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제국, 실크로드의 개척자들: 장군, 상인, 지식인
미할 비란·요나탄 브락·프란체스카 피아셰티 편저, 이재황 옮김, 이주엽 감수/책과함께·2만5000원
동서양의 전면적인 교류를 가능하게 만든 몽골제국과 실크로드는 근대 세계와 세계화의 출발을 톺아보기 위해 최근 학계에서 가장 각광받는 연구 주제로 꼽힌다. 이스라엘, 오스트리아, 중국, 독일, 일본, 헝가리, 한국 등에서 다양한 학자들이 대거 참여한 <몽골제국, 실크로드의 개척자들>은 그런 관심의 최신 성과물이다. 2019년 유럽연합 산하 유럽연구협의회(ERC) 지원 프로젝트에 참여한 학자들의 논문을 엮은 책이다.
몽골제국의 성립과 팽창은 유라시아 대륙을 연결했고, 이전과 달리 사람과 사상, 물품 등이 대륙 전 구간을 이동할 수 있는 계기를 열었다. 군 지휘관, 상인, 지식인 등 세 부류의 엘리트가 그 핵심에 있었다. 책에 실린 논문들은 이 세 부류에 속하는 개인 15명에게 각각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특히 흥미롭다.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당시 세계를 좀더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몽골의 군대는 유라시아 대륙의 연결과 이동을 가능케 한 주요 촉매제였다. 중국 송나라를 격파해 복건성의 항구도시인 천주를 손에 넣은 몽골제국은 동남아시아와 인도양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해상 실크로드까지 구축했는데, 한족 출신 장군으로서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외교관으로도 활약한 양정벽에 대한 기록이 이를 잘 보여준다. 바그다드 출신 상인 자말 앗딘 아시비는 몽골 귀족의 상업적인 대리인 또는 파트너인 ‘오르탁’으로, 몽골 지배를 통해 구축된 아시아를 가로지르는 상업 시스템을 활용했다.
몽골제국 일 칸국의 대신이었던 라시드 앗딘이 편찬한 <역사 모음>에 수록된 몽골 병사들의 모습. 위키미디어 코먼스
이란의 유대인 의사 집안에서 태어난 라시드 앗딘은 ‘일 칸국’ 대신이면서도 세계사 책인 <역사 모음> 등 여러 분야의 저술을 남긴 지식인이었다. 그는 이슬람 세계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으면서도 불교에 대해 비교적 상세하고 정확한 저술을 남겼는데, 이는 “몽골이 지배하는 유라시아 대륙에서 물건과 사람과 사상과 종교의 유동성이 전례 없이 높아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에 영감을 준 ‘공주 전사’ 쿠툴룬, 기독교 상인을 후원한 금장 칸국의 황후 타이툴라 등 여성들의 활약도 두드러진다.
이 책에 동원된 언어와 자료는 페르시아어 연대기, 아라비아어 전기, 한문으로 된 비문과 지방지, 러시아어로 번역된 몽골어 조칙, 이탈리아어 무역 문서, 라틴어 여행기 등으로 다양해, “몽골 치하에서 나타났던 다면적 유동성과 문화 간 교류의 규모, 다양성, 함의를 생생하게 실증해준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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