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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봄여름가을겨울, 다시 봄…“언제나 우리 곁에”

등록 2021-07-23 04:59수정 2021-07-30 09:35

‘리프레젠트’ 콘서트 연 김종진
김현식·전태관 홀로그램 등장
“위대한 뮤지션은 항상 최고의
소리 들려준다는 걸 보여주고파”
21일 수원 경기아트센터에서 열린 홀로그램 콘서트 ‘리프리젠트’공연 장면. 경기아트센터 제공
21일 수원 경기아트센터에서 열린 홀로그램 콘서트 ‘리프리젠트’공연 장면. 경기아트센터 제공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김현식이 노래를 부르자, 옆에서 전태관이 노래에 맞춰 드럼을 쳤다. 앞에 있던 김종진도 기타를 쳤다. 세상을 떠난 김현식과 전태관은 홀로그램(3차원 영상 입체 사진)으로 다시 공연장에 돌아와 살아 있는 사람과 함께 무대에 섰다.

21일 수원 경기아트센터에서 열린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의 홀로그램 콘서트 ‘리프리젠트’(Re:present)에서다. 이번 콘서트는 인물을 디지털화하는 기술인 디지털휴먼 기술과 홀로그램 기술을 활용했다.

봄, 부활

김현식 3집 앨범 뒤표지. 왼쪽부터 박성식(피아노) 장기호(베이스) 김현식(보컬) 김종진(기타) 전태관(드럼) 서라벌레코드 제공
김현식 3집 앨범 뒤표지. 왼쪽부터 박성식(피아노) 장기호(베이스) 김현식(보컬) 김종진(기타) 전태관(드럼) 서라벌레코드 제공
이날 공연에 앞서 13일 오후 강남구 도곡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종진은 “이번 무대에서 위대한 뮤지션은 언제든 우리와 함께 있고, 최고의 소리와 연주를 들려준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기획 의도는 무엇일까? 김종진은 디지털 기술로 사람·음악·과학이 하나로 연결되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과학은 계속 달려만 가고, 설명은 안 해준다. 사람들은 계속 따라가야 하니까 힘들어 한다. 이 때문에 우리 같은 음악가들이 필요하다. 과학이 설명하지 않는 빈자리에 인간적인 감성이 들어가야 삶은 빛이 나니까. ‘한쪽엔 과학, 한쪽엔 감성’이라는 양 날개를 갖추면 추락하지 않고 아름다운 미래를 향해 비상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김현식·전태관·김종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봄여름가을겨울은 1986년 결성됐다. 밴드 이름은 어떻게 지었을까? 이름은 동틀 무렵 충남 대천 바다 앞에서 나왔다.

“팀 이름을 만들기 전에 팀이 꾸려졌다. 이름을 만들어야 했다. 팀 이름을 결정하기 위해 대천해수욕장으로 엠티(MT)를 떠났다. 파도 소리를 들으며 밤새 술을 마셨다. ‘야간비행’ ‘어니스티’(honesty) 같은 이름이 나왔다. 동틀 무렵에 내가 ‘봄여름가을겨울’을 제안했다. 한국의 자랑거리가 4계절이고, 멤버도 4명이니 상징성이 있다고 했다. (김)현식이 형이 ‘그거야’ 하며 좋아했다. 왜냐면, 현식이 형이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노래를 불렀거든. 다른 멤버들은 나를 노려봤다. 현식이 형한테 아부했다고.”

그렇게 봄여름가을겨울은 김현식과 박성식(피아노), 장기호(베이스) 김종진(기타) 전태관(드럼)으로 출발했지만 연이은 멤버 탈퇴로 1988년 김종진과 전태관 2인조 밴드로 재편했다.

기타와 드럼으로만의 2인조 봄여름가을겨울은 록밴드이지만 한 스타일만 고집하지 않고 한국형 블루스, 록, 퓨전 재즈를 개척하며 다양한 장르를 선보였다. 그렇게 시작한 봄여름가을겨울은 ‘어떤 이에겐 꿈을 나눠주며, 세상의 많은 사람에게, 이처럼 많은 개성을 보여주며’ 사랑을 받아 나갔다.

여름, 만남

봄여름가을겨울 김종진이 13일 강남구 도곡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한 뒤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정혁준 기자
봄여름가을겨울 김종진이 13일 강남구 도곡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한 뒤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정혁준 기자
인터뷰할 때 김종진에게 전태관과 김현식 가운데 누구 얘기를 먼저 하고 싶냐고 물었다. 김종진은 전태관 얘기를 먼저 했다. 두 사람이 만난 곳은 방배동의 음악카페 시나브로였다.

“저는 그때 밴드(록밴드 엑시트)를 하고 있었는데, 드럼을 쳤던 형(전필립 파라다이스 회장)이 미국으로 공부하러 간다고 했다. 유학 가기 전에 드럼 치는 친구 한명 뽑아놓고 가라고 했다. 그때 형이 그날 소개해 준 친구가 바로 태관이었다. 1982년 처음 만난 그날은 크리스마스이브였다.”

첫인상은 어땠을까? “태관이는 처음부터 귀공자였고, 처음부터 신사였다. 사실 태관이는 부자들만 산다는 성북동에 살기도 했다. 아버지가 사업으로 큰돈을 벌기도 했지만 성공하지는 못하셨다. 그런데도 태관이는 참 긍정적이고 맑았다. 이젠 천사가 됐지만, 그때는 정말 천사 같았다.”

김현식과 만남은 어땠을까? “현식이 형은 밴드를 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3집을 밴드 앨범으로 만들고 싶어 멤버를 찾고 있었다. 그때 현식이 형이 저와 태관이를 불러 “형이 생각해봤는데, 너희들 음악 할 거야. 형이랑 할래”라고 제안했다. 속으로는 너무 좋았지만, 겉으로는 안 그런 척하며 ‘형이 하자니까 생각해볼게요’라고 말했다. 자리에서 나오자마자 ‘오~예’하며 태관이와 하이파이브를 했다.”

‘우리 처음 만난 날 사랑할 줄 몰랐지, 그냥 그렇게 스쳐 지나가는 사람인 줄만 알았지. 김현식의 ‘우리 처음 만난 날’ 노랫말처럼, 그들은 그렇게 만났다.

가을, 추억

봄여름가을겨울 김종진이 13일 강남구 도곡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한 뒤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정혁준 기자
봄여름가을겨울 김종진이 13일 강남구 도곡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한 뒤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정혁준 기자
김종진은 국세청 홈택스에서 세금계산서를 입력할 때 문득 전태관이 생각나 한참을 울었다고 했다. “세금계산서 작성은 태관이가 살아 있을 때 직접 했다. 태관이도 음악만 하고 싶었을 거라는 생각에 울었다. 힘들고 궂은일을 도맡아 했구나 싶었다.”

다투지는 않았을까? “30년 넘게 함께하면서 서로 소리를 질렀던 건 두번이었다. 연습실에서 음악 방향을 놓고 싸웠다. 저녁 때 태관이가 전화해서 두번 모두 그렇게 풀었다. 드럼은 조금만 선을 넘어가도 소리가 엄청나게 커 전체 곡을 마구 흔들어 버린다. 태관은 선을 지키며 늘 멀리 볼 줄 알았다. 팀이 30년 넘게 굴러갈 수 있었던 데에는 태관의 배려심이 컸다.”

김종진은 김현식을 실루엣으로 표현했다. “저희는 노래를 부르는 현식이 형 뒤에서 연주했다. 무대에선 현식이 형 뒷모습을 자주 봤다. 조명을 받은 형의 뒷모습은 눈이 부신 빛 가운데 까만 실루엣으로 보였다. 눈부셨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 그 실루엣처럼, 현식이 형은 강렬한 보컬리스트였다.”

‘리프리젠트’ 공연 때 김종진은 전태관을 위해 봄여름가을겨울의 ‘영원에 대하여’를 선곡했다. “많은 사람이 우리에게 어떤 곡이 제일 맘에 드냐고 물어볼 때마다 저는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며 돌려 말한다. 근데 태관은 항상 ‘영원에 대하여’가 가장 좋다고 했다.”

김종진이 이 노래를 부를 때 얼굴은 눈물인 듯, 땀인 듯 젖어 있었다. 김종진은 “이건 눈물이 아니다”라고 몇 번씩 얘기했다. 하지만 그의 안경은 서려 있었다.

겨울, 죽음

연주하는 봄여름가을겨울 김종진. 봄여름가을겨울 제공
연주하는 봄여름가을겨울 김종진. 봄여름가을겨울 제공
2018년 12월27일 전태관은 56살에 신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해는 봄여름가을겨울 밴드 결성 30주년을 맞이한 해였다.

“태관이는 서서히 소멸해 갔다. 마지막 6개월 정도는 거의 사회생활이 어려울 정도였지만, 끝까지 희망을 놓치지 않았다. 그런데 마지막엔 태관이가 ‘종진아. 참, 덧없고, 덧없다’고 했다. 솔로몬 왕이 했던 그 말처럼 태관이는 그렇게….” 전태관은 세상을 떠나기 전 5일 동안 중환자실에서 생사를 오갔다. 김종진은 그의 병실을 지키다, 저녁 약속이 있어 잠깐 자리를 비웠다. “혹시나 해서 병원에 물어봤다. ‘오늘 밤은 아닙니다’라고 하더라. 근데 밥을 먹는데, 너무 마음이 불편해서 숨이 안 쉬어졌다. 잠깐 식당 밖에 나갔다. 바람이 몹시 불었다. 그때 태관이 걸어오더니, 인사를 하며 떠났다. 휴대전화 문자가 울려서 보니, 태관이가 세상을 떠났다는 문자가 왔다.”

김현식은 1990년 11월1일 32살에 간경화로 생을 마쳤다. “현식이 형이 돌아가셨던 그해 9월에 형 집에 갔다. 형 어머니가 ‘현식이 밥 좀 먹으라고 말 좀 해줘’라고 하셨다. 맨날 술만 마시고 식사를 거의 안 했다. 그래서 제가 ‘형, 밥 안 먹으면 술 안 줘’라고 했다. 형이 성질내니까 어머니가 어쩔 수 없이 냉장고에서 소주 반 병 꺼내 형에게 갖다주셨다. 그런데 몇달 안 돼 형이 세상을 떠났다. 혼절할 정도로 울었다.”

공연에서 가수 이적, 거미, 이무진도 무대에 올라 그들만의 목소리로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의 명곡을 선사했다. 이무진은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불렀다. ‘서툴게 살아왔던, 후회로 가득한 지난날, 그리 좋지는 않지만, 그리 나쁜 것만도 아니었어….’

그렇게 봄, 여름, 가을, 겨울은 갔고, 다시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찾아올 것이다.

21일 수원 경기아트센터에서 열린 홀로그램 콘서트 ‘리프리젠트’공연 준비 장면. 경기아트센터 제공
21일 수원 경기아트센터에서 열린 홀로그램 콘서트 ‘리프리젠트’공연 준비 장면. 경기아트센터 제공
P.S: 홀로그램의 김현식 목소리는 현역 가수가 대역으로 맡았다. 누구인지 힌트를 드리면, 김현식과 닮아 사촌 동생으로 오해를 받았던 가수다. 이번 공연은 <문화방송>(MBC)에서 9월 또는 10월에 방송될 예정이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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