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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 절터서 고려시대 금동불과 ‘의곡사' 새긴 기와가 나왔다

등록 2021-07-19 21:01수정 2021-07-19 21:08

불교문화재연구소 조사…1046년 뜻하는 연호 기와도 나와
함안 강명리 절터에서 나온 소형 금동불.
함안 강명리 절터에서 나온 소형 금동불.

경남 함안군 옛 절터에서 고려시대 소형 금동불상과 절 이름으로 추정되는 글자를 새긴 기와가 나왔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 문화재청이 지원하는 ‘중요 폐사지 시·발굴조사 사업'의 하나로 군내 함안면 강명리 광려산 기슭 절터를 발굴 조사한 결과 높이 8㎝의 고려시대 금동불과 ‘義谷寺(의곡사)’, ‘중희십오년'(重熙十五年) 같은 명문 기와 등을 찾아냈다고 19일 밝혔다.

눈길을 끄는 소형 금동불은 연꽃무늬 들어간 연화대좌와 한 몸을 이룬다. 녹이 슬어 형태가 뚜렷하지 않으나 머리 부분에 솟은 상투 모양의 육계와 몸에 걸친 가사, 불법의 의미를 상징하는 손가락 짓기 형상인 수인(手印), 빛을 형상화한 불상 뒷면 광배 장식에 거는 고리 등이 보인다. 불상 양쪽에 연결 흔적이, 대좌 아래에는 길고 뾰족한 부분이 남아있어 법당 모양의 작은 성물함인 불감(佛龕)에 봉안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연구소 쪽은 “불감에 세 분의 삼존불상을 안치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현재는 삼존의 중심 불상으로 여겨지는 상만 깨진 금속그릇과 함께 발견됐다”고 설명했다.

절터에서 나온 ‘ ‘義谷寺(의곡사)’ 절 이름이 새겨진 기와.
절터에서 나온 ‘ ‘義谷寺(의곡사)’ 절 이름이 새겨진 기와.

기와에 새긴 ‘의곡사'와 서기 1046년을 뜻하는 연호인 ‘중희십오년' 등의 명문은 절터의 실체와 당대 위상을 일러주는 문자 자료다. ‘중희십오년' 명문 기와를 만든 시기에 중창이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강명리 절터는 원래 돌로 기단을 쌓은 뒤 전각을 올려 사찰로 쓰다가 20세기 이후 공동묘지로 쓰면서 유적 일부가 훼손됐다. 지난 수년간의 시굴, 발굴조사를 통해 통일신라~고려시대 여러 차례 중수하며 세력을 이어간 사찰 유적이었음이 드러났다. 절터가 있는 광려산에는 석조 불상과 석탑 등이 곳곳에 남아 있어 앞으로도 추가 발굴성과가 주목된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불교문화재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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