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다. 심약자 관람불가다. 영화 장면들이 생각나 이틀 동안 잠을 설쳤다. 밤새 뒤척이게 만든 공포영화는 나홍진 감독의 <곡성> 이후 처음이다. 복기해야 하는 지금도 소름이 돋는다. 몇몇 장면에서 눈 감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 때, 호러물을 좋아한다는 호들갑이 민망했다. “<곡성>만큼 무섭냐”고 묻지 마라. <곡성>은 <랑종>에 비하면 ‘뽀로로’ 수준이다. 공포 마니아가 아니라면, 상영관에 불 켜놓고 관람하는 ‘<랑종> 겁쟁이 상영회’를 권한다. 14일 개봉하는 <랑종>은 타이 산간지역을 배경으로 한 엑소시즘 영화다. ‘랑종’은 타이어로 무당을 뜻한다.
타이의 샤머니즘을 취재하던 다큐멘터리 제작진은 1년여의 현지 조사 끝에 북동부 이산 지역의 랑종 ‘님’(싸와니 우툼마)을 만난다. 신내림을 거부한 언니 ‘노이’(씨라니 얀키띠칸)를 대신해 가문의 대를 잇는 무속인의 운명을 받아들인 님은, 마을 수호신인 ‘바얀신’을 섬기고 있다.
제작진이 님을 촬영하는 도중 님의 형부가 갑자기 숨졌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제작진과 함께 장례식장으로 향한 님은 그곳에서 무엇에 홀린 듯 이상 행동을 보이는 조카 ‘밍’(나릴야 군몽콘켓)을 만난다. 님은 조카에게 ‘마티얌’(신내림)이 이뤄졌다고 직감한다.
조카가 걱정된 님은 언니 노이의 집을 찾지만, 노이는 자신을 대신해 무당이 된 동생에 대한 미안함과 가톨릭 신자라는 점 때문에 님을 멀리한다. 그사이 밍의 성격이 점점 난폭해지고 몸에서 피가 쏟아지는 등 증상이 심해지자 노이는 님 몰래 밍이 신내림을 받도록 한다. 이를 알게 된 님이 현장을 찾아 선무당의 내림굿을 막느라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밍은 도망쳐 이내 실종돼버린다. 님이 내림굿을 막은 이유는 조카에게 찾아온 것이 바얀신이 아닌 악귀였기 때문.
조카의 몸에 깃든 악귀를 내쫓기 위해 님은, 바얀신에게 기도를 드리고 악귀가 탄생한 곳에서 밤낮으로 제를 올린다. 이윽고 님은 계시에 이끌려 폐공장 건물을 찾고 그곳에서 여러명의 악귀가 동시에 빙의된 조카를 발견한다. 조카를 데리고 찾아간 퇴마사는 구마의식을 벌여야 한다며 님에게 말한다. “지금 밍은 키가 꽂혀 있는 자동차야. 누구든 몰고 갈 수 있지.” 님과 퇴마사는 사람들을 동원해 악귀를 내쫓는 의식을 준비하고, 이때부터 영화는 극한의 공포를 향해 치닫는다.
나홍진 감독이 원안·기획·제작을 맡고 타이의 스타 감독 반쫑 피산타나꾼(반종 피산다나쿤)이 연출한 <랑종>은, 페이크 다큐 기법을 차용해 서서히 공포를 극대화하는 영리한 전략을 선보인다. 극영화적인 연출이 아닌 다큐 제작기를 보는 듯한 구성은 사실감을 부여하면서 독보적인 무서움을 낳는다. 특히 퇴마의식을 앞두고 밍의 행동을 관찰하기 위해 제작진이 집 안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하는데, 여기 담긴 영상은 잊히지 않을 만큼 공포스럽다. 극도의 몰입감을 위해 얼굴이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들을 캐스팅했고, 카메라감독마저 해당 장면에 대한 내용을 모른 채 촬영하도록 했다. 정사신과 동물학대 논란 장면 등 묘사 수위가 높아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은 <랑종>은, 축축하고 기분 나쁜 기운을 내뿜는 화면을 위해 우기에 촬영했다.
영화 <랑종>의 반쫑 피산타나꾼 감독은 2014년 <피막>으로 타이 영화 최초 천만 관객 동원 기록을 세웠다. 쇼박스 제공
지난 2일 화상으로 이뤄진 기자간담회에서 피산타나꾼 감독은 “타이 말로 된 영화를 한국의 넓은 시장에 선보이게 돼 영광”이라며 “나 감독은 저의 아이돌”이라고 밝혔다. 2005년 <셔터>로 데뷔한 피산타나꾼 감독은 2014년 <피막>으로 타이 영화 최초 천만 관객 동원 기록을 세웠다. 그는 “5년 전 방콕에서 열린 <추격자> 상영회 때 나 감독을 만나 제가 만든 영화 디브이디를 드렸는데, 이렇게 연락해주실 줄 몰랐다”며 “<랑종>은 제가 접해보지 않은 새로운 차원의 영화였다”고 했다.
간담회 현장에 있던 나 감독은 “차기작은 <곡성>과 차별성을 둬야 한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국내에서 지역을 바꾸는 것보다 해외로 나가는 게 좋겠다고 봤다. 비가 많이 내리는 숲과 습기 등의 이미지를 떠올리다 피산타나꾼 감독님에게 연락을 드렸다”고 협업 배경을 설명했다.
이날 나 감독이 “<곡성> 준비할 때 무속인들이 기도 올리는 절에서 몇달 같이 지낸 적이 있다. 귀신은 있다. 그래서 늦은 밤 사무실에 남아 일도 못 한다”고 너스레를 떨자, 피산타나꾼 감독은 “호러영화를 많이 찍었지만 귀신은 없다”고 응수하기도 했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영화 <랑종>의 원안·기획·제작을 맡은 나홍진 감독. 쇼박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