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린>과 <내 휴식과 이완의 해> 두 소설로 2010년대 영미문학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가 된 오테사 모시페그. 그의 세 번째 장편 <그녀 손안의 죽음> 역시 앞의 두 소설과 마찬가지로 미워할 수 없는 비호감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 Andrew Casey
오테사 모시페그는 잊을 수 없는 여성 인물의 창조에 능한 작가다. 펜/헤밍웨이상 수상작이자 맨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던 첫 장편 <아일린>(2015)의 표제 인물은 불만투성이 괴팍한 부적응녀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2018년에 낸 두 번째 장편 <내 휴식과 이완의 해>는 거액의 유산을 상속받았지만 삶에 대한 의욕을 잃은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 약물의 힘을 빌려 ‘동면’에 든다는 기이한 설정으로 눈길을 끌었다.
미국에서 지난해에 나온 그의 세 번째 장편 <그녀 손안의 죽음>의 주인공 역시 상식과 관습에서 벗어난 인물이라는 점에서 앞선 두 소설 주인공들에 이어진다. 소설은 칠십대 여성 베스타가 혼자 사는 외딴 숲속 집 근처에서 수상쩍은 쪽지를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그녀의 이름은 마그다였다. 누가 그녀를 죽였는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나는 아니다. 여기 그녀의 시신이 있다.”
소설의 첫 문장들이기도 한 이 쪽지 글이 300쪽 가까운 이야기를 끌고 간다. 베스타는 반려견 찰리를 데리고 혼자 사는데, 남편이 죽은 뒤 아무런 연고도 없는 먼 지역으로 이사를 왔기 때문에 가까운 이웃이나 친구도 없는 외톨이다. “(나보다)훨씬 열등한 것들을 내보내는 화면”을 혐오해서 텔레비전을 두지 않음은 물론, 휴대전화나 집전화도 없이 달랑 라디오 한 대만을 벗으로 삼는다.
그녀 손안의 죽음오테사
모시페그 지음, 민은영 옮김/문학동네·1만4500원
아침 산책길에 인적 없는 숲에서 발견한 쪽지가 살인 사건과 관련 있다고 생각한 베스타는 그 사건을 스스로 해결하기로 한다. 상식적인 인간이 그런 상황에 맞닥뜨렸다면 우선 경찰에 신고부터 했을 테지만, 앞에서 얘기했듯이 모시페그의 베스타는 상식과 관습의 인간이 아니다. “나는 어떤 규칙도 잘 어기지 않고 살아왔다”고 그는 자부하는데, 독자가 소설에서 발견하는 것은 주로 베스타의 위반과 일탈이다.
법규에 어긋나게 남편의 유골함을 호수에 빠뜨려 처분하고, 도서관에서 책장을 찢으며, 이웃 사유지를 침범하고, 남의 우편물과 머리빗을 훔친다. 과속운전으로 걸렸을 때 오히려 경찰을 의심하고 혐오하는 것은 약과다. 이런 위법 행위를 정당화하는 논리는 베스타 자신이, 경찰의 방해를 뚫고, 마그다 살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는 망상이다. “나는 법을 초월한 존재다. 정의의 척도로 보면 경찰보다 더 위다. 그런 내가 하는 일이 절취일 순 없다. 개입일 순 있어도.”
베스타의 고독하고 무료한 일상을 이런 망상을 낳은 범인으로 지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베스타 자신, 죽은 남편 월터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하지 않겠는가. “무료해서 그런 거야. 없는 일을 지어내기 시작해.”
소설은 베스타가 ‘마그다 살인 사건’을 추리하고 해결하고자 분투하는 이야기를 한 축으로 삼고, 그 과정에서 단속적으로 회고되는 월터와 결혼 생활의 내막을 다른 한 축으로 삼아 진행된다. 조각난 정보들을 모아 이어 보자면, 잘생긴데다 두뇌가 뛰어난 과학 전공 교수였던 월터는 제 나이의 절반에 불과했던 어린 베스타를 유혹해서 결혼했고 결혼 뒤에는 베스타보다 젊은 여자들을 상대로 끊임없이 바람을 피웠다.
월터와 베스타의 결혼 생활은 겉으로는 남들의 부러움을 살 정도로 평온하고 안정돼 보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이 소설이 진행되면서 조금씩 드러난다. “그는 나를 다정하게 대하려 할 때조차 업신여기고 통제하는 태도를 보였다. 나는 제대로 된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고 소설 말미에서 베스타는 자신의 결혼 생활을 요약하기에 이른다.
그런 불행한 결혼 생활이 베스타의 망상을 부추겼을 수도 있겠다. 베스타는 아무런 근거도 없이 마그다가 열아홉 살 된 벨라루스 출신 불법이민자이며, 복잡한 연애와 성 착취 관계 속에 경찰관의 손에 목이 졸려 숨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마그다가 목 졸려 죽었다는 사실, 그건 내가 알았다”고 그는 장담하는데, 그런 결론에 이르는 과정은 경찰관의 수사나 탐정의 추리보다는 미스터리 작가의 소설 작법을 닮았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점에서다.
실제로 베스타는 사건의 실마리를 찾고자 도서관에 들러 컴퓨터로 이런저런 자료를 검색하는데, 그 가운데에는 ‘미스터리 작가를 위한 최고의 팁’이라는 항목도 있다(베스타의 집에는, 당연히, 컴퓨터도 없다!). 베스타가 이 팁에서 알게 된 ‘인물 프로필 질문지’ 양식에 따라 마그다의 성격과 환경, 가족 및 친구 관계 등을 채워 나가는 과정은 정확히 미스터리 작법을 닮았다.
주인공 베스타가 외톨이이기 때문에 소설은 거의가 베스타의 독백으로 이루어졌다. 살인 사건 해결이라는 망상에 들린 베스타는 현실에서 만나는 극소수의 인물들조차 자신의 망상 속 사건 관련자들로 ‘전유’한다. 소설가가 주변 인물들을 제 소설에 등장시키는 것과 같은 이치다. 소설에는 ‘정신 공간’이라는 표현이 자주 나오고, 앞부분에서 베스타는 “정신이 하는 일이란 참 이상하기도 하다”고 독백하는데, 이 소설이야말로 베스타의 정신이 하는 일의 기록이라 하겠다.
한창 마그다 살인 사건에 관한 추리에 몰두하고 있을 때에도 베스타는 “왜 나는 마그다 일에 정신이 나가도록 집착할까? 아마 전부 내 상상일 텐데”라며 ‘현타’의 방문을 받기도 하지만, 그 방문이 오래 가지는 못한다. 소설 뒷부분에서 베스타가 마주친 이웃 부부는 자신들이 ‘살인 미스터리 파티’를 꾸미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베스타는 쪽지가 그 파티와 관련된 것이 아닐까 잠시 의심하는데, 결말은 또 다른 반전을 준비해 놓고 있다. 소설의 주제의식을 담은 아래의 문장들은, 소설 첫머리의 마그다 쪽지와 조응하면서, 베스타를 미워할 수 없는 비호감 주인공의 반열에 올려 놓는다.
“내 이름은 베스타였다. 나는 살았고, 또 죽었다.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할 것이다, 누가 나를 알기를 바랐던 적도 없지만.”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