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됨과 정치:서구 정치 이론에 대한 페미니즘적 독해
웬디 브라운 지음, 정희진 기획·감수·해제, 황미요조 옮김/나무연필·3만3000원
<남성됨과 정치>는 미국의 정치철학자 웬디 브라운(66)이 1988년에 펴낸 첫 저작으로, 부제가 말해주듯 서구의 주요 정치이론을 페미니즘에 입각해 비판적으로 읽어낸 책이다. 단지 여성을 배제하고 거부한 사실들을 지적하는 데에만 머물지 않고, 서구 정치이론의 본질을 ‘남성됨’과 정치의 관계를 중심으로 삼아 새롭게 파헤쳤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저작으로 평가받는다. 지은이는 아리스토텔레스, 마키아벨리, 베버 등 서구 정치이론의 대표 사상가로 꼽히는 3명을 비판적으로 읽어나가며, 이들의 정치 개념과 이론 속에 ‘젠더화된’ 남성됨이 얼마나 뿌리박혀 있는지 드러내려 시도한다.
남성됨이 무엇인지 별다른 규정 없이 시작하지만, 지은이는 각 사상가들이 처한 곤경 속에서 이들이 말하는 정치의 본질이 “사회적으로 고안된” 남성됨과 얼마나 연관이 깊은지 짚어낸다. 고대 그리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자연적으로 정치적 동물”이라 주장하며 자유로운 시민의 공적 영역(‘폴리스’)과 필요한 것을 채우는 사적 영역(‘오이코스’)을 엄격하게 떼어놓았다. 그러나 남성과 여성, 주인과 노예, 정신과 육체 등을 구분하고 전자에 우월적 지위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이는 결국 남성됨이 정치의 한가운데 자리잡게 만든 출발점이라는 게 지은이의 풀이다.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마키아벨리는 저 위쪽에 있던 정치를 육체가 사는 지상으로 끌어내렸다. 대신 통제할 수 없는 ‘포르투나’(운명)와 전투를 벌이는 ‘비르투’(극복) 개념을 통해 “지배와 정복을 향한 충동”이라는, 좀 더 노골적인 남성됨을 그 중심에 놓았다. 자본주의와 관료제 국가를 체계로 삼는 근대의 본질을 통찰한 베버 역시 남성됨에 대한 추앙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지은이는 이들의 정치이론에 일관되게 흐르는 남성됨은 바로 “자유와 필요의 적대적 이원론”에서 비롯했다고 본다. 남성됨은 “삶, 단순한 생존, 필멸성, 일상, 리듬, 자연과 필요의 개입 등을 초월”하려 하지만, 이는 필요의 반대편에 있기 때문에 반드시 “다른 이의 식민화를 전제“로 한다. 그러니 이런 남성됨에 기초한 정치 자체를 비판적으로 해체하는 데에서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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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철학자 웬디 브라운.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 누리집 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