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정치적 권리 선언
앨러스데어 코크런 지음, 박진영·오창룡 옮김/창비·1만3000원
인간과 비인간, 특히 동물과의 관계는 오늘날 가장 뜨겁게 논의되는 주제 가운데 하나다. 동물 ‘보호’라는 어렴풋한 개념에서 출발한 이 논의의 뱃머리는 동물의 권리와 법적 지위 등에 대한 담론을 거치며, 이제 오롯이 인간만의 것으로 여겨졌던 ‘정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지난 2017년 총선에서 동물에게 시민권을 부여하자는 주장을 내건 정당인 동물당(PvdD)이 하원에서 의석 다섯 개를 얻는 데 성공한 바 있다.
앨러스데어 코크런(43) 영국 셰필드대학교 교수(정치·국제관계학과)가 2020년 펴낸 <동물의 정치적 권리 선언>은 이 논의의 최첨단에 위치한 책이라 할 만하다. 피터 싱어는 <동물해방>(1975)에서 쾌락이나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지각 있는 존재”라면 이익 또는 관심사(interest)를 가지기 때문에 이 존재가 인간이건 아니건 간에 그의 이익을 동등하게 고려해야 한다며 ‘동물 윤리학’의 기초를 닦았다. 톰 리건은 <동물권 옹호>(1983)에서 모든 삶의 주체들에겐 ‘내재적인 가치’가 있다며 ‘동물권’ 논의를 본격화했다. 이제 지은이는 “정치적인 권리의 본질에 대한 이론적 논의가 아닌, 동물과 어우러진 인간의 정치적 생활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다. 말하자면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어떻게 실제 정치 공동체에 반영할 수 있을지 따져보자는 것이다.
지은이는 동물복지법으로부터 시작해 헌법 조항, 법적 인격성, 성원권, 민주적 대표성 등으로 자신의 논의를 한단계씩 넓혀나간다. 모든 지각 있는 존재는 타자가 침범할 수 없는 내재적 가치를 지니며 이를 존중받아야 한다는 명제는 논의의 출발점이다. 동물 학대를 금지한 영국의 ‘마틴 법’(1822)을 시작으로, 동물을 ‘보호’하는 동물복지법은 이제 인간 정치 공동체에 널리 자리잡았다. 그러나 인간의 이익에 따라서 동물에 대한 대우가 달라지는 등 “동물복지법은 사실상 동물의 내재적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다.” 가장 높은 법적 위상을 지닌 헌법에 동물복지법의 취지를 반영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실제로 독일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이 헌법에 동물 복지를 국가와 시민의 의무로 규정했고, 이를 통해 예술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 아래 동물을 해치는 일이 금지되는 등 동물 보호가 강화된 측면이 있다.
그렇지만 동물과 인간의 이익이 충돌할 때 인간의 이익 앞에서 동물의 이해관계는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은 여전하다. 이 때문에 동물에게 ‘법적 인격’을 부여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2016년 아르헨티나 멘도사주 법원은 동물권 전문 변호사협회가 동물원에 갇힌 침팬지를 대리해 침팬지 보호구역에서 살게 해달라고 제출한 인신보호영장을 승인했다. 이는 영장류에게 법적 인격이 있다고 판단한 최초의 판결로 꼽힌다. 이처럼 동물에게 법적 인격을 부여하는 것은 “동물의 이익을 인간의 이익과 동등한 법적 위계에 둔다”는, 다시 말해 동물과 인간의 내재적 가치를 동등하게 인정한다는 뜻이다.
일각에서는 “법적 의무를 질 능력이 없고, 인간 공동체의 일원이 아니”라서 동물은 법적 인격을 지닐 수 없다고 주장한다. 지은이는 유아와 중증장애인의 사례를 들어 이를 반박한다. 유아와 중증장애인은 법적 인격이지만 법적 의무는 지지 않는다. 만약 단지 ‘인간’이란 종에 속한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에게 법적 인격이 부여된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속하는 다양한 범주 가운데 특정 종에만 더 높은 지위를 부여하는 ‘종차별주의’로 귀결된다. 유아와 중증장애인은 법적 의무를 질 수 있는 잠재력이 있거나 생물학적으로 인간이란 범주에 속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고유한 내재적 가치 때문에 법적 지위를 지닌다. 그리고 이는 지각 있는 다른 비인간 동물에도 적용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인간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사실과 법적 지위를 연결시키는 주장은 ‘성원권’ 논의로 이어진다. 영국의 경찰견 핀은 강도 용의자를 쫓는 과정에서 훈련사를 보호하다 상처를 입어 죽을 뻔했는데, 이 사건은 경찰견에 대한 보호 조치를 개선하는 ‘핀 법’ 지지 운동을 불러일으켰다. 미국에서는 군복무견을 ‘부대 장비’가 아닌 ‘군견 장병’으로 재분류하는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이런 변화는 “동물이 경찰과 군인의 역할을 넘어 우리 지역사회의 동료 구성원이라는 믿음”에서 비롯했다.
정치 공동체의 본질은 “‘공공선’을 추구하며 각 구성원들의 이해관계를 포함”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잘 살고자 하는 모든 구성원들이 잘 살도록 돕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단지 인간이라는 종으로만 이뤄진 공동체가 아니라, 여러 비인간 동물들과 서로의 운명이 얽혀 있는 ‘다종 공동체’에서 살아간다. 따라서 지은이는 동물 역시 내재적 가치를 온전히 인정받기 위해 성원권을 부여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만 염두에 둘 것은, “성원권으로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것과 그들이 반드시 그러한 권리를 얻어야 한다는 것은 별개”라는 사실이다. 예컨대 공동체의 동등한 성원이라고 해서 문어에게도 종교의 자유를 줘야 하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모든 개체들이 정치적 의제를 형성하고 사회적 조항을 적용받는 것에 이해관계를 지닌다”는 데 대한 인정이다.
그렇다면 인간과는 사뭇 다른 동물의 구체적인 이해관계를 어떻게 끌어안을 수 있는지가 과제로 남는다. ‘민주적 대표권’을 부여할 수 있느냐는 논의다. 지은이는 ‘동물 전담 의원’에게 의석의 일부를 할당하는 등 비인간 동물의 이해관계를 이해하고 반영할 수 있는 전문가의 존재를 보장하는 방향을 제시한다. 일각에선 동물에게도 ‘참정권’을 부여하자는 주장을 내놓지만, 지은이는 “법에 영향을 미치는 것과 법의 선택과 제정에 참여하는 것은 별개”라며 여기에 선을 긋는다. 유아와 정신장애인의 사례처럼 “참정권 행사를 온전히 하지 못하더라도 공동체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그리 길지 않은 분량에 ‘다종 정치 공동체’에 대한 구상을 명료하게 담아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2019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동물권 단체 활동가들이 2019년 ‘아프리카 돼지열병’ 방역 과정에서의 살처분을 비판하고 중단을 촉구하는 상징의식을 벌이고 있는 모습.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앨러스데어 코크런 영국 셰필드대학교 정치·국제관계학과 교수는 정치이론의 관점에서 동물권 문제를 다룬다. ⓒJ Milbu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