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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180㎝! 1500년 전 ‘키다리’ 신라인 인골 나왔다

등록 2021-07-15 11:52수정 2021-07-16 02:46

경주 탑동 고분군 덧널무덤서
우람한 체격 남성 인골 1구 발견
척추 만곡 흔적…유물도 나와
인류학·병리학 연구 진행
경주 탑동 고신라 고분군 목관묘에서 나온 1500년 전 성인 남자 인골. 키 180㎝로 추정돼 역대 삼국시대 출토된 인골 가운데 키가 가장 크다.
경주 탑동 고신라 고분군 목관묘에서 나온 1500년 전 성인 남자 인골. 키 180㎝로 추정돼 역대 삼국시대 출토된 인골 가운데 키가 가장 크다.
신장 180㎝? 1500년 전 묻힌 ‘키다리’ 신라인의 인골이 경주 옛 무덤에서 나왔다. 한반도에서 역대 출토된 고대 인골 가운데 키가 가장 크고 몸집도 우람해 실체에 관심이 쏠린다.

한국문화재재단은 최근 경북 경주 탑동 일대에서 5~6세기 고신라 귀족 무덤떼를 조사하면서 고분 24기와 인골 12점을 찾아냈으며, 이들 가운데 한 덧널무덤(2호 목관묘)에서 신장 180㎝의 남성 인골 1구를 양호한 상태로 확인했다고 15일 발표했다. 남성 인골은 현재까지 확인된 삼국시대 인골 중 키가 가장 큰 것으로 판명됐다.

재단 조사단 쪽 설명을 들어보면, 남성 인골은 목관묘에서 토기 등 주검에 딸린 껴묻거리 유물들(부장품)과 함께 나왔다. 두개골을 비롯해 등뼈와 갈비뼈, 허벅지 부위의 넙다리뼈, 발뼈 등 몸체 각 부위 뼈들이 온전한 상태로 대부분 남아 있었다. 출토 당시 측정한 신장은 175㎝였다. 그러나 얼굴 부위가 하늘을 쳐다보지 않고 숙인 상태였고, 턱은 가슴 쪽으로 당겨진 채 묻혀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몸체를 편 실제 신장은 180㎝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등뼈와 넙다리뼈 등의 크기도 기존 인골보다 월등히 큰 편이어서 장신에 장대한 체격을 지닌 남성으로 보인다.

인골이 나온 목관묘를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 머리맡과 발치에 토기 등의 부장품들이 묻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인골이 나온 목관묘를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 머리맡과 발치에 토기 등의 부장품들이 묻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지난 30~40여년간 신석기·삼한·삼국시대를 통틀어 한반도 고대인 무덤에서 출토된 남성 인골의 평균 신장은 대략 160~165㎝, 여성은 148~155㎝ 정도로 추산된다. 이번에 탑동 목관묘에서 나온 인골처럼 키와 몸집이 월등히 큰 남성 인골은 전례가 없다. 그가 생전 어떤 신분과 직업을 갖고 어떤 활동을 했을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는 대목이다.

<삼국유사> <삼국사기> 등 옛 역사기록을 보면, 무령왕, 법흥왕, 진평왕, 진덕여왕 등 큰 업적을 남긴 백제와 신라 제왕들은 거인이었다. 신장이 7~11척에 이르렀다. 신라 22대 지증왕의 왕비도 키가 7자5치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1자나 1척은 시대마다 보는 치수가 조금씩 달랐고, 오늘날 도량형 단위로 어떻게 환산하느냐에 대해서도 여러 이견들이 있지만, 어림잡아 30㎝로 봐도 키가 2m를 넘어가는 셈이다. 실제 발굴된 양상은 다르다. 지금까지 고대 왕릉급이나 귀족급 무덤에서 나온 인골들은 ‘키다리’ 급이 없었다. 2018년 7월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백제 30대 무왕의 것이 거의 확실하다며 공개한 전북 익산 쌍릉 대왕릉 출토 유골이 그나마 근사치에 들어간다. 분석 결과 60대 전후 남성 노인으로, 신장은 161~170㎝로 추정됐다. 19세기 한반도 남성 평균 신장(161.1㎝)보다 크고 ‘무왕은 키가 크고 풍채가 좋다’는 <삼국사기> 기록과도 어느 정도 부합하지만, 거인의 풍모는 아니다.

지난해 9월 발굴 성과가 공개된 경주 황남동의 6세기 신라 귀족무덤(120―2호 고분)의 경우 무덤 주인이 신장 170㎝ 전반의 장신 여성이란 견해가 제기돼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뼈 없이, 피장자에 씌우거나 입힌 금동관과 금동신발 등의 장신구 배치 등을 참고해 추정한 것이어서 통설이 되지는 못했다. 고대 인골을 바탕으로 얼굴과 체형까지 복원한 선례도 있다. 2006~2007년 경남 창녕 송현동 15호분에서 출토된 순장 여성 인골을 바탕으로 만든 ‘송현이’인데, 키는 153.5㎝에 불과했다.

2호 목관묘의 출토 인골을 포착한 3디(D) 입체 스캐닝 사진 세부. 주검 얼굴 부분의 시선을 하늘 쪽으로 향하게 하지 않고 고개 숙인 구도로 내려다보게 한 것이 특이하다. 머리 위로는 긴목 항아리(장경호) 등 고신라 토기 부장품들이 쌓여있는 모습이 보인다.
2호 목관묘의 출토 인골을 포착한 3디(D) 입체 스캐닝 사진 세부. 주검 얼굴 부분의 시선을 하늘 쪽으로 향하게 하지 않고 고개 숙인 구도로 내려다보게 한 것이 특이하다. 머리 위로는 긴목 항아리(장경호) 등 고신라 토기 부장품들이 쌓여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번에 출토된 남성 인골에 대해 형질인류학적 분석을 벌인 결과도 흥미롭다. 등뼈 부분에서 오늘날의 디스크 질환으로 볼 수 있는 척추 변형(만곡) 흔적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조사단 쪽은 척추 만곡이 보이는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한다. 주검을 매장하는 과정에서 충격으로 뼈의 변형이 일어났을 수 있고, 생전 육체노동을 거듭해서 디스크 증상이 생겼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발굴 실무자인 우하영 조사1팀 부팀장은 “단순 평민은 아니었겠지만, 상층 귀족보다는 노동을 주로 하는 중하위 계층일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를 밝혔다. “금속제 부장품 중 무기, 장신구는 일체 없고 철제 날을 지닌 괭이와 철로 만든 작은 칼(도자)만 나왔다는 점, 인골에 보이는 척추 측만증 같은 질환 흔적이 어떤 노동을 심하게 해서 생긴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는 점 등이 근거”라는 것이다. 장신의 주검인데도 왜 고개를 숙이고 좁은 관에 몸을 꼭 끼운 얼개로 묻었는지도 풀어야 할 수수께끼다. 재단 쪽은 이와 관련해 인골의 인류학·병리학 연구를 통해 무덤에 묻힌 신라 남성의 얼굴을 복원하고 유전자 디엔에이(DNA)를 추출해 현대인의 용모·체형과 비교하는 후속 작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탑동 고분군은 경주 도심부 남쪽의 남천 부근 도당산(경주 남산 북쪽 끝자락) 기슭에 흩어진 원삼국~고신라 시대의 무덤떼 유적이다. 지난 2010년부터 발굴 조사를 벌여 기원전 1세기께의 목관묘부터 5~6세기의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묘)까지 180여기의 옛 무덤들이 확인됐다. 고분군 무덤 대부분이 고신라 특유의 돌무지덧널무덤들이란 점에서 당대 중하층 귀족들의 묘역이란 게 학계의 통설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한국문화재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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