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발신제한>으로 첫 단독 주연을 맡은 배우 조우진. 씨제이이엔엠 제공
“제가 실감하는 게 관건이었어요. ‘의자 밑에 폭탄이 설치돼 있다. 여긴 폐쇄된 공간이다. 나는 달리고 있다.’ 계속 자기최면을 걸었죠. 이렇게 자기최면을 가장 많이 한 작품이 또 있을까 싶어요.(웃음)”
23일 개봉하는 영화 <발신제한>으로 데뷔 22년 만에 첫 단독 주연을 맡은 조우진은 부담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이 부담이 낳은 자기최면 덕분에 관객들이 94분 동안의 숨가쁜 질주에 몰입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18일 이뤄진 화상 인터뷰에서 그는 “1999년 단돈 50만원을 들고 상경한 나에게 지금 이 상황은 그저 기적”이라고 감격스러워하면서도 유쾌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시나리오를 읽고 ‘성규’라는 인물이 가진 긴장감을 과연 잘 연기할 수 있을까 망설였다는 그는 “그동안의 영화에서 느끼지 못한 무게와 너비를 제가 잘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했다”며 “시나리오 자체의 매력과 감독님의 열정만 믿고 출연했다”고 했다.
김창주 감독의 데뷔작 <발신제한>은 자신의 차 의자 밑에 폭탄이 설치된 사실을 알게 된 남자가 동승한 자식들을 구하기 위해 벌이는 사투를 그린 스릴러영화다. 은행 브이아피(VIP) 고객센터장인 성규(조우진)는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출근길에 나선다. 아이들 학교에 다와갈 무렵, ‘발신번호 제한’이라고 뜬 전화가 걸려온다. 전화 속 남자는 “의자 밑에 폭탄이 설치돼 있다”며 “차에서 내리거나 경찰에 알리면 폭파시켜버리겠다”고 협박한다. 장난으로 여겨 전화를 끊은 성규는 차 밑에서 폭탄을 발견하고는 공포에 휩싸인다. 자신과 똑같은 위협에 시달리던 직장 후배가 차 폭발로 숨지는 광경을 목격한 성규는 협박범의 요구대로 현금 30억원을 구하기 위해 도심을 질주한다. 경찰은 성규를 차량 폭파범 용의자로 보고 추격에 나선다.
편집감독 출신인 김창주 감독의 군더더기 없는 연출로 영화는 극한상황에 처한 인물의 동선을 따라 긴박하고 스피디하게 진행된다. 극 후반부에 가족 간의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이 나오면서 뜻밖의 감동을 선사하기도 한다.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왔던 성규가 자신과 가족을 돌아보게 된다는 점에서 저는 사실 이 영화를 성규의 성장영화라고 생각하거든요. 개인적으로도 후반부의 감동적인 신이 기억에 남습니다. 도심 추격 스럴러를 만끽하다가 갑자기 나타나는 선물 같은 장면이죠. 관객들에게 수줍게 건네는 선물 같은 장면을 많이 좋아해주셨으면 합니다.”
영화 <발신제한>으로 첫 주연을 맡은 배우 조우진. 씨제이이앤엠
그는 첫 단독 주연의 부담감 때문에 “내가 나온 장면에 대한 품평을 현장 스태프 모두에게 일일이 물어보기도 했다”고 말했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 “여전히 기적 같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만감이 교차한다”고 감격스러워하기도 했다.
한국 영화는 조우진이 나오는 영화와 안 나오는 영화로 나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동안 많은 작품에 출연해왔던 그는, 자신의 삶을 바꾼 작품으로 우민호 감독의 <내부자들>(2015)을 꼽았다. 쇠톱을 들고 “여 썰고, 여기도 썰고”라는 대사를 무심하게 내뱉던 조 상무 역은 무명배우였던 그를 일약 한국 영화의 명품 조연배우로 위상을 뒤바꿨다.
“돈으로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100원 갖고 있던 내가 1000원을 받는 것과 돈 한푼 없던 내가 100원을 받는 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돈이 없다가 100원을 받는 게 더 값어치 있는 느낌인 거죠. 굳이 비교를 하자면, 코흘리개 시절 100원을 받았을 때의 느낌입니다. 50원으로 오락실을 가고, 남은 50원으로는 사탕을 사먹어야지 하는 생각이었어요.(웃음) 그런 면에서 영화 <내부자들>에 발탁됐을 때가 더 감격적이었습니다.”
그는 “인생의 은인은 아내”라며 “제가 딸바보 똥멍충이인 점이 딸과의 장면이 많은 이번 영화 촬영할 때 큰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