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자 동일시: 무엇이 우리의 행복을 가로막는가
강수돌 지음/사무사책방·1만6500원
“우리는 한시바삐 자본, 상품, 권력의 지배를 벗어나야 합니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자본, 상품, 권력, 시장, 화폐는 무한 이윤의 원리를 추구하면서 인간과 자연의 생명력을 무자비하게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강자 동일시>는 강수돌 교수가 일관되게 주장해온 한국사회의 ‘질병적 현상’을 적나라하게 꼬집는다. 두가지로 집약되는데 돈중독과 일중독이다. 독성 물질에 지속적으로 집착하여, 끊고서는 정상적 상태를 유지할 수 없을뿐더러 정상적 판단도 불가능한 상태가 중독이다. 자본과 상품, 권력은 사람을 중독시켜 지배한다. 집은 가정이 아니라 부동산이며, 돈은 그 자체로 권력이며 목표이다. 모든 것이 돈으로 셈해진다. 돈중독은 일중독으로 이어진다. 게다가 일중독은 사회적으로 권장되며 칭찬 받는다. 일로 거둔 성취와 업적, 타인의 평가와 시선이 ‘나’라는 존재보다 더 소중하게 여겨진다. 돈과 일에 모든 것을 거는 중독은 “죽음에 이르는 중독”이다.
이러한 중독의 바탕에는 강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심리가 놓여 있다고 강 교수는 말한다. “자신은 승자가 아니면서도 꼭 승자 편에 서서 마치 승자가 된 것처럼 행동하고, 또 반드시 승자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 경향”이다. 어느덧 한국 사회에는 부자와 권력자를 숭배하는 심리가 자리잡았다. 물론 이유가 있다. ‘두려움’이다. 죽음과 배제, 탈락의 두려움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 사회적, 역사적, 구조적 폭력에서 기인한다고 강 교수는 지적한다.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전쟁과 학살, 참사, 위기의 경험은 살아남기 위한 ‘1등 강박’으로 이어졌다.
강자 동일시 심리로 일중독, 돈중독에 빠져 살아가는 현실은 어떤가? 치열한 입시경쟁, 사교육 몰입에도 모두에게 성공이 주어지진 않는다. 암호화폐와 부동산 투자에 모두가 몰려들어 인생역전을 꿈꾸지만 더 많은 ‘개미’들의 무덤이 예비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연유에서 강 교수는 한국 사회가 선망과 불만의 모순이 반복되는 ‘사다리꼴 사회’이며 고생 끝에 낙이 오지 않고 또다른 고생이 기다리는 ‘무한경쟁 사회’라고 규정한다. 시대적 화두로 떠오른 공정과 정의에 대한 사회적 관념은 왜곡되었다. ‘불공정을 인정하는 공정’은 그 자체로 허위이며,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구분하는 것 자체는 문제 삼지 않고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비판하는 세태를 가리켜 ‘자본의 논리에서 나온 교활한 성과주의’라고 지적한다. 경쟁 자체의 문제를 보지 못하는 한계는 강자 동일시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강 교수는 ‘우리의 이타성’을 살려 경쟁가치에서 벗어나 존재가치 사회로 바꿔나가야 한다고 제안한다. “우리 모두는 나만 잘살고 싶은 이기적인 면도 있지만 함께 나누며 살고 싶어 하는, 이타적인 마음도 갖고 있다. (…) 약자의 억울한 피눈물로 차려진 밥상에 우리는 설령 강자가 되었더라도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아울러 자기절제, 자기만족, 이기주의와 공동체 윤리의 조화, 자연과 생명에 대한 존중 등 네 가지가 어우러진 ‘충분함의 미학’에 더해 잘못된 가치관·문화·사회구조에 대한 비판과 저항을 갖춰야 한다고 역설한다. 인간과 인간은 물론, 자연까지 “우리 모두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곧 영성의 회복이며 이를 통해서만 행복한 사회에 이를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사회가 깊이 앓아온 ‘질병적 구조’를 성찰해온 강 교수는 올 초 고려대에서 명예퇴직함으로써, 스스로 ‘일중독’에서 벗어났다. 강 교수가 교단에서 벗어나 ‘영성 회복’의 본격적 실천에 나서는 기념작인 <강자 동일시>는 “악한 강자와 강자가 되고 싶어 안달하고 애써 겨우 ‘끄트머리 강자’가 된 약자 사이에서 희망을 잃고 고통받는 선한 약자”와 “‘약자의 고통’을 나누고자 하는 선한 강자”가 읽어야 할 책이다.
김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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