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산책 연습
박솔뫼 지음/문학동네·1만3500원
박솔뫼(
사진)의 장편소설 <미래 산책 연습>은 1982년 3월에 있었던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을 중심으로 짜였다. 소설은 두 개의 이야기가 교차 서술되는 구성을 취한다. 서울에 거주하는 소설가 ‘나’가 부산에 또 다른 월세 거처를 마련해서 수시로 내려와 사람들을 만나고 부산 이곳저곳을 산책하는 이야기가 하나이고, 미문화원 방화사건 범인 중 한 사람인 윤미와 그의 동생뻘인 수미의 이야기가 다른 하나이다. ‘나’가 특히 관심을 가지는 대상 역시 미문화원 방화사건과 그 범인 김은숙이라는 점에서 두 이야기는 서로 통한다. 어쩌면 ‘나’가 쓰는 소설 속 소설이 윤미와 수미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수미가 부산에서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 오래 감옥에 갇혀 있었던 윤미가 석방되어 집으로 왔고, 그런 윤미와 수미는 어느 날 광주로 여행을 다녀온다. 수미에게 그 여행은 모호하고 파편적인 이미지들로 기억될 뿐이지만, 오랜 세월이 흘러 수미가 중병에 걸린 윤미와 재회했을 무렵에는 그 역시 젊은 시절 윤미의 고민과 실천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기에 이른다.
“나는 이 책의 번역자와 그와 함께 미문화원을 방화했던 이들은 광주라는 사건을 끊임없이 자신에게 묻고 그 이후 시간의 의미를 묻고 답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인용한 문장은 김은숙이 ‘김백리’라는 필명으로 번역한 <밥 딜런 평전>을 읽으며 ‘나’가 곱씹는 생각인데, 이것은 곧 윤미에 대한 수미의 생각이라 보아도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인용문의 전전 문장에 이 소설의 주제가 들어 있다는 판단 역시 틀리지 않을 것이다. “시간을 끊임없이 바라보고 와야 할 것들에 몰두하고 사람들의 얼굴에서 무언가를 찾아내고자 하는 이들은 와야 할 것이라 믿는 것들을 이미 연습을 통해 살고 있을 것이라고.”
소설 전체에서 수미와 윤미의 이야기는 양적으로 그리 많지 않고, 그보다는 ‘나’의 이야기가 월등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 ‘나’가 부산에서 가장 자주 만나는 최명환이라는 중년 여성은 82년 미문화원 방화사건을 직접 목격했던 인물이고, 그는 김은숙에 관해 묻는 ‘나’에게 “어떻게 처음 그 사람을 알게 되었는지 말해줄게”라고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그것으로 ‘나’와 최명환의 스토리는 끝이 나기 때문에 이야기를 완성하는 것은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책 제목에 ‘산책’이 들어 있기도 하지만, 박솔뫼 특유의 산책하듯 해찰 부리는 문장들은 처음에는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져도 익숙해지고 나면 고유의 리듬감과 맛을 즐길 수 있게 된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문학동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