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마르크스(왼쪽)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1861~63년 초고 제1분책: 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2
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1861~63년 초고 제2분책: 잉여가치론 1
카를 마르크스 지음, 강신준·김호균 옮김/길·각 권 6만원
인류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로 꼽히는 카를 마르크스(1818~1883)와 그의 동지 프리드리히 엥겔스(1820~1895)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는가? 지난 세기 이른바 ‘현실 사회주의’가 성립하고 몰락했던 치열한 역사를 떠올리며, 어떤 이는 이제 마르크스와 관련한 이야기는 “남김없이” 다 한 것 아니냐고 되물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그동안 읽어온 마르크스가 ‘마르크스주의’가 덧칠한 화장일 뿐 맨얼굴 그대로의 마르크스가 아니었다면 어떨까?
마르크스-엥겔스가 남긴 자필원고를 ‘있는 그대로’ 출간하는 <마르크스 엥겔스 전집>(MEGA, 이하 <전집>)의 첫 한국어판 결과물이 나왔다. 독일에 있는 ‘국제 마르크스-엥겔스 재단’이 진행하고 있는 <전집>은, “완전성, 원본 신뢰도, 텍스트 발전, 주해” 등 네 가지 편집방침 아래 마르크스-엥겔스가 남긴 모든 원고를 학술적인 정본으로 출간하는 작업이다. 1920년대 러시아에서 처음 시도됐으나 여러 차례 중단됐고, 지금은 1990년대에 설립된 국제 마르크스-엥겔스 재단이 작업을 새롭게 이어오고 있다. 전체 계획한 114권 가운데 69권을 펴낸 상태다. 우리나라에서는 동아대 맑스엥겔스연구소와 도서출판 길이 지난 2012년 한국어판 출간 계약을 맺었고, 9년에 걸친 분투 끝에 이번에 첫 결과물을 내놓은 것이다.
이번에 출간된 것은 마르크스-엥겔스가 1861~1863년 작성했던 원고 가운데 제1분책 <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2>, 제2분책 <잉여가치론 1> 두 권이다. 각각 강신준 맑스엥겔스연구소장과 김호균 명지대 교수가 번역을 맡았다. <잉여가치론 1>은 국내에선 다른 판본으로도 출간된 바 없는 초역이다. 자필원고가 저본이기 때문에, 마르크스-엥겔스 또는 다른 사람이 추가로 써넣은 부분, 지운 부분, 줄을 그어 삭제한 부분 등에 대한 상세한 편집 내용까지 밝히는 방대한 ‘부속자료’(apparat)가 각 권마다 따라붙는다.
지난 24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강신준 소장과 이회진 맑스엥겔스연구소 연구원은 “1920년대 <공산당 선언>이 처음 우리말로 번역된 뒤로 100년 만에야 마르크스-엥겔스 문헌의 학술적 정본을 우리말로 낼 수 있게 됐다”고 출간 의의를 밝혔다. 학술적 정본은 왜 중요한가? 경제학 분야의 작업을 맡고 있는 강 교수는 “20세기 인류가 이념을 두고 큰 전쟁을 벌였는데, 그 빌미가 됐던 마르크스-엥겔스 사상이 과연 온전히 파악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철학 분야의 작업을 맡은 이 연구원은 “단 하나의 ‘사상’만을 세우기 위한 정치적 필요 등에 의해 마르크스-엥겔스 사유를 단순화·도식화해온 역사가 있었다. <전집>은 이를 벗어나 마르크스-엥겔스의 다원적인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하는 ‘학문’을 가능케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마르크스-엥겔스가 의도하지 않았던 후대의 왜곡과 각색을 학술적 정본으로 걷어낼 수 있다는 의미다.
이번 출간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역사발전단계의 도식화로까지 이어지는, 이른바 ‘역사적 유물론’을 체계화한 저작이라 알려졌던 ‘독일이데올로기’의 편집 역사는 마르크스-엥겔스의 원고가 어떤 방식으로 각색되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1932년 옛 소련에서 스탈린에 의해 숙청된 다비드 리야자노프를 대신해 <전집> 편찬을 맡았던 블라디미르 아도라츠키는 마르크스-엥겔스가 1845년께 썼던 원고들을 재구성해 <독일이데올로기>라는 이름의 저작으로 출간했다. 그는 “저자의 서술방식에 일치하게 각각의 자료 모음을 뽑아서 변증법적 연관성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했다”며 원고들을 자의적으로 재배열했고, 이를 통해 “변증법적 유물론의 근본 문제는 (…) 다양한 방식으로 거의 남김없이 조사됐다”고 밝힌 바 있다.
이렇게 각색에 가까운 편집은 이후 마르크스-엥겔스 저작의 대중화에 기여한, 1958년 동독에서 나온 <마르크스-엥겔스 저작집>(MEW, 이하 <저작집>)에 그대로 이어졌다. <저작집> 서언은 “역사적 유물론의 ‘완성’이 <독일이데올로기>의 가장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며, 그 근본적인 원칙은 이 저작의 제1편에 처음으로 자세하게 설명했다”고 천명했다. 이를 통해 ‘마르크스-엥겔스가 <독일이데올로기>를 통해 역사적 유물론의 체계를 세웠다’는 인식이 굳어졌고, 전세계적으로도 확산됐다. 자의적 편집에 대한 학계의 오류 지적도 잇따랐지만, 굳어진 대중의 인식에 큰 영향을 주진 못했다.
이 문제를 일단락지은 것은 지난 2017년 11월 발간된 <전집> 1부 5권이다. 최종적으로 <전집> 편집자들은 ‘독일이데올로기 초고’는 하나의 저작이 아니라 계간지에 싣기 위해 쓰인 원고들이라 보고, 이에 따라 마르크스-엥겔스가 애초 계획했던 계간지의 구조에 따라 원고들을 다시 배열했다. 하나의 저작이 아닌 단편적인 원고들에서 어떤 이론의 틀을 ‘완성’하거나 ‘체계화’했다고 볼 수 없으니, 새로운 물음들이 불가피해진다. 마르크스-엥겔스 사유에서 역사적 유물론은 과연 언제 어떻게 등장해, 어떤 모습으로 발전해간 것인가? 정작 마르크스는 평생 역사적 유물론이라는 고유명사를 쓴 적 없으며, 엥겔스 역시 1892년에야 이 말을 처음 썼다는 사실도 감안해야 한다. 이 연구원은 “원고의 원래 모습과 맥락이 문헌학적으로 드러난 뒤에야 비로소 지금보다 한걸음 더 나아간 연구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르크스-엥겔스 사유의 흐름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더 풍부한 연구를 촉발할 수 있다는 것이 <전집> 발간의 가장 중요한 의미다. 강 소장은 “국내에서 마르크스-엥겔스 사상을 다루는 방식 중 빠져 있는 것이 바로 발전사다. <전집> 발간은 잉여가치, 계급투쟁 등의 개념이 어떻게 시작해 어떻게 변해가는지 등을 드러내어 발전사 연구를 더욱 촉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제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저작인 <자본>을 쓰기 위해 마르크스-엥겔스는 세 차례 초안 작업을 했는데, 1857~58년 초안은 <경제학 비판 요강>으로, 1863~65년 초안은 <자본> 1~3권으로 출간된 바 있다. 다만 1861~63년 초안(<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2>)은 대중적으로 널리 보급된 <저작집>에 빠져 있어 그동안 국내에 소개된 바 없었는데, 이번 <전집>을 통해 나올 수 있게 됐다고 한다. 강 소장은 저작뿐 아니라 각종 초고와 편지 등을 통해 마르크스의 금융 이론을 연구한 일본의 오타니 데이노스케, 비유럽 세계까지 포괄한 다차원적 변혁 방안에 대한 마르크스의 고민을 탐구한 캐나다의 마르셀로 무스토 등을, <전집> 연구로 마르크스-엥겔스 연구를 풍부하게 확장하고 있는 사례로 들기도 했다.
현재 <전집>을 번역해 출간하는 것은 중국을 제외하곤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우선 이를 기뻐해야 할 상황일 텐데, 두 사람은 그보다도 ‘지속가능성’에 대한 걱정을 털어놓았다. 독일에서도 <전집> 작업은 그 진도가 빠르지 않은데다가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한국어판은 그 상황이 더욱 열악하다는 것이다. 한국어판은 전체 114권인 <전집> 가운데 17권(1부 11권, 2부 6권)만을 계약한 상태로, 이 가운데 이번에 나온 두 권을 펴내는 데 거의 5년 가까이 걸렸다. 나머지 계약분을 전부 번역해 펴내려면 앞으로 세대를 넘겨야 한다. 문제는 역시 재정이다. 그동안 개인이나 노동조합의 후원 등 “고마운 분들”이 있었으나 충분치 않았고, 2018년 한국연구재단 토대연구지원사업으로 선정돼 지원을 받은 것이 지금껏 결정적인 동력이 됐던 상황이다.
이 연구원은 “여러가지 사정상 한국어판은 <전집> 4부 가운데 1·2부만을 작업하고 있는데, 미계약분뿐 아니라 편지가 담긴 3부도 무척 중요한 자료”라고 말했다. 강 소장은 “우리나라에서도 재단이나 기금 같은 것이 만들어져야 이 사업을 온전히 역사에 남기는 것이 가능하다. 열매만 거두려고 할 것이 아니라, 숲을 만들기 위한 씨앗을 뿌리는 일에 많은 사람들이 동참해줬으면 좋겠다. 고전으로부터 무엇을 취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다”고 호소했다. <전집> 출간에 대한 후원은 동아대 맑스엥겔스연구소(051-200-8691)로 문의하면 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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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유고는 엥겔스 사후 독일 사민당 아키브(아카이브)와 유족들에게 나뉘어 보관됐다. 원고 유실 등을 우려한 오스트리아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1913년 ‘전집 출간’의 필요성을 제기한 이후, 본격적으로 전집을 출간하려는 시도는 러시아에서 시작됐다. 러시아 혁명 와중인 1921년 모스크바에 마르크스-엥겔스 연구소(MEI)가 설립됐고, 이곳 소장을 맡은 문헌학자 다비드 리야자노프가 레닌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전집> 출간에 착수한 것이다.
그러나 1930년대 초반 이오시프 스탈린이 권력을 잡으며 리야자노프도 숙청을 당했고, <전집> 작업은 1936년 중단된다. 대신 스탈린은 <전집>과 별도로 러시아어판 저작집(1소치네니야)을 내도록 했고, 스탈린 사후엔 이를 보완한 저작집(2소치네니야)도 나왔다. 1950년대부터 이에 의거해서 동독의 마르크스주의-레닌주의 연구소가 독일어판으로 출간한 것이 바로 <저작집>(MEW)이다. <저작집>은 대중적으로 읽히기 위해 만들었기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주도적인 판본으로 자리잡았으나, 학술적 정본이 아니라는 점에서 <전집>에 대한 요구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이에 소련과 동독에서 다시 <전집> 출간 논의를 시작해 1975~1990년 새로운 <전집> 43권을 펴내는 성과를 냈으나, 동독이 붕괴하고 소련은 해체하면서 또 중단됐다. 이를 다시 물려받은 것이 1990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설립된 국제 마르크스-엥겔스 재단이다. 독일 정부의 지원 아래 전체 114권 가운데 69권을 펴낸 상태다. 새 <전집>의 체제는, <자본>과 관련 없는 모든 저술과 기고문을 모은 1부(32권), <자본>과 관련한 모든 선행 저작과 <자본>의 각 판본을 담은 2부(15권), 서한집인 3부(35권), 발췌 및 방주 작업을 담은 4부(32권)로 이뤄져 있다.
한국어판은 이미 출간되어 중복되는 부분과 4부를 제외하고 전체 71권을 펴낼 계획이다. 물리적으로는 160권에 달하는 규모로, 완간까지 적어도 30년이 더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마르크스 엥겔스 전집(MEGA) 한국어판 출간을 주도하고 있는 강신준 동아대 맑스엥겔스연구소장(왼쪽)과 이회진 연구원이 24일 오후 한겨레신문사에서 출간 의의를 이야기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자본> 3권의 초고 일부. 네덜란드 국제사회사연구소 누리집 갈무리
마르크스 엥겔스 전집(MEGA) 한국어판 출간을 주도하고 있는 강신준 동아대 맑스엥겔스연구소장(왼쪽)과 이회진 연구원이 24일 오후 한겨레신문사에서 출간 의의를 이야기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어느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는 <마르크스 엥겔스 전집>(MEGA)의 모습.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