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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두 레즈비언 여성의 죽음과 삶과 사랑

등록 2021-04-16 05:00수정 2021-04-16 09:58

동성애자들도 평범한 일상을 살 수 있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을까
‘함께할 수 없었던 고통’과 ‘함께 살아남아 되찾은 나날’의 두 기록

몽마르트르 유서
구묘진 지음, 방철환 옮김/움직씨·1만5000원

같이 산 지 십 년
천쉐 지음, 채안나 옮김/글항아리·1만5000원

2019년 5월24일, 타이완에서 동아시아 국가 최초로 동성 간의 결혼이 법제화되었다. 동성결혼 법제화가 한 사회의 이성애 중심적인 법적, 사회적 사고를 전환한다는 뜻이라면, 그 결정이 있기 전까지 타이완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구묘진의 <몽마르트르 유서>와 천쉐의 <같이 산 지 십 년>은 어떠한 변화도 갑작스레 일어나지 않는다는 증언처럼 읽힌다. <몽마르트르 유서>는 유서의 형식을 빌린 소설로, <같이 산 지 십 년>은 에세이의 형식으로 말한다.
2017년 5월24일, 타이완의 사법원(대법원)이 아시아에서 최초로 동성커플이 합법적으로 결혼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판결을 내린 뒤, 지지자들이 모여 기뻐하고 있다. 타이페이/로이터 연합뉴스
2017년 5월24일, 타이완의 사법원(대법원)이 아시아에서 최초로 동성커플이 합법적으로 결혼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판결을 내린 뒤, 지지자들이 모여 기뻐하고 있다. 타이페이/로이터 연합뉴스

1996년에 출간된 <몽마르트르 유서>는 책을 열고 닫는 ‘증인’이라는 두 편의 글과 스무 통의 편지로 구성되었다. “만약 이 글이 출간된다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어느 부분에서 읽기 시작해도 괜찮다. 글을 쓴 시간상 연관성 외에 내용 구성간의 필연적인 연관성은 의도하지 않았다.” 편지가 그러하듯이. <몽마르트르 유서>는 미스터리 소설처럼 솜과 조에의 관계를 조금씩 드러내 보여준다. 수신인에게는 편지 각각이 독립성을 지니는 기록이지만, 제3자가 편지의 발신인과 수신인에 대해 파악하기 위해서는(게다가 이 책이 편지의 형식을 띤 한 편의 소설임을 감안하면) 결국 순차적인 독서가 필요하다.

“영, 내 모든 것을 바친 단 한 사람이 날 버렸다”는 첫 문장으로 시작한 이 소설은 기자, 영화감독, 소설가였던 구묘진이 스스로 죽음을 택하기 전 남긴 글이다. 1995년에 쓰였다고 적힌 편지들은 수신인인 솜과 함께 키운 토끼 토토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한다. 솜은 타이완에, 죽은 토토와 편지 작성자 조에는 파리의 방에 있다. 조에는 솜을 향한 절박한 그리움과 변치 않는 사랑의 마음을 담아 썼다. “나에 대한 네 갖가지 배반과 사랑 없음은 정도가 어떻든지 내 사랑을 막을 수 없으며, 우리가 마주할 때의 고통이나 단절을 만들지 못했다.” ‘세속 생활’에 대한 조에의 고민. “‘세속 생활’이 요구하는 것은 수동적이고 도덕적인 ‘충성’이다. 내 부모님과 네 부모님이 다들 그렇게 살아가며 세속 생활 안에서 표준 합격자가 되려고 애쓴다.” 세속과 비세속의 구분을 조에가 어떻게 규정하는지 분명히 알기 위해서는 편지를 더 읽어가야 한다. 조에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조에의 행복만을 바란다면서, 필요하다면 무슨 일이든 나서서 해결해주겠다고 한다. 무엇을?
타이완의 소설가 구묘진. 움직씨 제공
타이완의 소설가 구묘진. 움직씨 제공

여자들만의 파티. 파리 생활의 귀착점처럼 느껴지는 편안하고 즐거운 자리. 과거가 서서히 드러난다. 솜과 조에는 사랑에 빠져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을 타향인 파리에 마련했다. 솜은 가족과 지인들의 압박 속에 조에를 떠났다. 조에는 쓴다. “나는 내내 여자들에게 끌렸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성적 교류가 필요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나는 분명 여자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 나는 여자 몸을 욕망했으며 여성을 사랑했다.” <몽마르트르 유서>는 사랑이 끝나고 삶을 끝내기 위해 다시 시작하는 사랑에 대한 회고다. 기억을 하나씩 되살려 쌓아올린 뒤 허물어 자신의 자리조차 없애는 작업을 하며, 구묘진은 조에였다가 조에를 관찰하는 시선이었다가 한다. 결국 원망보다는 애정을, 망각보다는 용서를 담았지만, 그 무엇도 구묘진을 죽음으로부터 구해내지 못했다.

<같이 산 지 십 년>은 어떤 사랑이 생존한 방법이다. <몽마르트르 유서>가 그렇듯, <같이 산 지 십 년>은 여성이 여성과 사랑에 빠지고 관계를 쌓아온 시간을 추억하는 구성인데, 후자 쪽은 ‘여전히 함께하는’ 커플의 회고다. 두 여자가 사랑에 빠져 동거를 시작했다. 2009년 친구들의 참관 하에 결혼식을 올렸다. 10년 뒤 타이완에서 동성결혼이 법제화되어 혼인신고가 허용된 첫날인 2019년 5월24일, 천쉐와 짜오찬런은 혼인신고를 마쳤다.

천쉐와 짜오찬런은 각자 전 여자친구들이 알려준 맛있는 요리에 대한 추억을 지니고 있다. 식사를 차리는 행위가 지닌 본질적 돌봄의 속성이, <같이 산 지 십 년>에서는 온갖 일상 요리들로 표현된다. “부엌은 짜오찬런의 성지다. 나는 메뉴를 고르지 않고 그녀도 무엇을 먹을 건지 묻지 않는다. 마치 생활 속에 존재하는 많은 사물처럼 우리는 수선스럽게 서로에게 묻지 않는다. 그저 서로의 마음을 헤아릴 뿐이다. 몹시 자유로워 보이지만 결국에는 늘 원하던 것에 가까이 근접하곤 한다.”

식사 메뉴 문제만은 아니다. 여든두 살에도 사랑할 수 있을까를 묻는 천쉐에게, 짜오찬런은 그렇게 오래 살 수만 있으면 진짜 좋겠다고 답한다. <같이 산 지 십 년>은 여자 둘로 이루어진 가정의 안락함이 한순간의 마법이 아니라는 사실을, 둘의 관계,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사회와의 관계를 통해 반복해 보여준다. 두 사람은 지금 가족과 주변 사람들로부터 환대받는 삶을 산다. 그런데 “커밍아웃을 하기 전에 우리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이유로 가족과 소원했었다.” 혼자 용기를 낸다고 되는 일은 아니었다. 천쉐도 성적 지향을 숨기며 지냈던 시절 스스로를 해칠지도 모른다는 생명의 위협을 느낀 적이 있었다.

동성결혼 법제화는 더 많은 사람들이 ‘평범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노년과 죽음을 덜 두려워하게 하는 사회적 장치가 된다. 총 3부로 이루어진 <같이 산 지 십 년>에는 각 부 사이에 동성결혼과 관련된 이야기가 정리되어 있다. 결혼이라는 제도는 질병이나 사별과 마주했을 때 사랑하는 사람이 병원에서 보호자가 될 수 있게 하고, 유가족으로 장례를 주관할 수 있게 하며, 재산에 대한 권리를 보장해준다.

<몽마르트르 유서>의 구묘진과 <같이 산 지 십 년>의 천쉐는 한 살 차이다. 두 책을 나란히 읽으면, 27살의 나이에 자살로 삶을 마감한 구묘진이 축복 속에 사랑하는 이와 함께할 수 있었다면 맞이했을 미래의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같이 산 지 십 년>은 오래 함께했고, 이제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된 중년 레즈비언 커플의 일상을 담았다. 책 후반부에는 동성결혼 법제화를 두고 국민투표가 이루어진 상황을 담았다.

이다혜 작가,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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