쩌우전환 지음, 한성구 옮김/궁리·4만5000원 중국에 온 이탈리아 선교사 마테오 리치가 중국에서 가장 먼저 발행한 책은 <천주실의>가 아니라 서양 철학자들의 글 가운데 우정에 관한 문장들을 뽑아 격언 형식으로 다듬은 <교우론>(1595)이었다. 서양의 명언과 유교의 덕목 가운데 하나인 ‘붕우유신’을 결합시켜, 당시 중국 지식인들에게 찬사를 들었을 뿐 아니라 그 뒤로도 여러 문집과 총서에 수록되는 등 중국 사회에 꾸준한 영향을 줬다. 마테오 리치는 서양 지도 작법을 따른 <곤여만국전도>(1602)를 제작했는데, 중국을 ‘천하’라고 인식하는 중국인들을 위해 본초자오선을 중앙에서 170도나 왼쪽으로 이동시켜 중국을 지도의 중앙에 오도록 만들기도 했다. 지도에 빼곡히 채워진 외국의 명칭은 중국 바깥에도 광활한 ‘천하’와 수많은 국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고, 대부분의 명칭들은 현재까지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중국 푸단대학 역사학과 교수인 쩌우전환의 <번역과 중국의 근대>는 명청 교체기부터 신중국 탄생 이전까지 400여년 동안 이어진 ‘서학 번역’ 기간 동안 출간된 책 가운데 비교적 영향력이 컸던 100권을 꼽고 이를 해설한 책이다. “번역서의 출간 과정을 날줄로, 번역서와 관련된 문화적 흐름을 씨줄로” 삼은 지은이의 작업에 힘입어, 동아시아 근대 형성에 가장 중요한 행위로 꼽히는 번역이 중국에선 어떻게 진행됐는지 한눈에 볼 수 있다. 100권에는 <기하원본>, <성경> 등 동서양 모두에서 명저로 꼽히는 책들이 포함된다. 일본에서 먼저 읽힌 루소의 <민약론>(사회계약론)은 중국에서 1902년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당시 지식인들이 ‘천부인권’ 개념에 영향을 받았다. 다만 <민약론>을 찬양했던 량치차오가 나중엔 계몽적 전제정치를 주장하게 되는 등 점차 국가와 민족이 더 중요한 가치로 대두한 맥락도 있다.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은 쑨원의 ‘삼민주의’에, 프레드리히 파울젠의 <윤리학원리>는 마오쩌둥의 유물론 형성에 영향을 줬다. 존 듀이의 강연록은 5·4운동 시기 ‘과학’과 ‘민주’를 추구한 중국의 진보 지식인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중국에서만 유독 큰 영향력을 발휘한 책들도 있다. 로버트 매켄지의 <19세기 역사>는 서양에서는 “최고로 진부한 찌꺼기”란 혹평을 들었지만, 이를 편집해 번역한 <태서신사람요>(1895)는 중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지은이는 이 책에 담긴 사회진화론 사상이 당시 중국 지식인들에게 신선하게 다가갔을 가능성을 짚는다. 미국 법학자 헨리 휘튼의 <국제법 원리>를 번역한 <만국공법>(1864)도 국제사회에 눈뜬 중국 사회에서 큰 관심을 끌었다고 한다. 지은이는 중국 최초 번역 장편소설은 <흔석한담>(1875)이며, 원저는 영국 소설가 에드워드 불워 리턴의 <밤과 새벽> 전반부라고도 추정한다. “서양의 풍속을 동아시아에 소개하는 가운데 은연중 민주사상을 최초로 중국에 전파했다는 가치가 있다”고. 소련공산당의 역사 교과서를 번역한 <소련공산당 역사간요 독본>은 ‘간부필독’ 서적으로 사회주의 중국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이탈리아 로마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교우론>. 1601년 중국 베이징에서 인쇄된 판본이다.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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