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봉투가 먹어치운 대왕고래: 어린왕자의 푸른별 여행 이야기
김영훈 글·그림/생각굽기·1만4000원
어린왕자가 다시 푸른별에 왔다. 행방불명이 된 친구, 비행기 조종사를 찾기 위해. 어린왕자는 친구를 찾지 못하지만 자신의 별로 돌아가지도 못한다. 푸른별을 뒤덮은 먼지구름에 별빛이 가려서다. 어린왕자는 아직 오염되지 않았을,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을 향해 떠난다. 그 길에서 어린왕자는 여러 어른들의 다양한 탐욕과 마주친다. 푸른별을 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높은 산에서도 보이지 않는 별빛에 실망한 어린왕자는 한 병사를 만난다. 실종된 조종사 친구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그려줬는데, 어린왕자는 병사에게 대왕고래를 그려 달라고 한다. “그림을 본 어린왕자는 (…) 매우 좋아했지만 그의 눈엔 슬픔 또한 배어 있었다.” 그러더니 펜을 넘겨 받아 민소매 셔츠처럼 보이는 그림을 그렸다. “비닐봉투가 먹어치운 대왕고래”였다. “대왕고래는 인간이 버린 썩지 않는 비닐봉투를 먹이와 함께 먹고 배가 아파 복통으로 죽었어. 그러니 결국 비닐봉투가 대왕고래를, 아니 바다를 통째로 잡아먹어 치운 거야.” 길에서 만난 어른들이 “함부로 버린 썩지 않는 쓰레기들”이 죽은 대왕고래의 뱃속에 가득했던 것이다.
김영훈 화백이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소환한 것은, “어쩌다 어른이 된 이들이 (…) 진정 부끄럽지 않은 어른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기 위해서다. <비닐봉투가 먹어치운 대왕고래>가 어른들이 망쳐놓은 세계를 뜻하는 우화라면, 어린왕자가 어른들에게 요청하는 것은 세계를 구원할 성숙함이다. 어린왕자의 여행을 따라가며 만나게 되는 김영훈 특유의 삽화는 메시지의 전달력을 높인다.
김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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