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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담론 너머에 피땀으로 감당하는 사람들

등록 2021-06-04 04:59수정 2021-06-04 09:48

[책&생각] 전성원의 길 위의 독서

냉전의 섬, 전선의 금문도

마이클 스조니 지음, 김민환·정영신 옮김/진인진(2020)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첫 한미정상회담이 있었다. 회담 직후 가진 기자회견 중 한 외신 기자가 “두 정상이 대만 문제에 대해 논의하셨습니까. 중국이 대만에 압박을 가하는 것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이) 보다 강력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요구하진 않았습니까”라고 묻자 바이든 대통령은 문 대통령이 답하기에 앞서 “Good luck”이라며 의미심장한 농담을 던졌다. 문 대통령은 “다행스럽게도 그러한 압박은 없었다”면서 “다만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양안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하면서 양국이 그 부분에 대해 함께 협력해나가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취해온 한국에 대해 미국이 선택의 압력을 가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대해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중요’하다면서도 동시에 ‘양안관계의 특수성’을 언급한 것은 모범답안이었다. 물론, 이를 두고 중국이 주권침해라며 불편한 속내를 감추지 않으리라는 것 역시 예정된 수순이다.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상징하는 지역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진먼’ 혹은 ‘끼모이’, 우리에겐 금문도라 불리는 섬이 떠오를 것이다. 금문도는 <나바론>이나 <독수리요새> 같은 영화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섬 전체가 군사화된 요새였지만, 군인들뿐만 아니라 민간인들도 함께 사는 곳이었다. <냉전의 섬, 전선의 금문도>는 중국 명·청시대 전문연구자인 마이클 스조니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가 2008년에 펴낸 책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금문도는 자유 진영이 공산 진영을 공격하기 위한 전초기지로서 ‘아시아의 서베를린’ 또는 이 섬의 함락은 자유 진영의 실패를 의미한다는 뜻에서 ‘중국의 디엔비엔푸’라 불렸다. 냉전이 격화될 때마다 ‘잠수함 속의 카나리아’처럼 금문도가 시험대에 올랐다. 1949년 구닝터우 전투, 1954년에서 이듬해까지 진행된 제1차 해협위기(9·3포격전), 1958년 제2차 해협위기(8·23포격전), 1958년 10월부터 1978년 12월까지 진행된 ‘격일포격전’에 이르기까지 이 작은 섬은 아시아 냉전의 최전선이었다.

스조니 교수는 연구대상인 금문도를 ‘지방적(local)-국가적(national)-지역적(regional)-전지구적(global) 힘’이 교차하는 현장으로 파악하고 국가적·전지구적 기획들, 다시 말해 냉전의 국제정치가 섬사람들의 일상과 삶을 어떻게 주조해냈는지를 구술인터뷰를 비롯한 현장조사, 다양한 문헌연구를 통해 분석해내고 있다. 대개의 전문연구서들이 일반 독자가 읽기엔 다소 생경하기 마련이지만, 이 책은 글로벌 냉전과 전시동원 체제를 살아내야 했던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녹아 있어 의미뿐만 아니라 심지어 재미도 있다.

20세기 동아시아 냉전사에서 금문도가 차지하는 독특한 위상과 역할이 있지만, 그것이 금문도만의 몫은 아니었다. 동아시아에는 금문도 이외에도 오키나와를 비롯해 제주도, 백령도와 연평도 등 서해 5도, 더 나아가 섬 아닌 섬이 된 한반도 역시 ‘냉전의 섬’이 되었다. 스조니 교수는 금문도를 둘러싼 수많은 상징적 호명과 연구에도 불구하고, 정작 금문도에 살고 있는 주민의 삶과 경험이 충분히 잘 전달되지 못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나는 그것이 이 책이 가진 가장 귀한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추상적 담론으로서의 국제질서, 국제정치무대에서 오고가는 외교적 언사 너머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그것을 피땀으로 감당해야만 하는 사람들을 잊는다면 평화와 안정은 결코 올 수 없기 때문이다.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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