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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중세적 이상 ‘베아트리체’의 베일을 벗겨라

등록 2006-02-02 19:39수정 2006-02-06 15:47

<데카메론>은 페스트를 피해 열 명의 남녀가 하인들을 거느리고 별장에 은신해 맛있는 음식과 술을 먹고 춤추고 노래하며 주고받는 재미난 이야기들이다. 성의 욕망과 간교한 처세술, 쾌락의 추구 같은 것들이다. 그런 <데카메론>은 아무런 지향 없이 열려 있다. 우리가 <데카메론>을 읽으며 곤혹스러워진다면, 그건 바로 그 당당한 열림을 주체할 수 없기 때문 아닐까. 그림은 1473년판 <데카메론>에 실린 삽화.
<데카메론>은 페스트를 피해 열 명의 남녀가 하인들을 거느리고 별장에 은신해 맛있는 음식과 술을 먹고 춤추고 노래하며 주고받는 재미난 이야기들이다. 성의 욕망과 간교한 처세술, 쾌락의 추구 같은 것들이다. 그런 <데카메론>은 아무런 지향 없이 열려 있다. 우리가 <데카메론>을 읽으며 곤혹스러워진다면, 그건 바로 그 당당한 열림을 주체할 수 없기 때문 아닐까. 그림은 1473년판 <데카메론>에 실린 삽화.
정원사와 놀아난 수녀·성적 불만에 남편 버린 아내…
쾌락 좇는 발랄한 여성 열전 100편
현실의 벌건 살 드러내고 바꿔갈 당찬 의지 주목
여성과 페스트라는 기호로 삶의 진실 반추

고전 다시읽기/보카치오 ‘데카메론’

나는 ‘고전’ <데카메론>에 우리가 곤혹스러워 하지 않는 이유가 이상하다. 외설성이 짙다 하여 50년 전까지만 해도 교황청의 금서 목록에 올라 있었지만, 이웃 일본과 달리 우리는 문제로 삼아본 적이 없다. 그만큼 한 편의 서양 고전을 자연스럽게 수용했지만, 사실 ‘데카메론’이라는 기호는 술집과 노래방, 만화, 영화, 에로 소설 등으로 더 친숙하다. 서양의 고전 <데카메론>에 우리는 무관심했고 진지하지 못했으며, 어쩌면 일본보다 옥시덴탈리즘이 더 강했던 것 같다. 그 결과 <데카메론>은 우리에게 죽은 고전이 되었다.

더욱 곤혹스러운 것은 <데카메론>을 읽을 때 ‘고전’다운 무엇을 찾기 힘들다는 점이다. 페스트를 피해 열 명의 남녀가 하인들을 거느리고 별장에 은신하여 맛있는 음식과 술을 먹고 춤추고 노래하며 재미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인데, 이야기의 내용도 여성의(에 대한) 욕망과 간교한 처세술, 쾌락의 추구 같은 것들이다. 그러나 메시지가 전면에 드러나면 재미가 없는 법. 고전이란, 그리고 문학이란, 원래 모호성을 지니기에 끝없는 읽기의 즐거움을 준다.

<데카메론>에서 주목할 것은 단연 여성이며 여성의 욕망이다. 100편의 이야기 중에서 성적 욕망과 관계없는 남자들 얘기는 몇 있지만, 남자와 관계하지 않는 여자가 나오는 경우는 하나도 없다.

특이하게 여성에 대한 보카치오의 입장은 이중적이다. 수녀원에서 따분하게 지내던 어린 수녀는 남자와 놀기보다 더 즐거운 일이 없다는 얘길 듣고 정원사 아저씨와 놀아난다. 순결의 서약도, 임신이라는 현실적인 모험도, 성적 즐거움을 채우려는 목적을 방해하지 못한다. 판사의 아내는 성적 욕망을 감당하지 못하는 남편을 버리고 자신을 훌륭하게 채워주는 해적을 선택한다. 우여곡절 끝에 찾아와 돌아오라고 호소하는 남편에게 늘어놓는 그녀의 언어는 발랄하고 펄떡거려 음탕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말 속에 담긴 주장은 세련된 언어를 구사하는 기스문다와 다를 것이 없다. 아버지에 대한 기스문다의 긴긴 답변은 극히 논리정연하고 설득력을 갖추었으며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당찬 모습을 보여준다.

가부장제 길들여진 여성도 등장


그러나 보카치오가 <데카메론>에서 여성을 당당한 얼굴로 그리는 것만은 아니다. ‘판사의 아내’의 성적 해방은 남자에게 일생을 맡기면서 이루어졌다. ‘어린 수녀’의 욕망은 정원사 아저씨 욕구의 부속물이었다. 아홉 명의 남자를 거치면서 재미를 보고나서 숫처녀 행세를 하며 결혼에 성공하여 행복하게 사는 여자도 나온다. 그녀의 성적 정체성과 자유는 순간의 일탈이었고, 결국 결혼이라는 가부장제에 안착한다. 뿐인가. 남성우월주의에 길들여지고 남편에게 맞아도 참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여자들도 곧잘 등장한다.

보카치오는 <신곡>의 베아트리체와 같은 고매한 여자를 상상할 줄 모른다. 그가 아는 중세의 기사는 여성의 신비의 베일을 보호하기보다 우악스럽게 벗겨 던져버린다. 그가 만난 수도사는 여성으로부터 유혹을 느낄 뿐이다. 그런가하면 그가 목격한 여자들은 발랄한 기운을 사방팔방으로 뻗치며 삶을 음미하고 즐기는, 살아 있는 사람들이다.

보카치오가 살았던 700년 전은 중세. 아직 기독교의 내세 중심적인 세계관이 지배하던 시절이었지만, 세상은 변하고 있었다. 중세적 이상의 너울에 가려져 있던 새로운 미래의 꿈틀거림을 포착하고 예고했던 보카치오는 분명 작가의 예민한 촉수를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봉건체제의 동요에서 자본주의의 완성으로 이행하던 근대 부르주아의 이데올로기가 <데카메론>에 깔려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더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보카치오가 <데카메론>에서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재현했다는 점이다. 그의 당대가 중세였고 그가 예고한 것이 근대의 현실이었다면, 재현하고자 한 것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현실이었다. 그 현실은 늘 새롭기만 한 것은 아니었고 또 늘 여성을 위안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 현실은 늘 고매한 것도, 늘 가혹하거나 파렴치한 것도 아니었다. 여성에 대한 보카치오의 이중적인 태도는 그가 중세의 절대적 이상과 근대의 새로운 이념에 얽매이지 않은 채, 있는 그대로의 현실에 접근하려 했다는 징표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은 그에게 언제나 모호했다.

페스트 대입하면 양극화·오염…

<데카메론>에서 도드라지는 또 다른 현실은 페스트다. 페스트는 당시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집어삼켰다. 보카치오는 어떤 지혜나 신앙도 소용없는 페스트의 창궐을 바라보며 인간의 한계를 절감했던 것 같다. 페스트의 재난은 사실의 기록보다 <데카메론>의 허구적 묘사로 더 잘 전해진다. 당시 수많은 사람이 죽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페스트라는 병 때문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페스트가 바이러스성 전염병이라는 사실을 인류는 100여 년 전에야 알았다.

<데카메론>에서 여성이 그러하듯, 페스트는 하나의 기호다. 우리는 그 기호에 친숙했지만 그것이 무얼 지시하는지 모르거나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 같다. 장미가 시들어 부스러지고 재가 되어 사라진 뒤 남는 것은 ‘장미’라는 기호보다는 그것이 지시한 무엇들이다. 무엇이라는 실체의 내용, 위치, 다른 것들과의 관계가 우리에게 남는다. 더 정확히 말해 남는다기보다 우리의 해석에 따라 부여되고 구성된다. 그래서 페스트가 지금 여기서 무엇인지 물을 때 세계화와 양극화, 환경오염 등의 황량한 그림자가 우리를 덮어쓰고 있음을 보게 된다.

여성과 페스트의 경우처럼, ‘데카메론’이란 기호는 완강하면서도 모호하다. 그것은 <데카메론>이 도덕과 이념, 종교와 같은 완강한 보편 체계를 초월하여 파편처럼 흩어진 현실의 조각들을 재현하기 때문이다. 교회가 다른 세계를 약속하고, 이념이 다른 미래를 꿈꾸게 하며, 도덕이 미래 세계를 절대 기준으로 강요하면서 하나같이 패권적 권력을 낳는다면, <데카메론>의 현실은 그 권력에 가려진 주변부 삶의 진실한 모습들을 거울처럼 비춰준다. 그래서 <데카메론>이 보여주는 ‘다른 세계’는 약속된 것이기 보다 우연히 마주치던 삶이며, 그것이 제시하는 ‘다른 미래’는 꿈의 대상이기보다 현재의 이면들일 뿐이다.

그렇게 <데카메론>은 이상을 거절하고 현실을 소개한다. 뿐만 아니라 현실을 바꾸어나갈 의지의 낙관론을 펼친다. ‘이성의 비관주의와 의지의 낙관주의’를 실천한 그람시, 한없이 낮은 목소리로 내려가 듣고자 했던 파솔리니는 아마 <데카메론>부터 내려오는 이탈리아의 지적 전통을 살아 있게 만드는 것 같다. 이들의 출발은 현실이다. 암울한 페스트의 안개는 거짓된 약속을 체념한 현실의 땅에서만 걷어낼 수 있다.

현실에 대처하는 <데카메론>의 인물들은 정열과 관용으로 가득 차 있다. 그 정열은 중세 기독교의 금욕을 향한 정열과 다르며 그 관용은 자기와 다른 생각에 대한 이상주의적 배척을 거부하는 가운데 우러나온다. <데카메론>의 인물들은 도덕적이지 않으며 이상에 무관심하다. 교묘한 처세로 험한 세상을 잘도 헤쳐 나간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늘 주변부에 머문다. 도덕적인 순수에 호소하여 하나의 이상을 설정하고 추구하는 가운데 나오는 권력과 거리가 멀다. <데카메론>이 현실의 벌건 속살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것은 바로 그들을 통해서다.

박상진/부산외대 이탈리아어과 교수
박상진/부산외대 이탈리아어과 교수
도덕·이상 강조한 ‘신곡‘과 대비

<데카메론>은 <신곡>에 비해 현저하게 열려 있다. <신곡>은 기독교의 구원을 뚜렷하게 지향하는 만큼 자유로운 해석을 여는 큰 수고를 요구하지만, <데카메론>은 아무런 지향 없이 그 자체로 열려 있다. 지향하는 곳이 단지 현실이며, 현실이란 자체가 모호하고 우연한 무엇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가 <데카메론>을 읽으면서 곤혹스러워진다면, 그것은 바로 그 당당한 열림을 주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는 어떤 이상에 터를 둔 사회,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역사에 몸을 싣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근대와 기독교의 발전론적 역사주의라면, 고전 <데카메론>은 분명 그것을 넘어서는 더욱 보편적인 지향점을 내재하고 있을 것이다.

서평자 추천 도서

데카메론

조반니 보카치오 지음, 한형곤 옮김

범우사 펴냄(2002)

(국내 유일의 이탈리아어 원전 번역)

유명한 여자들

조반니 보카치오 지음, 임옥희 옮김

나무와숲 펴냄(2004)

(여성의 터를 도덕과 이데올로기를 넘어 깊고 넓게!)

데카메론: e시대의 절대문학

박상진 지음

살림 펴냄(근간)

(<데카메론>을 나름의 해석을 곁들여 소개)

50자 서평

◇ 도효새(인터넷서점 알라딘 마이리뷰에서)5M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계층은 새로운 신흥계급인 부르주아지다. 이들은 성직자의 타락과 기사·귀족계급의 무능, 농민의 빈곤을 마음껏 조롱하고 있다.”

◇ 하드리아누스75(〃) “웃고 울며 먹고 마시며 연애하고 어처구니 없게 죽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 획일적 가치나 권력과 늘 괴리되면서도, 그렇다고 전적으로 분열되거나 해체되지 않는 일상적 인간의 모습….”

◇ 아이엠포유(〃) “중세시대에 이 책은 다분이 파격적이었으리라. 성적 욕망과 쾌락에 관한 이야기라든지 종교에 관해 비꼬는 이야기 등이 실려, 당시(중세 말)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할 수 있다.”

▽ 다음주 이후 고전 <소피스테스>, <호밀밭의 파수꾼>, <과학혁명의 구조>의 50자 서평에 참여해주세요. 전자우편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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