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척수의 제작 과정. 윗줄은 배아줄기세포와 이들을 3차원으로 만들었을 때 처음 모양(왼쪽)과 미니척수로 자라나는 동안의 자세한 형태 이미징(오른쪽). 중간줄은 미니척수 배양 동안 관찰된 모양의 변화. 아랫줄은 1개월 이상 배양한 미니척수의 모습(왼쪽)과 미니척수로부터 엑손의 성장을 유도한 모습(오른쪽). 이음 제공
나는 뇌를 만들고 싶다
선웅 지음/이음·1만8000원
뇌과학을 다룬 책들이 최근 몇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인간 복잡성의 원천을 찾고자 하는 열망에서 비롯한 흐름이 아닐까. 이성과 감정의 구분 자체가 모호해진 시대, 이해하기 어려운 인간 행동에 대한 의아함과 두려움, 궁금증과 호기심을 해소하려면 뇌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필수다. 뇌를 알아야 비로소 ‘나’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뇌과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지. 대체로 뇌 기능에 대한 탐구를 담아온 뇌과학 관련 대중서의 흐름은 이런 지점을 반영해왔다.
<나는 뇌를 만들고 싶다>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신경발생학자가 지은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뇌를 만드는 작업에 대한 책이다. 뇌란 무엇이며, 뇌로 생각하고 느끼는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 알기 위해 뇌를 제대로 탐구하려면 진짜 뇌가 필요하다. 살아 있는 (사람의) 뇌를 연구하는 것은 한계가 뚜렷하다. 기능하지 않는 죽은 (사람의) 뇌가 제대로 된 연구의 대상이 되긴 어렵다. 인공지능(AI)은 어떨까. “뇌와 완전히 다른 모양인데도 그 기능을 비슷하게나마 보여주는 인공개발품”인 인공지능은 “정보과학적인 뇌 유사품”일 뿐이다. “뇌는 다양한 외부 정보를 받아들여 처리한 후에 뭔가 새로운 신호(우리는 통상 이 신호를 생각이라고 부른다)를 만들어 내어 행동을 이끌어 낸다.” 이런 과정이 인공지능과 유사한 대목은 있다. 그러나 작동원리는 인간 뇌와 연관성이 거의 없다. “인간의 지능과 인공지능은 흡사 잠자리의 날개와 새의 날개가 진화적으로 비슷한 기능을 하고 있긴 하지만 작동 원리는 전혀 다른 것처럼 그 속은 다르지만 겉보기에 비슷해 보일 뿐이다.” 그렇다면 진짜 뇌를 만들어야 한다. 실제로 이 책의 저자를 비롯한 수많은 “진짜 뇌를 키워보고 싶다”는 과학자들이 세계 곳곳에서 뇌를 만들고 있다. 다만 윤리적 문제와 법적 규제로, 물론 아직까지 충분치 않은 기술적 문제 때문에, ‘미니뇌’가 연구 대상이다. 만들어진 미니뇌는 인간 뇌의 특징을 연구하는 데 이용되고, 더 나아가 뇌질환 치료를 위한 약물 개발, 환자에게 이식할 뇌조직 대체품 등으로 사용할 수 있을지 연구되고 있다. 미니뇌 연구에 이런 명확한 학문적, 실용적 목적만 있는 것은 아니다. “뇌에 대한 경외심과 뇌를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는 순수한 욕망”은 뇌과학자들의 뇌에 자리잡은 “호기심의 획득 형질이다.”
다만 현재 기술은 사람의 뇌 요소를 모두 갖춘 전체로서의 ‘미니뇌’를 만들지 못한다. 주름이 잡혀 있는 진짜 뇌를 떠올리면 안 된다. “부분적으로나마 뇌와 모양이 비슷하며 신경 신호를 만들어 낼 수 있는 3차원 배양체”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3차원 세포 덩어리”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재료는 뉴런과 교세포, 줄기세포다. 전기 신호를 전달하는 신경세포나 황우석 박사 덕분에 온 국민이 어느 정도 알게 된 줄기세포 외에 교세포를 비롯해 쉽사리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나오지만, 저자는 “맘 먹고 천천히 따라오시길 바란다”고 권유한다. “발명은 뇌와 재료의 결합이다. 뇌를 더 많이 쓸수록 재료가 덜 든다”는 20세기 초반 미국 유명 발명가 찰스 캐터링의 말을 인용하며 저자는 최대한 쉽게 쓰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평소 쓰지 않던 뇌 부위를 활성화해가며 이론과 개념을 이해하려고 애쓰다 보면, 책의 후반부에 이르러 흥미진진한 대목을 만나는 기쁨을 얻게 된다. 미니뇌를 실제로 만드는 이야기들이다. 만드는 것은 말로는 어렵지 않다. “다분화능을 가지고 있는 줄기세포에 자기조직화 과정을 유도할 수 있는 적절한 인자를 배양액에 처리하며 된다. 배아줄기세포를 3차원 덩어리로 키우면서, 여기에 적절한 인자를 처리하면 배아줄기세포 덩어리의 분화를 유도할 수 있다.” 그러나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암 덩어리와 유사한 ‘기형종’으로 분화하지 않도록 특정한 발생학적 유도 과정을 재현해 내야 한다. 복잡하고 기술적이며 일반 대중이 이해하기 어려운 기술적 내용을 줄이는 대신, 저자는 2005년 3차원 미니 대뇌를 최초로 보고한 일본 사사이 요시키 교수와 사사이 교수의 방법을 변형하여 개발한 오스트리아 위르겐 노블리히 교수의 서로 다른 방법론을 간략히 제시한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구오-리 밍과 홍준 송 부부 교수가 미니뇌에 지카바이러스를 감염시켜 소두증 연구를 수행한 사례, 싱가포르에서 활약중인 한국인 제현수 교수의 도파민 뉴런을 지닌 미니 중뇌 연구 등도 흥미롭다.
이 책의 고갱이는 6장이다. 저자인 선웅 고려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연구팀의 미니뇌 연구프로젝트가 “처음 시도해 보는 일이라 아주 막막했지만 우여곡절을 거쳐 한 단계에서는 성공하고 그 다음 단계에서는 실패하는 일상”이 담겨 있다. 십수년의 지리한 미니 척수 만들기 과정이 생생하게 전개되는데, 끝없이 좌절하고 다시 작은 가능성을 쥐고 의지로 일어서는 연구팀의 활약이 담담히 서술되어 있다. “보통 한 연구를 마치고 남들에게 공개할 때까지 최소 3년, 길게는 7~8년도 걸린다.” 느린 속도로 전개되는 연구 과정의 답답함은 새로운 발견에 대한 기대가 상쇄한다. “무지에 대한 동경”이 이들을 이끄는 힘이다.
이 간단치 않은 최첨단 과학지식을 담은 대중서가 나왔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이 책은 연구자들의 대중 강연을 통해 과학지식을 널리 알리는 카오스(KAOS)재단과 국내 최초의 과학잡지 에피(Epi)가 함께 기획한 ‘반짝이는 순간’의 첫 작품이다. 쉬운 책은 아니지만 과학자들이 땀 흘리며 뭔가에 몰두하고 있는 실험실을 슬쩍 들여다보다 어느 순간 “짙은 구름 사이로 한 줄기 빛이” 섬광처럼 찾아드는 반짝임을 목격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작업이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