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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원조 캡슐호텔, 캡슐 남기고 사라진다

등록 2021-07-22 19:45수정 2021-07-23 02:33

구로카와 기쇼 분신같은 작품
개별 교체 가능한 유기적 설계
세계 건축계 아방가르드 대표

도시 직장인들 안식처로 각광
‘조립식 주택’ 유행까지 만들어
50년만에 노후화 하반기 철거
1972년 완공 당시 세계 현대건축계에서 큰 주목을 받았던 일본 도쿄 긴자 초입의 나카긴 캡슐타워를 아래서 올려다본 모습. 1개의 원형창을 지닌 1인용 입면체 주거공간인 캡슐 140개를 서로 맞붙여 만들어진 전위적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사진은 지난 2019년 봄 찍은 것으로 캡슐들이 노후화한 채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흔적들이 역력하다. 노형석 기자
1972년 완공 당시 세계 현대건축계에서 큰 주목을 받았던 일본 도쿄 긴자 초입의 나카긴 캡슐타워를 아래서 올려다본 모습. 1개의 원형창을 지닌 1인용 입면체 주거공간인 캡슐 140개를 서로 맞붙여 만들어진 전위적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사진은 지난 2019년 봄 찍은 것으로 캡슐들이 노후화한 채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흔적들이 역력하다. 노형석 기자

전세계 ‘캡슐호텔’의 원조가 사라진다. 영원히 없어지는 건 아니고, 캡슐은 남았다. 바로 건물을 이뤘던 140개의 직육면체 모양 캡슐과 그 속에 깃든 건축가와 주거·업무의 기억들이다.

1972년 세계 건축계에 당대 아방가르드(전위) 건축의 기린아처럼 등장했던 일본 도쿄 도심 지요다구 긴자 거리 들머리에 있는 ‘나카긴 캡슐타워’가 건립 50주년을 앞두고 올 하반기부터 철거 과정을 밟기로 했다. 지요다구 도시디자인사무소와 건물의 창작 주체인 구로카와 기쇼 건축사무소는 이달 초 이런 방침을 공표했다. 대신 건물을 이루는 140개 캡슐들을 크라우드펀딩(공개 모금)을 통해 1970년대 초창기 상태로 재복원하고 일부는 뮤지엄 전시품으로, 일부는 숙박용 공간으로 다시 쓰기로 했다.

1970년대 초 나카긴 캡슐타워의 건립 공사 당시 모습. 건물의 구성 요소인 주거공간 캡슐 1개가 크레인에 들려 건물의 뼈대에 끼워 맞춰지는 장면이다.
1970년대 초 나카긴 캡슐타워의 건립 공사 당시 모습. 건물의 구성 요소인 주거공간 캡슐 1개가 크레인에 들려 건물의 뼈대에 끼워 맞춰지는 장면이다.

나카긴 캡슐타워는 전후 일본 특유의 현대건축 사조인 메타볼리즘 운동을 주도했던 건축 거장 구로카와 기쇼(1934~2007)의 분신과도 같은 작품이다. 일본 건축의 아버지로 불리는 단게 겐조 도쿄대 교수 밑에서 수학한 구로카와는 30대 청년 건축가 시절 13층짜리 건물로 캡슐타워를 설계했다. 각각의 공간 안에 각각 침대와 화장실, 수납장, 티브이·오디오 세트를 갖춘 140개의 입방체 캡슐을 볼트로 엮어 각기 다채로운 방향을 향하도록 집적시켜 지었는데, 1970~80년대 세계 현대건축사를 논할 때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명작으로 손꼽혀왔다.

집을 사람이 사는 거주용 기계로 본 르코르뷔지에의 모더니즘을 바탕으로 빠르게 변화·발전하는 도시에 맞춰 신진대사가 이뤄지듯 건축물을 유기적 개념으로 지어야 한다는 메타볼리즘이 캡슐타워의 건축사상적 뼈대가 됐다. 구로카와는 애초 건물을 설계할 때 도시공간과 사람들의 거주 상황 변화에 맞춰 용이하게 개별 캡슐들을 교체해 수시로 새로 끼울 수 있는 유기적 건축을 구상했다. 하지만 그의 의도는 지난 40여년간 적중하지 못했다. 캡슐들의 내구 기한은 훨씬 짧았고 곧장 낡고 노후해진 채 방치됐지만, 기계 부품과 달리 쉽게 갈아 끼우지 못했다. 그 안에서 생활하는 인간의 삶을 기계 부품 공간처럼 쉽게 바꿀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1972년 완공된 직후 찍은 나카긴 캡슐타워의 모습. 변화하는 도시 환경에 맞춰 건축물도 진화, 변형한다는 일본 현대건축 특유의 메타볼리즘 사상을 단적으로 구현한 대표작이란 평가를 받았다.
1972년 완공된 직후 찍은 나카긴 캡슐타워의 모습. 변화하는 도시 환경에 맞춰 건축물도 진화, 변형한다는 일본 현대건축 특유의 메타볼리즘 사상을 단적으로 구현한 대표작이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의 구상은 다소 엉뚱하게 명맥을 잇게 된다. 지금 봐도 미래적이고 에스에프적인 상상력을 물씬 풍기는 조형적 이미지를 지닌 이 건물의 캡슐 요소들이 도시 직장인들의 안식처로 각광받은 캡슐호텔 숙박 문화를 낳는 모태가 된 것이다. 캡슐타워에서 착안한 관 모양의 캡슐형 객실로 구성된 호텔이 1979년 오사카 도심에서 처음 나타난 뒤 1980~2000년대 일본 전역을 넘어 한국과 유럽 등 전세계로 퍼지면서 이른바 ‘스몰하우스’, ‘타이니하우스’ 같은 조립식 주택의 유행까지 만들어낸 것이다.

나카긴 캡슐타워를 구성하는 캡슐 공간의 내부. 원형 창을 중심으로 침대와 의자, 오디오와 일체화한 수납장 등이 보인다.
나카긴 캡슐타워를 구성하는 캡슐 공간의 내부. 원형 창을 중심으로 침대와 의자, 오디오와 일체화한 수납장 등이 보인다.

캡슐타워는 지난 5월 더 이상 개수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돼 대지 소유주에게 철거가 일임됐고, 건물의 핵심인 140개의 캡슐들은 각기 다른 용도로 해체해 박물관 전시품과 다른 개별 주거용 공간 등으로 뿔뿔이 리모델링되어 분산되는 운명을 맞게 됐다. 이미 2000년대 들어 건물이 사실상 무용지물로 전락하자 캡슐을 해체해 프랑스 퐁피두센터 등의 박물관으로 이전해달라는 요청도 많았다. 건축사무소 쪽은 캡슐 디자인 미학을 많은 이들이 경험할 수 있도록 전세계 박물관에 캡슐을 전시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놓았다. 이미 1980년대 모델 룸 캡슐 하나가 구로카와가 설계한 사이타마현립 근대미술관에 전시되고 있기도 하다. 해체된 캡슐들은 일본과 세계 곳곳의 다양한 공간에서 다양한 용도로 새 삶을 이어나갈 것으로 보인다. 에스에프 스타일의 명작 건축물에 어울리는 독특한 리모델링인 셈이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도판 나카긴 캡슐타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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