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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일상복귀의 염원,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에 담다

등록 2021-08-12 18:44수정 2021-08-13 02:32

국립오페라단 ‘나부코’ 15일까지
원작은 바빌론 탈출 얘기지만
이번엔 코로나 극복 의지 그려
2005년 국립오페라단의 <나부코> 공연 당시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장면. 국립오페라단 제공
2005년 국립오페라단의 <나부코> 공연 당시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장면. 국립오페라단 제공

‘민족과 해방 대신, 개인의 깨침과 코로나 극복을 보여준 <나부코>.’

11일 저녁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열린 마지막 리허설에서 본 베르디 오페라 <나부코>는 이런 메시지로 다가왔다. 국립오페라단은 <나부코>를 12~15일 이곳에서 공연한다. 국립오페라단이 이 작품을 전막으로 무대에 올리는 건 2005년 이후 16년 만이다.

원작은 기원전 6세기 히브리인들이 바빌론에 노예로 끌려간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이 작품이 나온 1842년 당시 북부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베르디는 이 작품을 통해 민족 해방과 독립 의지를 보여주려 했다.

같은 이탈리아 출신인 스테파노 포다는 이번 공연 연출을 맡으면서 베르디와 다른 결을 선보였다. 시대와 역사, 민족 해방을 지워버렸다. 그 자리에 개인의 깨침과 코로나 극복 의지를 그려 넣었다.

제목 ‘나부코’는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신바빌로니아의 왕 네부카드네자르 2세를 이탈리아어로 부른 이름이다. 그는 오페라에서 우상을 숭배하는 불패의 권력자로 나온다.

&lt;나부코&gt; 연출을 맡은 스테파노 포다가 공연을 앞두고 연습을 하는 단원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나부코> 연출을 맡은 스테파노 포다가 공연을 앞두고 연습을 하는 단원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포다가 연출한 <나부코>의 클라이맥스는 4막이다. 나부코 머리 위에 있던 거대한 지구본이 깨지면서 세상이 파괴되고 그 자리에 뫼비우스 띠가 나온다. 안과 밖이 이어지는 뫼비우스 띠는 안과 밖이 다르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릴 때 흔히 활용되는 상징이다. 계속 이어지며 순환하며 소통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뫼비우스 띠는 포다의 <나부코>를 관통하는 상징이다. 우상처럼 믿고 있는 개인의 고정관념을 깨라는 뜻과, 비정상의 코로나 시대가 정상으로 이어질 거라는 메시지를 보여준다.

포다는 “우상에 사로잡힌 나부코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을 놓친다. 그는 끝없이 세상을 정복하고 소유하려고만 했다. 다른 사람에게 억압당한 게 아니라 자신을 스스로 억압했다”고 말했다. 그런 우상을 깨야 비로소 인생에서 ‘무엇이 중한데’를 깨닫고 스스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얘기다. 포다는 이렇게 묻는다. “삶에서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일까? 나부코처럼 고통을 겪으며 최고의 경지에 도달하는 게 진정한 행복일까?”

<나부코>의 하이라이트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장면이다. 노예로 끌려간 히브리인들이 바빌론 강가에서 부르는 합창곡이다. 원작은 고향을 그리워하는 정서를 담았지만, 이번 오페라에선 코로나를 극복하고 일상으로 복귀하려는 희망을 담았다. 이 곡을 합창할 때 흰옷을 입은 많은 어린이가 등장한다. 이는 희망과 미래를 상징한다.

국립오페라단 &lt;나부코&gt; 유튜브 홍보 영상 갈무리
국립오페라단 <나부코> 유튜브 홍보 영상 갈무리

이 장면에서 한국 고유 정서인 ‘한’이라는 글자가 무대 뒷배경에 큼지막하게 나온다. 포다는 “고통을 겪으면서 개인은 그만큼 성숙해지고 구성원들은 서로 희망을 나누며 고통을 치유하는 게 ‘한’인 것 같다”며 “이런 정서를 작품에 담았다”고 했다. 이는 힘들고 어려운 코로나 시대에 서로 배려하며 버티는 우리나라의 공동체 정신으로 읽힌다.

무대는 하얀색과 붉은색의 강렬한 색채를 대조해 보여준다. 원작은 지배와 피지배, 선과 악으로 구분했지만, 이번엔 그런 이분법적 구분을 해체했다. 하얀색은 일상과 순수, 붉은색은 분노·질투·욕망을 상징한다. 무대 배경뿐만 아니라 배우들이 입는 옷도 배우의 정서에 따라 색깔이 바뀐다.

14일 낮 3시 공연은 오페라 전용 온라인동영상서비스 ‘크노마이오페라’(knomyopera.org)에서 온라인 생중계(2만원)로 볼 수 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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