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이 갖춰야 할 조건은 뭘까요? 시시때때로 자문하는, 무척 어려운 질문입니다. 새로운 지식, 지식을 넘나드는 통찰, 통찰이 선사하는 감동이 있다면 책에 들인 시간도 돈도 아깝지 않겠죠. 이런 책을 만날 때 은근하고도 강력하게 솟아나오는 기쁨은 이루 말하기 어렵습니다.
매주 높다랗게 쌓여가는 책의 거탑에서 ‘책&생각’은 이런 ‘작품’을 골라내기 위해 애씁니다. 넓은 탁자 위로 책을 가득 펼쳐놓고 한 시간이 넘도록 고민하는 일이 월요일 오후마다 벌어집니다. 후회와 아쉬움, 안타까움은 늘 예비됩니다. 뒤늦게 ‘작품’을 손에 쥐고 아뿔싸! 외마디 비명을 감추는 일은 언제든 고통스럽습니다.
회장님들 책이 종종 나왔습니다. 대표적으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으며(1989),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2001)고 호연지기를 설파하거나,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1997)고 꾸짖는 듯한 책이 있었습니다. 바쁜 재벌회장님들이 썼으니 귀한 책이건만 그리 손길이 가지 않았던 것이 솔직한 사실입니다. 이쪽 세계에는 ‘유령’들도 허다하니 말이죠.
편견은 힘이 셌습니다. <그늘까지도 인생이니까>(마음산책)라는 ‘작품’을 놓친 변명입니다. 드높은 기세를 한껏 자랑하지도, 정신차리라고 호통치지도 않는, 뭔가 다른 제목에서 무언가 색다른 느낌을 받았지만, 회장님 책이니 그저 흘려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이 책을 다시 펼치며 깊이 반성했습니다. 좋은 책을 놓쳐서만이 아니라, 글에 담긴 자유롭고 정의로운 정신과 따뜻하고 진정성 가득한 감성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그늘까지도 인생으로 보듬어 안는, 사람과 세상과 신을 향한 지은이의 진솔한 시선이 책장마다 느껴졌습니다.
‘책&생각’이 고른 좋은 책들이 이번주에도 많습니다. 그러나 ‘책&생각’이 놓친 더 좋은 책들이 더 많다는 것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김진철 책지성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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