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스트 되는 법: 실용지침서
미켈라 무르자 지음, 한재호 옮김/사월의책·1만3000원
나는 민주주의에 반대한다. 민주주의는 쓸모없을 뿐 아니라 해롭다. 솔직히, 일반대중에겐 이런 주장을 할 필요도 없다. 파시즘이 민주주의보다 낫다고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잘 알고 있다. 민주주의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고 늘 이야기하고, 자발적으로 파시즘으로 눈길을 돌린다. 문제는 민주주의에 지친 교양 계층이다. 이들에겐 왜 민주주의가 유해하며 파시즘이 필요한지 가르쳐 줘야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파시즘이 무엇인가보다 파시즘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다. 파시스트 되는 법을 따라 하기만 하면, 이념의 성취로 이어질 것이다.
파시즘에서 ‘지도자’(leader)는 필요없다. ‘수령’(head)이 적절하다. 현실은 위계질서 없이 돌아가지 않는다. 지도자를 뽑아놓고선 관료주의나 절차주의가 통제하는 모양이라니. 민주주의는 얼마나 엉성한가. 지도자는 카리스마를 잃고 바보 같은 타협만 추구하게 된다. 불안정한 정부는 대중에게 만족을 줄 수 없다. 국가를 운영하려면 행동에 결단력이 있고 추종자를 이끄는 데 주저함이 없는 인물, 어떤 수단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장애물을 치우는 인물이 필요하다. 대중에게 고구마보다 사이다를 줄 수 있는 수령이 필요할 뿐이다.
지난 2019년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스무번째 도약, 평등을 향한 도전!’이 열린 서울 중구 서울광장 주변에서 일부 기독교 단체 회원들이 ‘반동성애 집회’를 열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소셜미디어는 파시스트에게 매우 중요한 수단이다. 파시스트가 향후 나아갈 길을 설계하는 데 아주 유용한 잠재력을 품고 있다. 수령은 사람들에게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통해 직접 말할 수 있는데, 짧고 명확하고 기억하기 쉬운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아주 효과적이다. 파시스트가 대중과 소통하는 이유는 이해를 구하려는 것이 아니라 반복하기 위해서다. 복잡하고 어려운 민주주의에 억지 관심을 가져온 사람들은 모든 일을 사소하게 바라볼 수 있는 후련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사소화 전략’은 파시스트에게 대단히 중요하다.
적 없이는 파시스트가 될 수 없다. 없다면 만들어야 한다. 어렵지 않다. 대개 적에게는 정체성이 없고 이름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 그저 ‘페미니스트’ ‘빨갱이’ ‘종북주의자’ ‘이민자’ 등 모호한 범주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민주주의가 이겨온 세월 동안 우리는 비정상적 이데올로기를 강요받아왔다. 페미니즘이 대표적이다. 여성을 칭찬하거나 만지기라도 하면 즉시 성폭력 혐의를 받게 됐다. 자연을 거슬러 성소수자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본말이 전도된 민주주의 세상을 넘어 우리는 파시즘의 지혜로 여성들을 일깨워야 한다.
민주주의의 다양한 모순을 파시즘은 이용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이 비폭력이다. 민주주의는 비폭력을 내세우면서 국가만이 폭력을 독점한다. 완벽한 역설이지만 파시스트에게 꽤 도움이 된다. 지배는 그 자체로 폭력이다. 폭력적인 세상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또다른 폭력밖에 없다. 총기자유화는 매우 권장된다. 뿐만 아니라 언어는 중요한 수단이다. 유색인 대신 흑인, 성 노동자 대신 창녀, 특수능력자 대신 불구, 엘지비티(LGBT) 대신 변태로 불러야 한다. 어중간한 표현은 모두 날려버리고 패를 숨김없이 말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제 그만! 설마 이 언설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독자는 없으리라 믿어본다. <파시스트 되는 법>은 ‘내 안의 파시즘’을 확인하기 위한 유용한 도구다. 신랄한 패러디에 찔리는 구석이 있다면, 혼란스럽지만 쾌감이 느껴진다면, 성찰할 일이다. 특히 이 책 부록에서 자가진단해보길 ‘강추’한다.
김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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