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시침 뚝 떼고 능청스럽게

등록 2021-04-23 05:00수정 2021-04-23 09:42

우리가 당신을 찾아갈 것이다
김홍 지음/문학동네·1만3500원

201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김홍의 첫 소설집 <우리가 당신을 찾아갈 것이다>에는 등단작 ‘어쨌든 하루하루’와 표제작을 포함해 여덟 단편이 묶였다. 김홍의 소설들은 거침이 없고 능청스럽다. 그는 현실에 있을 수 없는 일을 시침 뚝 떼고 소설 속 상황으로 설정해 놓고 그에 관해 아무런 해명이나 주저도 없이 이야기를 밀고 나간다. 독자는 처음에는 의아해하다가도 이내 경계심을 풀고 작가가 창조해 놓은 세계 속에 몸을 담그게 된다. 그것이 어처구니없는 헛웃음일지언정, 웃음을 통해 현실의 무게와 간섭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 김홍 소설의 미덕이라 할 수 있다. 

표제작 ‘우리가 당신을 찾아갈 것이다’에서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해수를 돌봐준 동네 아저씨 크리스는 폐암으로 죽기 직전, 트럼펫 연주자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싶다는 유언을 남긴다. 문제는 그가 단 한 번도 트럼펫을 연주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소설은 “아무도 아닌 사람. 그냥 집에 있던 사람. (…) 그저 그런 사람”이었던 크리스 아저씨의 유언을 집행하려는 해수의 엉뚱하면서도 눈물겨운 노력을 그린다. 미국 ‘연방 트럼펫 주자 관리 위원회’ 요원이 등장해 해수를 위협하는 일도 있었지만, 결국 해수는 크리스 아저씨를 트럼펫 연주자로 데이터베이스에 올리는 데 성공한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따라 온 독자는 해수의 거짓말을 질책하는 대신 그의 우정과 신의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소설 말미에서 해수는 “쓸데없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모든 걸 거는 사람”이라 표현되는데, 그런 점에서 해수는 김홍 소설의 전형적인 인물에 해당한다. 

소설가 김홍
소설가 김홍

‘어쨌든 하루하루’는 달 탐사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엄청난 국가부채를 떠안게 된 정부가 해체를 선언하는 상황을 배경으로 삼는다. 정부의 프로젝트로 달에 보낸 기계 ‘벼룩’들을 하나씩 폭파시킬 수 있는 단추가 ‘나’의 손에 들어오고, 나날이 연패 기록을 갱신하는 연고지 프로야구 팀이 안타를 맞을 때마다 주인공과 그의 친구들은 분노의 폭죽을 터뜨리듯 단추를 누른다….

밤을 새워 가며 고된 택배 상차 노동에 시달리는 인물이 만화 같은 공상으로 현실의 고통을 잊으려는 모습을 그린 ‘699.77’, 게르마늄 목걸이를 한 개가 사람으로 변신하는 이야기 ‘실화’, 중국이 없다고 진지하게 주장하는 이를 등장시킨 ‘싱가포르’ 등 김홍의 소설들은 현실에 기반하되 그에 얽매이지 않는 분방한 상상력으로 책읽기의 즐거움을 더한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문학동네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