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학자의 노트: 식물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
신혜우 글·그림/김영사·1만9800원
봄의 끝자락, 꽃들의 향연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산수유, 살구나무, 벚나무, 앵두나무 꽃이 지고 조팝나무, 라일락을 지나 이제 산사나무, 팥배나무, 황매화, 이팝나무 등이 만개하고 있다. 머지않아 산수국과 수국, 장미 등이 그 화려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가장 사랑받는 여름꽃 중 하나인 산수국과 수국의 꽃 색깔은 한 가지가 아니다. 자라는 땅의 물이 산성이면 푸른 꽃을, 염기성이면 붉은 꽃을, 중성에서는 하얀 꽃을 피운다. 산수국 꽃 이야기는 더 있다. 산수국 꽃은 곤충을 유혹하기 위한 화려한 가짜 꽃과 안쪽의 잘 보이지 않는 진짜 꽃으로 이뤄져 있다. 진짜 꽃이 수정되고 나면 가짜 꽃은 고개를 아래로 숙이고 초록색으로 변한다. 인간이 산수국의 가짜 꽃만으로 만든 원예종이 수국이다. 그래서 수국은 열매를 맺고 번식을 할 수 없다. 장미 역시 야생종인 찔레를 인간이 겹꽃잎으로 바꾼 것이다. 인간의 식물에 대한 ‘개입’은 단순히 더 예쁜 꽃을 보기 위한 개량 정도에 머물지 않는다. 멸종위기식물 2급인 으름난초는 잎이 없고 가을이면 붉은 열매가 홍고추처럼 달리는 신기한 형태를 하고 있다. 하지만 멸종위기식물이기에 더 귀하다며 이 난초의 붉은 열매로 술을 담가먹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행태들 때문에 식물분류학자들 사이에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멸종위기식물을 지정하면 그 식물은 곧 그 자생지에서 사라진다는 것이다. 자생지가 알려지면 도굴꾼들이 금방 식물들을 다 캐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생지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을 일부러 제외하고 보고서나 논문을 출판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식물학자의 노트>는 식물분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학자이자 과학 일러스트레이터인 저자가 자신이 그린 그림과 함께 식물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나간 식물 에세이집이다. 식물의 생명력과 적응력, 진화의 경로, 다른 생물과의 협력 등 식물의 다양한 측면을 쉽게 설명하면서도 과학적 근거를 함께 제시하려 노력한다. 글과 함께 실린 일러스트는 단순히 식물을 아름답게 묘사하는 것을 넘어, 꽃, 열매, 씨앗, 잎, 눈, 뿌리, 수피 등 식물의 전체 모습을 보여주는 정확한 묘사를 통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학술용 식물도해도에서 시작한 저자의 식물 일러스트는 영국왕립원예협회의 보태니컬 아트 국제전시회에서 세 차례 금메달을 수상했다고 한다. 안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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