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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꿈 좇는 20대 여성의 피, 땀, 녹즙

등록 2021-05-07 04:59수정 2021-05-07 12:05

녹즙 배달원 강정민

김현진 지음/한겨레출판·1만4천원

“여동생 같고 처제 같아서 하는 얘긴데 요즘 바 같은 데가 옛날 같지 않아요. 점잖은 손님들만 오는 곳도 많이 있고 이런 일보다 돈 훨씬 많이 벌 텐데…” 손님의 오지랖은 ‘그래서 어쩌라고’를 유발하게 하지만, 밝은 미소와 그럴듯한 변명으로 받아친다. 처음 취직한 곳은 성희롱이 일상이던 ‘남초’ 게임 회사였다. 그 회사에서 5년을 견뎌 모은 돈을 오빠 결혼자금으로 쏟아 부은 엄마에 갑질·성희롱 일삼는 진상 손님들도 모자라 젊은 여성 배달원을 두고 조롱하는 인간들까지. “이러니 세상에, 제가 술 없이 어떻게 견딜 수 있겠어요?” 울분에 찬 목소리가 들린다.

<네 멋대로 해라> <내가 죽고 싶다고 하자 삶이 농담을 시작했다>를 쓴 김현진 작가가 2년간 녹즙 배달원으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써냈다. 회사에 고용된 노동자가 아닌 법 밖의 특수고용 노동자는, “첫딸은 원래 살림 밑천”이라는 염치 없는 가족과 ‘여자가 말이야’ ‘여자면 말이야’가 빗발치는 부조리를 홧술로 삭인다. 비정규직 노동, 그들을 대하는 정규직의 갑질, 출산 도구 혹은 집안일 노예 정도로 여겨지는 여성 등 소설에서 거침없이 쏟아지는 여러 불평등은 마주하기가 불편하다. 주인공은 차고 넘치는 ‘술 마실 이유’에 부응하듯 매일 숙취에 시달리지만 손님들에게는 건강 녹즙을 내민다.

모욕적인 상황에서도 큰소리 한번 못 치고 ‘자본주의용’ 웃음으로 넘겨버리는 주인공이 내심 답답할 수 있다. 하지만 절대 주저앉지 않는 씩씩함엔 용기가 숨어 있고, 통쾌한 일격을 날려주는 ‘사이다 언니들’의 존재는 위로가 된다. 김세미 기자 ab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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