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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70대와 30대의 멜로, 무엇이 사랑을 가능하게 하는가

등록 2021-07-10 13:07수정 2021-09-27 17:56

[토요판] 손희정의 영화담(談)
빛나는 순간

70대 여성과 30대 남성의 사랑 얘기
불쾌해하거나 사랑이라 강변하거나
엄연한 사랑인데 왜 해명해야 하나
영화 <빛나는 순간> 한 장면. 명필름 제공
영화 <빛나는 순간> 한 장면. 명필름 제공

‘#파격멜로’. 70대 여성 진옥과 30대 남성 경훈의 사랑을 그린 영화 <빛나는 순간>에 붙은 수식어 중 하나다. 어떤 사람들은 불쾌해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사랑”이라고 ‘설득’한다. 전자도 이해 가지 않지만, 후자 역시 일종의 동어반복처럼 느껴진다. 엄연한 사랑을 왜 재차 사랑이라고 설명해야 하는가? 우리의 사랑에는 왜 이토록 많은 말이 필요한가. 심지어 ‘연상연하’ 커플의 사랑 이야기는 정통 멜로드라마의 고전적 주제 중 하나다. 그렇게까지 파격적일 것도 없다는 이야기다.

‘천국이 허락한’ 사랑의 정체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영화는 아무래도 더글러스 서크의 1955년 작 <천국이 허락한 모든 것>(All that Heaven Allows)이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혼자 살고 있는 케리는 젊은 정원사 론과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달콤한 시간도 잠시. 나이 차와 계급 차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주변 사람들의 경멸 어린 시선 때문에 이내 사랑을 포기한다. 영화의 끝, 케리는 론이 심하게 다쳤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에게 달려간다. 론은 정신을 잃은 채 소파에 누워 있다. 두 사람은 이제 영원히 함께라는 암시와 함께 영화의 막이 내린다. 이건 과연 해피엔딩이었을까? 페미니스트 비평가들은 론이 ‘아들’처럼 돌봄을 필요로 할 때에야 비로소 두 사람의 관계가 허락되었다고 해석했다. 1950년대의 ‘천국’이 ‘과부이자 어머니’인 여성에게 ‘허락한 모든 것’은 거기까지였던 셈이다.

뉴저먼시네마의 기수였던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는 이 영화를 1970년대 독일로 옮긴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1974)가 바로 그 작품이다. 60대의 백인-여성-노동자인 에미는 우연히 들어간 아랍식 카페에서 모로코 출신의 외국인 노동자 알리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들의 나이 차와 인종 차는 케리와 론이 대면해야 했던 것보다 더욱 노골적이고 치명적인 갈등을 불러온다. 파스빈더는 2차 세계대전 뒤 홀로코스트에 대한 통렬한 반성 후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던 인종차별의 문제를 사랑 이야기 안에서 선명하게 그려낸다. 그리고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통제하는 가부장제와 유럽의 식민주의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음을 폭로한다. 사회의 편견은 불안을 낳고, 그 불안은 영혼의 마주침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을 갉아먹는다.

21세기에 이 작품은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다. 토드 헤인스는 파스빈더를 경유해서 <천국이 허락한 모든 것>을 다시 리메이크하면서 <천국으로부터 먼>(Far from Heaven)(2002)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리고 1950년대를 배경으로 금지된 사랑의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카메라는 이제 백인 주부 캐시와 흑인 정원사 레이몬드 사이의 친밀함을 포착한다. 이 우정 혹은 사랑 때문에 레이몬드는 말 그대로 돌을 맞는다. 헤인스는 1950년대 흑백 분리주의 시대 미국의 초상을 던져놓으며 2000년대의 미국에 묻는다. 저 야만의 시대로부터 50년이 지난 지금은 과연 얼마나 달라졌느냐고. 영화는 어설픈 봉합을 시도하지 않는다. 비극을 비극으로 두면서 ‘천국이 허락한’ 경계 안에 머물기를 거부한다. 그리하여 이 영화에서 ‘천국’은 양가적인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정상과 비정상을 규정하는 지배적인 사고방식 그 자체다. 동시에 그것은 우리가 아직 다다르지 못한, 비규범적인 사랑도 숨 쉴 수 있는 유토피아다. 그러므로 우리가 있는 자리는 ‘천국으로부터 먼’ 어딘가다.

영화 &lt;빛나는 순간&gt; 한 장면. 명필름 제공
영화 <빛나는 순간> 한 장면. 명필름 제공

50년 전부터 영화사에 아로새겨진
‘천국이 허락한’ 연상연하의 사랑
둘의 관계가 허락되는 조건 무얼까

사랑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

그렇다면 2021년의 한국 사회는 어떨까? <빛나는 순간>을 둘러싼 온갖 말들은 우리 사회가 <천국이 허락한 모든 것>의 시대와 별반 다르지 않은 고리타분한 정상성의 규범에 사로잡혀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놀랍게도 <빛나는 순간>이라는 작품 자체는 고고하게 그 담론의 수준을 뛰어넘어 다른 곳으로 나아간다. 영화는 “왜 사랑이 좌절되는가?”를 질문하지 않는다. 영화는 오히려 “무엇이 우리의 사랑을 가능하게 하는가?”를 묻는다.

<빛나는 순간>은 물질하는 제주 해녀들의 모습에서 시작한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다큐멘터리 감독 경훈(지현우 분)이 중요한 미션을 하나 짊어지고 이 해녀들을 찾아온다. 그 미션이란 다큐 출연 섭외를 단호하게 거절한 진옥(고두심 분)을 잘 설득해서 다큐에 출연시키는 것. 회사 선배 삼동(김중기 분)은 경훈에게 “어떻게든 설득해야 한다, 무조건 방긋방긋 웃으라”고 주문한다. 그런데 진옥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경훈이 아무리 웃어도 넘어오지 않는다. 결국 경훈은 “진옥의 비서”를 자처하면서 온종일 따라다니며 해녀 일을 돕는다. 시간이 흐르면서 경훈은 스스로 “제주 여자 다 됐다”고 말할 정도로 해녀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된다. 그렇게 서로 가까워지고, 서로를 알아가게 되면서 진옥의 마음도 조금씩 열린다. 결국 진옥은 다큐멘터리 촬영을 허락한다. 그리고 사랑이 시작된다.

이 영화에서 사랑을 가능하게 하는 첫번째 조건은, 욕정이다. 진옥이 우연히 경훈의 알몸을 보게 되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순간 중 하나다. 그의 ‘젊은 육체’를 보고 진옥은 얼굴을 붉힌다. 그리고 밤새도록 그 모습을 떨쳐내지 못한다. 핸드폰에 경훈의 이름이 뜨면 심장이 덜컥하고, 얼굴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웃게 된다. 어찌할 수 없이 사랑이다. 여성 노인의 섹슈얼리티를 무지갯빛으로 밝히면서 영화는 기꺼이 섹시해진다. 사랑을 가능하게 하는 또 하나의 조건은 이해와 위로다. 진옥은 제주 4·3 사건에서 부모를 잃었고, 경훈은 세월호 사고에서 연인을 잃었다. 역사의 폭력 앞에서 사랑하는 이를 잃은 두 사람은 서로의 아픔과 상실을 본다. 그리고 벌어진 상처와도 같은 동굴 안에서 첫 키스를 나눈다. 영화의 메이킹북에서 감독 소준문은 “사랑은 위로의 순간에 피어난다”고 썼다.

영화 &lt;빛나는 순간&gt; 한 장면. 명필름 제공
영화 <빛나는 순간> 한 장면. 명필름 제공

소준문 감독 “사랑, 위로의 순간 피어”
이 시대 가혹하게 억압된 멜로드라마
이제 다시 사랑과 애틋함 말할 때다

잠시 열렸다가 사라지는 천국의 문

욕정과 위로가 이처럼 서로 얽힐 수 있었던 건 제주라는 공간 덕분이다. 꾸준히 퀴어 멜로드라마를 만들어온 소준문의 영화에서는 언제나 공간이 제2의 주인공이었다. 이성애중심적인 사회의 촘촘한 매트릭스에서 벗어나 두명의 동성애자가 밀회를 즐길 수 있는 곳. 그러니까 여관이나 섬, 택시 같은 곳. 그곳은 어쩌면 아직은 도래하지 않은 천국, 잠시 열렸다가 찰나와도 같이 사라지는 유토피아일지도 모른다. <빛나는 순간>에서는 그런 공간이 바로 제주다. 제주에서는 누구도 진옥과 경훈의 관계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다만 염려하고, 힘주어 응원한다. 둘의 관계를 비하하는 목소리는 외부로부터 침범해 들어온다. 서울에서 온 삼동은 진옥을 사랑한다는 경훈에게 “역겹다”고 말한다. 영화는 부러 이 장면을 과잉된 감정 안에서 담아낸다. 매우 어색하고 이질적인 순간이 사랑의 시공간에 균열을 내는 것이다.

<빛나는 순간>의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나는 이 영화에서만큼은 멜로드라마의 슬픈 관습이 깨지기를 바랐다. 하지만 영화는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결국 경훈은 서울로 돌아갔고, 진옥은 바다에 남았다. 하지만 이건 비극인가? 그건 모르겠다. 중요한 건 진옥이 다른 어딘가가 아닌 진옥을 진옥이게 하는 바로 그 바다에 남았다는 것이다. 해녀의 “생명줄”인 테왁에 매달려 숨비소리를 부르며 경훈을 보내는 진옥의 표정은 어떤 말로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나는 많은 사연을 삼키고 있는 진옥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오랜만에 보는 멜로드라마적인 얼굴이다. 그러고 보면 지금/여기의 스크린 위에서 멜로드라마는 너무 가혹하게 억압되고 있지 않은가. 이제 다시 사랑과 위로, 욕정과 애틋함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가 된 것 같다. 이 온당하게 섹시한 영화와 함께 말이다.

영화평론가, <당신이 그린 우주를 보았다> 저자

▶ 손희정 영화평론가가 개봉 영화 비평을 격주로 씁니다. 영화는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가고 관객들이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다시 시작됩니다. 관객들의 마음에서, 대화에서, 그리고 글을 통해서. 영화담은 그 시간들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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