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와야 할 미래를 미리 사는 연습

등록 2021-04-16 05:00수정 2021-04-16 10:26

미래 산책 연습
박솔뫼 지음/문학동네·1만3500원

박솔뫼(사진)의 장편소설 <미래 산책 연습>은 1982년 3월에 있었던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을 중심으로 짜였다. 소설은 두 개의 이야기가 교차 서술되는 구성을 취한다. 서울에 거주하는 소설가 ‘나’가 부산에 또 다른 월세 거처를 마련해서 수시로 내려와 사람들을 만나고 부산 이곳저곳을 산책하는 이야기가 하나이고, 미문화원 방화사건 범인 중 한 사람인 윤미와 그의 동생뻘인 수미의 이야기가 다른 하나이다. ‘나’가 특히 관심을 가지는 대상 역시 미문화원 방화사건과 그 범인 김은숙이라는 점에서 두 이야기는 서로 통한다. 어쩌면 ‘나’가 쓰는 소설 속 소설이 윤미와 수미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박솔뫼
박솔뫼

수미가 부산에서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 오래 감옥에 갇혀 있었던 윤미가 석방되어 집으로 왔고, 그런 윤미와 수미는 어느 날 광주로 여행을 다녀온다. 수미에게 그 여행은 모호하고 파편적인 이미지들로 기억될 뿐이지만, 오랜 세월이 흘러 수미가 중병에 걸린 윤미와 재회했을 무렵에는 그 역시 젊은 시절 윤미의 고민과 실천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기에 이른다.

“나는 이 책의 번역자와 그와 함께 미문화원을 방화했던 이들은 광주라는 사건을 끊임없이 자신에게 묻고 그 이후 시간의 의미를 묻고 답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인용한 문장은 김은숙이 ‘김백리’라는 필명으로 번역한 <밥 딜런 평전>을 읽으며 ‘나’가 곱씹는 생각인데, 이것은 곧 윤미에 대한 수미의 생각이라 보아도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인용문의 전전 문장에 이 소설의 주제가 들어 있다는 판단 역시 틀리지 않을 것이다. “시간을 끊임없이 바라보고 와야 할 것들에 몰두하고 사람들의 얼굴에서 무언가를 찾아내고자 하는 이들은 와야 할 것이라 믿는 것들을 이미 연습을 통해 살고 있을 것이라고.”

소설 전체에서 수미와 윤미의 이야기는 양적으로 그리 많지 않고, 그보다는 ‘나’의 이야기가 월등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 ‘나’가 부산에서 가장 자주 만나는 최명환이라는 중년 여성은 82년 미문화원 방화사건을 직접 목격했던 인물이고, 그는 김은숙에 관해 묻는 ‘나’에게 “어떻게 처음 그 사람을 알게 되었는지 말해줄게”라고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그것으로 ‘나’와 최명환의 스토리는 끝이 나기 때문에 이야기를 완성하는 것은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책 제목에 ‘산책’이 들어 있기도 하지만, 박솔뫼 특유의 산책하듯 해찰 부리는 문장들은 처음에는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져도 익숙해지고 나면 고유의 리듬감과 맛을 즐길 수 있게 된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문학동네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