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사적인 공주 송산리 고분군.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으로 공식명칭이 바뀐다.
백제 25대 임금 무령왕(462~523)은 한국 고대사에서 탁월한 ‘명군’으로 손꼽히는 통치자다. 5세기 초 고구려 침공으로 한강 유역의 첫 도읍 한성(서울)을 잃고 금강벌 웅진(공주)으로 쫓겨가야 했던 왕조의 위기 상황을 딛고 백제 중흥의 기틀을 새로 놓은 주역이 그였다. 1971년 도굴되지 않은 채 발견돼 백제 왕으로는 유일한 명문 지석과 동탁은잔, 수호동물상(진묘수), 관제 장식 등의 특급 유물들을 쏟아냈던 그의 무덤과 주변 고분군이 발견 50년만에 ‘무령왕릉’이란 공식 명칭을 얻게 됐다.
문화재청은 14일 무령왕릉이 발견된 5~6세기 백제 왕릉군 구역인 국가사적 ‘공주 송산리 고분군’을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으로, 6~7세기 백제 왕릉들이 밀집된 국가사적 구역인 ‘부여 능산리 고분군’을 ‘부여 왕릉원'으로 각각 공식명칭을 바꾼다고 예고했다.
‘부여 왕릉원’으로 공식명칭이 바뀌는 부여 송산리고분군. 국가사적이다.
두 고분군에는 백제의 웅진 도읍 시기(475∼538)와 사비 도읍 시기(538∼660)의 왕릉급 무덤들이 밀집되어 있다.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오른 ‘백제역사지구’의 핵심 유적들이다. ‘송산리 고분군’과 ‘능산리 고분군’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발굴 조사한 뒤 고적으로 지정하면서 붙인 명칭이다. 1963년 정부가 국가사적으로 지정할 때도 그대로 이어받아 지금까지 공식 명칭으로 써왔다.
그러나 1971년 송산리 고분군 배수로 부근에서 무령왕릉이 발견됐고, 1993년에는 능산리 고분 들머리에서 백제 금동대향로가 출토되는 등 두 유적 영역에서 기념비적인 발굴 성과가 잇따르자 역사성에 걸맞지 않은 기존 사적 명칭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계속 제기된 바 있다. 문화재청 쪽은 “무령왕릉 발굴 50주년을 맞아 백제 왕과 왕족들이 묻힌 두 고분군 유적의 위상을 높이고 연관된 역사를 더욱 널리 알리기 위해 국민에게 친숙한 이름으로 사적 명칭을 바꾸기로 했다”면서 “공주시, 부여군과 두 유적 안내판의 명칭을 바꾸고, 문화재 정보도 수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제공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