꺼리는 태도 탓에 혁신적인 보건의료 개선을 거부하거나, 외향성과 개방성이 낮아져 글로벌 시대에 부적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타자에 대한 혐오와 배제가 쉽게 일어나는 것은 우리 안에 과거의 행동면역체계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를 활보하는 원시인”이라는, 이런 우리 자신의 한계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넘어서야 한다고 저자들은 강조한다.

중세시대까지 의사들은 ‘미아즈마’, 즉 냄새나는 나쁜 공기가 전염병의 원인이고, ‘프네우마’, 숨을 쉴 때 몸으로 들어오는 우주의 기운이 건강을 유지하는 힘이라고 믿었다. 저자들은 “급속한 도시화와 환경 파괴, 공장식 사육, 무분별한 세계화로 인한 물자와 인원의 급격한 이동, 충분한 의료자원을 비축하지 않는 적시공급시스템, 집중화된 대형병원에 의존하는 의료시스템 등”을 현대의 미아즈마라고 표현한다. 사실상 지구 전체가 “하나의 도무스 복합체”이고, 현대사회는 “신종 감염병을 배양하는 배지”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앞에서 인류의 온 신경이 백신과 치료제에 쏠려 있다. “하지만 현대사회의 미아즈마를 좀더 맑고 건강한 프네우마로 바꾸지 못하면 새로운 코로나가 계속 나타날” 것이라고 저자들은 말한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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