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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 사건 뒤에는 ‘인신매매 국가’ 있었다

등록 2021-06-04 04:59수정 2021-06-04 09:13

서울대 사회학과 연구팀, ‘사회적 배제’ 파헤친 본격 연구서 펴내
“일탈적 사건 아닌 국가-사회 공모한 근대화 과정 보여주는 ‘창문’”
1990년에 찍힌 부산시 북구 주례동 산18번지에 자리잡은 옛 형제복지원. 연합뉴스
1990년에 찍힌 부산시 북구 주례동 산18번지에 자리잡은 옛 형제복지원. 연합뉴스

절멸과 갱생 사이: 형제복지원의 사회학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형제복지원연구팀 엮음/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2만8000원

이른바 ‘형제복지원 사건’은, 1970~80년대 부랑인 수용시설인 부산 사회복지법인 형제복지원에서 강제노역 및 온갖 학대와 폭력이 벌어졌던 사건을 가리킨다. 1987년 처음 구체적인 내부 상황이 폭로되어 시설이 폐쇄됐지만, 이 사건은 그동안 충분히 공론화되지도 해결되지도 못했다.

1987년 당시 형제복지원에 격리된 사람은 3000명이 넘었고, 1975년부터 1987년 전 기간을 고려하면 시설에 수용됐던 전체 인원은 4만여명, 여태까지 확인된 사망자만 550여명에 이른다. 2012년에 이르러서야 피해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주목받기 시작했고, 지난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과거사법) 개정 뒤 이제서야 제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가 과거사 조사에 착수한 참이다.

<절멸과 갱생 사이>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인 연구서라 할 수 있다. 2017년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과정생을 중심으로 결성된 연구팀이 지난 4년 동안 연구해온 결과물을 책 한 권에 담았다.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 기존 연구들은 대체로 한 시설의 일탈이 아닌 국가가 자행한 인권침해라는 사실과 그에 따르는 법적 책임을 밝히는 데 주력하거나 권위주의 시기의 ‘통치성’, 곧 권력의 문제를 다루는 데 집중해왔다.

연구팀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그럼에도 결코 이해되지 않는 문제점들을 푸는 데 주력했다. 예컨대 부랑인을 자활시키고 갱생시킨다는 목표로 운영된 시설이 이들을 사회로 내보내지 않고 온갖 폭력 속에 끝까지 가두어두려 한 이유는 무엇인가? 국가, 더 나아가 사회는 무슨 까닭으로 이런 시설들을 용인하고, 더 나아가 원활히 작동하도록 협력까지 해줬는가?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인 최승우씨가 지난해 5월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현관 캐노피에 올라가 형제복지원 사건 등에 대한 과거사법 개정안 통과를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인 최승우씨가 지난해 5월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현관 캐노피에 올라가 형제복지원 사건 등에 대한 과거사법 개정안 통과를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연구팀은 지속적인 수용만을 목적으로 한 ‘사회적 배제’가 핵심이라 보고, 이를 위한 ‘국가와 사회의 공모’라는 틀 속에서 형제복지원 사건을 파고들었다. 부랑인이란 이름으로 도시의 경제적 하층민을 격리·수용하는 사회적 배제는 이미 일제강점기 때부터 지배권력의 통치 목적에 의해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발전국가 시기엔 광범위하게 확대됐다.

걸인, 껌팔이, 앵벌이, 노변행상 등 광범위한 도시 하층민을 “건전한 사회 및 도시 질서를 저해”하며 “사회에 나쁜 영향을 주는 자”로 정의하고 이들을 강제수용할 근거를 제공한 1975년 내무부 훈령은, 국가가 사회적 배제의 핵심 주체였다는 사실을 드러내어준다. 국가의 입장에서, 이들을 ‘사회악’으로 찍어 격리 수용하는 일은 빈곤에 대한 공적 책임을 지지 않을 뿐 아니라 이들의 노동력을 대규모 개발사업 등에 값싸게 투입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국가의 이런 기획은 사회 전반과의 ‘공모’와 함께 발전해갔다는 점에서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한국전쟁 뒤 구호를 필요로 하는 인구집단은 국가의 공적 자원이 아니라 외부 원조 자원에 주로 기대야 했다. 이 때문에 육아원 등 격리·수용 시설을 운영하는 영세 복지시설들이 외원단체 기부금의 주된 통로로서 자리를 잡았다. 1970년 국가는 ‘사회복지사업법’을 제정했는데, 그 실질적인 내용은 복지에 대한 공적 책임을 강화하는 게 아니라 되레 민간 사업자에게 위탁하고 이들에게 민간 자원을 더 끌어들일 수 있게 다양한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기존 수용시설들은 자활사업 등 여러 다른 기능들을 갖춰가며 더욱 큰 복합 시설로 거듭나게 됐다.

형제복지원이 바로 대표적이고 성공적인 사례였다. 애초 형제육아원으로 시작했던 형제복지원은 70년대 초반 기존 육아시설 외 ‘직업보도소’를 설치하면서 사업 영역을 ‘육아’에서 ‘부랑아 보호·선도’로 바꿨고, 부산시와의 계약으로 성인 부랑인 수용 업무까지 맡게 됐다. 1982년에는 장애인수용 복지시설인 ‘형제정신요양원’까지 설치했다.

형제복지원은 수용인원에 따라 국고보조금을 받을 뿐 아니라 국가와 사회의 허가 또는 묵인 아래 다양한 사업을 통해 수익을 극대화했는데, 수용자의 존재 자체와 그들의 노동력은 모두 이를 위한 자원이 됐다. 예컨대 형제복지원은 1979년 주례동으로 이전하면서 발전의 기틀을 닦았는데, 여기에는 정부로부터 사용승인을 받은 국유림 부지, 경찰로부터 인계받은 부랑인 수용자들의 노동력이 결정적인 구실을 했다. ‘절멸’도 ‘갱생’도 아닌 수용 그 자체가 목적이었기에, 수용자들은 아무런 미래도 없이 시설에 갇혀 끝없이 ‘자기목적적’ 폭력에 노출되어야 했다.

수용자들을 동원해 주례동 국유림에 형제복지원 시설을 짓고 있는 공사 현장 모습. 출처 형제복지원 운영자료집.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제공
수용자들을 동원해 주례동 국유림에 형제복지원 시설을 짓고 있는 공사 현장 모습. 출처 형제복지원 운영자료집.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제공

수용자들을 동원해 주례동 국유림에 형제복지원 시설을 짓고 있는 공사 현장 모습. 출처 형제복지원 운영자료집.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제공
수용자들을 동원해 주례동 국유림에 형제복지원 시설을 짓고 있는 공사 현장 모습. 출처 형제복지원 운영자료집.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제공

비슷한 성격의 사건들이 끊이지 않는 데에서 볼 수 있듯, 형제복지원 사건은 어떤 ‘일탈적’인 사건이 아니다. 연구팀은 “한국사회의 근대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하나의 ‘창문’”이라고 말한다. “국가와 자본이 결합하여 몸 자체를 착취하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흔한 사업이었다.” 이런 측면에서 연구팀은 “인간의 몸을 착취할 수 있는 거대한 시장을 만들고 유지하면서 사회의 발전을 꾀했던 국가”를 ‘인신매매 국가’라고 규정한다.

이런 ‘한국적 시장화’는 “사회의 무관심 또는 정당화, 적극적인 참여”가 있어야 가능했다는 점에서 형제복지원 사건은 우리 사회에 대한 총체적인 성찰을 요구한다. 연구팀은 형제복지원 사건이 그동안 우리 시민사회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못한 이유도 따져 묻는다. “우리 이웃이 부랑인으로 장애인으로 낙인찍혀 끌려가 시설에 격리되었을 때 방관하고 침묵하고, 때때로 그것을 지지한 우리 사회 역시 이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과연 지금은 어떨까? 연구팀은 “복지나 교정, 치료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다수의 사람들이 가정과 일터와 놀이터가 분화되지 않은,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이 분리되지 않은 곳에서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박탈당한 채 현재만을 살아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형제복지원은 더 문명화되면 사라질 야만적인 것도, 근대화 과정에서 격퇴해야 할 전근대적인 것도 아니다. 이것은 근대화·문명화가 되지 않은 것의 결과가 아니라 근대화·문명화의 결과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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