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책거리
‘책&생각’ 섹션을 펼쳐보신 오늘은, 어느덧 4월 마지막 날입니다. 4월은, “사월”이라고 가볍게 불러보는 것만으로도 주변 공기가 달라집니다. 소리 내지 않고 읽어도 제각각의 봄 느낌은 살아날 것입니다. 물론 이런 식이라면, 오월도 유월도 더 나아가 시월도 나름의 독자적 어감을 갖고 있습니다만.
이토록 사뿐하고 은은한 감각을 지닌 달이지만 대체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April is the cruellest month)이라는 시구를 떠올리며 시작하곤 했습니다. 학력고사를 준비하던 고3 시절, 4월이면 모의고사가 시작되었기에 영어 선생님은 영국 시인 티(T.) 에스(S.) 엘리엇(1888~1965)을 거론했던 것입니다. 고3들의 수험 생활을 시작하는 마음은 황무지 같았으니까요.
엘리엇의 시 ‘황무지’(The Waste Land·1922) 전체 5장 가운데 1장 ‘죽은 자의 매장’(The Burial of the Dead)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이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황동규 역) 꽃 피는 4월의 잔인함은, 죽음 이후에야 가능한 재생, 황무지를 피땀 흘려 개간해야 얻을 수 있는 비옥함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요.
우리의 4월이 그러합니다. 학살과 혁명, 대참사의 기억들을 꺼내들어야 하는 잔인한 달이니까요. 잔인함을 직시하여 감내하고 분개하고 애도함으로써 그 이후를 살아내야 하는 것이 우리의 몫입니다. 이런 4월을 마무리하는 터에 ‘재벌회장 유산 60% 사회환원’이라는 프로파간다에서 오만과 탐욕, 무지가 읽히는 일은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때마침 읽게 된 “존재라는 것은 언제나 무엇인가를 현실화하는 힘”이라는, 김율 대구가톨릭대 교수의 ‘아퀴나스 해설’(5면) 한 문장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김진철 책지성팀장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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