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수와 검사: 죄수들이 쓴 공소장
심인보·김경래 지음/뉴스타파·1만8000원
저널리스트가 쓴 책은 대개 잘 읽힌다. 대중에게 읽힐 글쓰기 훈련의 결과이리라. 그러나 쉬운 문장이 그들만의 전유물은 아닐 터. 기자가 저술한 책의 더 뜻깊은 지점은, 저널리즘의 존재 이유와 맞닿아 있다. 이 나라에서 언론의 역할과 가치는 바닥을 알 수 없이 추락하고 있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여기에서 쉽사리 보이지 않는, 볼 수 없는 현상과 문제들을 들춰 세상에 드러내는 것은 여전히 의미 있다. 이를테면, 제시카 브루더는 미국 대륙을 유랑하는 노동자들을 3년간 취재해 <노마드랜드>(엘리)를 써냈고, 패트릭 라든 키프는 1960년대 후반까지 거슬러 올라가 20세기 성금요일협정에 이르는 북아일랜드 분쟁을 탐사해 <세이 나씽>(꾸리에)을 내놨다. 미국 논픽션 탐사 스토리의 전통은 언론이 왜 존재해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기레기’라는 비난이 더는 충격적이지 않은 한국 기자들은 종종 부러운 시선을 태평양 너머로 던진다.
사설이 긴 까닭은, 뉴스타파 소속 심인보·김경래 기자가 써낸 <죄수와 검사>에 부러움과 더불어 고마움을 느낀 연유에서다. 같은 이름의 탐사보도 시리즈가 2019년 8월부터 2020년 11월까지 진행됐다. 1년 넘게 연속 보도가 진행되며 검찰개혁이 의제로 떠올랐고, 전직 검사와 증권사 대표가 구속 기소되고 한명숙 사건이 재조명됐다. 한국 현대사를 통틀어 요지부동인 검찰권력의 일단을 해부하는 데 성공했다. 이 보도를 내놓기까지 지난한 취재 과정에서 쌓아올린 숱한 ‘사실’들이 이번 책이 드러내고자 하는 ‘진실’에 힘을 부여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취재후기’가 아니라 연속 보도의 완결판이다. “수십 년 동안 ‘주체’이기만 했던 검사들도 때로 ‘객체’가 될 수 있다는 것, (…) 이것이 (…) 가장 의미심장한 변화일지도 모른다.”
‘죄수’에 주목한 것은 적중했다. 검찰의 소수 엘리트로 꼽히는 특수부 검사들이 인지·기획 수사의 손쉬운 도구로, 손발 묶인 ‘범죄 전문가’ 죄수들을 활용한 데 착안한 탐사 기법인 셈이다. 모든 취재의 기본이라 할 ‘크로스 체크’를 통해 신중하게 접근했기에 죄수의 증언에 힘을 실을 수 있었다. 이렇게 확인한 것이 ‘검사의 자기 식구 봐주기’다. ‘99만원 불기소 세트’를 비롯해 이미 여러 차례 입증된 바 있으나, 죄수의 입을 통해 쏟아진 말들을 다각도로 검증해 드러낸 진실들은 충격적이다. 2016년 9월 <한겨레> 보도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김형준 부장검사의 고교 동창 스폰서 사건’이 대표적이다. 뉴스타파는 이후 ‘스폰서’인 ‘죄수 케이(K)’를 통해 이 사건의 이면을 파헤쳤다. 언론보도를 막기 위해 현직 검사들까지 함께 대책회의를 열고 보도 이후 어쩔 수 없이 수사가 개시되어도 검사가 받은 뇌물을 축소하고 성매매 혐의를 덮고 이 과정에 검사 출신 전관 변호사가 개입하는 과정이 세세하게 드러난다. “이들 ‘범 검찰가족’은 스스로를 법 위의 존재라고 여기며 언론에 의해 ‘식구’의 비위가 폭로되어도 일단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틴다. 더 이상 버티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수사를 하게 되면 수사 과정 전반에 미치는 자신들의 영향력을 이용해 ‘식구’를 치밀하고 세심하게 배려한다.”
죄수를 이용한 수사는 특수부 검사들이 즐겨 쓰는 ‘불법 수사 관행’이다. 죄수에게서 범죄 정보를 빼내기 위해 특수부 검사는 특혜를 부여하는데, 감옥에서 검사실로 이어지는 일들은 상상을 넘어선다. “검사실에 출정을 나오려면 사건을 사서 검사님한테 드려야지 검사님 실적이 올라가잖아요. 그래서 사건을 사요. 작게는 몇백만 원부터 크게는 몇천만 원 이상까지. 사건을 사서 선물을 드리면… 거기(검사실) 나오면 점심시간에는 싹 다 비워줘서 거기서 드시고 싶은 거 뭐 이런 거는 다 드셨어요.” 죄수의 애인의 증언이다. 검찰 정보는 금융 쪽 돈과 콤비를 이뤄 주식시장의 수많은 ‘개미’들을 울리기도 했다. 주가조작이 어떤 구조로 이뤄지는지를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상상인금융그룹 유준원과 검사 출신 전관 변호사 박수종의 스토리가 집요한 탐사 추적 결과 생생하게 드러난다. 또한 죄수가 수사에 동원되는 불법 수사는 한명숙 사건을 재조명한다. 한명숙의 유무죄를 다투기에 앞서, 특수부 검사들이 죄수를 이용해 모해위증교사에 나선 의혹을 면밀히 파헤친다.
검찰개혁이 정치적 논란의 대상으로 희석된 것이 사실이다. 정권 보호를 위해 검찰의 힘을 약화시키려 한다고 의심하거나 선동하는 이들이 없지 않다. 이 책을 읽으며, 이런 논란의 큰 책임은 언론에 있지 않나 생각하게 되었다. 무능과 불성실, 그리고 출입처 의존적인 구조에서 비롯한 부실 취재는 ‘되치기’의 빈틈으로 이어진다. 두 저자는 검찰 출입 등록 없이 여기저기 부딪치며 수십명의 검사를 취재했다. 취재 결과로 입증해낸 진실 앞에 논란을 획책하는 의심과 선동은 발붙이기 어렵다. 뉴스타파는 후원회원들에 기대어 운영되는 탐사매체다. 반지성주의와 가짜뉴스의 시대, 정파적 논란이 일으키는 소용돌이 한가운데에서 길을 잃은 한국 언론은 탐사보도의 결실인 이 책에서 성찰해야 할 것이 많다. 이른바 ‘진보매체’조차 함부로 건드리기 어려운 ‘삼성’ 이건희 회장의 성매매 영상을 이 책의 두 저자는 2016년 보도했다. 어떤 노력이 후원의 결실을 낳는지 선순환의 구조를 잘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 책은 웬만한 소설 뺨친다. 문제는 소설이 아니라는 것이지만. 한 번 펼치면 손에서 놓기 어렵다는 흔한 비유가, 비유로 그치지 않는다. 책을 가득 채운 구체적이고 생생한 취재 과정의 이야기들을 일일이 소개하지 않은 이유다. 일선에서 활약 중인 정의로운 검사를 비롯해 변호사, 판사 등 법조인과 ‘기레기’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분투하는 기자들은 반드시 시간 내야 할 책이다.
김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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