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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억울한 죄인 만들지 않으려면

등록 2021-06-04 04:59수정 2021-06-04 09:33

오염된 재판: 과학수사의 추악한 이면과 DNA 검사가 밝혀낸 250가지 진실

브랜던 L. 개릿 지음, 신민영 옮김/한겨레출판·2만8000원

1982년 5월 미국 뉴욕 한 공원에서 성폭행 사건이 발생했다. 눈이 가려져 가해자를 보지 못한 피해자는 경찰에서 ‘짧게 자른 턱수염과, 꽤나 두꺼운 입술, 다소 붉은 빛이 도는 어두운 피부색, 벌어진 위쪽 앞니’를 증언했다.

넉달이 넘도록 범인을 잡지 못한 경찰은 피해자를 불러 6명의 사진을 제시했다. 피해자는 이 중 “가해자와 다소 비슷해 보이는 남자가 세 명 있다”고 말했다. 그중 “가장 비슷해” 보이는, 그러나 “달라 보이기도 하는” 하비브 압달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배심원단 앞에서는 확신을 보이지 못했지만 경찰이 압달의 1978년 사진을 보여주자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확실하다”고 말한다.

피해자는 경찰에서 가해자가 25~40살 사이이며 키는 172~178센티미터라고 진술했지만, 압달은 43살, 193센티미터였다. 1999년 압달은 유전자(DNA) 검사를 받고 무죄임이 밝혀져 16년의 수감 생활을 마친다.

브랜던 L. 개릿 미국 듀크대 로스쿨 교수가 지은 <오염된 재판>은 이같은 오판 사례를 250개나 소개한다.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유전자 검사로 무죄로 판명나게 되는 피해자 250명이 이 책의 주인공이다. 이들 250명 가운데 17명은 사형을, 80명은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흑인은 155명이나 됐고 라틴아메리카계는 20명, 백인은 74명에 그쳤다.

오판에 이르는 원인은 강압이나 복잡한 심리전술에 따른 잘못된 자백, 피해자와 목격자의 착각에 기반한 진술, 거짓 제보, 법과학 증거의 오류 등이다. 압달은 목격자의 잘못된 지목과 경찰의 피해자 압박, 피해자의 인지적 오류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이 책이 소개하는 250개 오판 사례 중 백인 목격자에 의해 오인된 흑인은 모두 74명인데, 압달이 그중 한 명이다. 인종이 서로 다를 때 얼굴 식별이 잘못될 확률이 매우 높음에도, 형사절차에서는 고려 대상이 안 된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흥미로운 것은 오판 피해자 사례의 21%에 해당하는, 거짓 제보다. 이 경우 제보자들은 대부분 동료 수감자였고, 이들은 거짓 진술을 한 대가로 검사에게 가벼운 형을 받았다고 책은 전한다. 심인보·김경래 <뉴스타파> 기자들이 지은 <죄수와 검사>와 유사한 경우다. 일부 한국 특수부 검사들이 이런 수법을 많이 쓰다보니, 죄수들이 적극적으로 범죄를 구매해 검사에게 상납하는 충격적 사례가 <죄수와 검사>에 등장한다.

<오염된 재판>에는 거짓 제보 외에 첨단 유전자 기술이 활용되기 전 혈액형이나 치아 자국(치흔) 등 법의학 증거로 무고한 피해자들이 속출했음도 보여준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저자는 법무장관을 거쳐 대법관에 오르는 로버트 잭슨의 말을 인용한다. “검사는 생명, 재산, 평판에 대한 통제권을 미국의 그 어떤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갖고 있다.” 폭넓은 사법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지만 특히 “폭 넓은 재량권과 강력한 권한이 있는 검사들은 잘못된 유죄판결을 막을 수 있는 적임자”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검사가 수사와 기소를 제대로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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