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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조선구마사’ 사태, 역사적 진실과 상상력의 경계는?

등록 2021-08-18 04:59수정 2021-08-18 09:29

역사왜곡 논란 방영 2회 만에 폐지
PD연합회 등 5개월 만에 토론회 열어

“일부만 실존 인물 설정 혼란 야기
‘판타지’임을 확실히 인지시켰어야”

“중국풍 소품 논란 ‘동북공정 연계’
시청자의 정서 읽기 중요성 일깨워”

“우리역사 제대로 알릴 장치 마련
역사보다 재미 우선 관행 성찰을”
<조선구마사> 장면 갈무리.
<조선구마사> 장면 갈무리.

드라마에서 역사적 진실과 상상력의 경계는 어디까지여야 할까?

지난 3월 <조선구마사>가 방영 2회 만에 폐지된 사건은 창작자들한테 수많은 과제를 안겼다.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가 역사를 왜곡한다고 비판하며 광고 철회까지 요청했고, 이에 부담을 느낀 <에스비에스>(SBS)가 편성을 취소하면서, 결국 <조선구마사>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당시 “제작진의 창작 욕구를 억압하는 행위”라는 비판과 “제작진이 역사의 중요성을 모른다”는 비판이 공존하며, 한국 드라마 사상 초유의 논쟁이 벌어졌다.

지난 17일, 그 논쟁의 결과물을 들여다보는 자리가 폐지 5개월 만에 마련됐다. 한국피디연합회와 한국방송작가협회 주최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이 함께 ‘<조선구마사>가 남긴 쟁점과 함의’를 들여다봤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토론회에 앞서 16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조선구마사>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케이(K)-콘텐츠가 전세계로 뻗어 나가는 시점에서 우리 드라마의 갈 방향을 돌아보게 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토론회를 계기 삼아 역사극의 나아갈 방향을 짚어봤다.

역사극을 둘러싼 첨예한 대립은 늘 드라마의 사실성을 둘러싸고 벌어진다. <조선구마사>에선 태종이 환각에 휩싸여 무고한 백성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충녕대군이 구마사제 일행에게 월병과 오리알 등 중국 음식을 대접하는 장면이 문제로 지적됐다. 일부 시청자들은 “아무리 판타지 사극이라도 태종을 백성을 학살하는 인물로 그리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국외에서 한국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이 자칫 우리 역사를 오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타냈다.

하지만 상상력이 콘텐츠를 키우고, 드라마가 다큐는 아니라는 점에서 극적 허용이 더 자유롭게 용인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역사극도 1960~70년대에는 <장희빈> 등 역사 속 인물 중심이었던 데 반해, 2010년 이후에는 타임슬립 등 상상력이 우세한 위치에 섰다. 정덕현 평론가는 “미디어 환경이 변한 만큼 다양한 이야기를 끄집어내려면 역사에 허구를 심는 행위가 자유롭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중요한 것은 판타지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인지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조선구마사>는 태종과 양녕, 충녕만 실존 인물로 설정하면서 시청자들의 혼란을 키웠다. 주창윤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는 토론회에서 “<조선구마사>는 역사 왜곡이 성립되지 않는데도 시청자들이 허구로 보지 않은 것은 실존 인물 때문이다. 이 세 사람도 다른 인물처럼 이름을 바꾸었다면 이렇게까지 사실성 여부에 의문을 제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짚었다.

역사극이 왜곡 논란을 넘어 시청자 정서를 읽어내는 게 중요하다는 걸 보여주기도 했다. <조선구마사>에 등장한 중국풍 음식과 소품은 동북공정과 연계되면서 확대 재생산됐다. 의주가 조선과 중국의 국경도시여서 지리적 위치상 개연성이 없는 게 아니지만 비판이 일었다. 정현민 작가는 “<조선구마사> 사태는 민족감정을 건드린 것이다. 동북공정에 부역하는 매국 드라마라는 프레임이 온라인에서 빠르게 고착화된 순간 백약이 무효했다”고 말했다. 주창윤 교수는 “대중 정서가 역사 장르의 소비나 해석에 얼마만큼 중요한가를 보여줬다”고 짚었다.

17일 한국피디연합회와 한국방송작가협회 주최로 열린 ‘역사적 진실과 콘텐츠의 상상력’ 토론회 모습. 유튜브 갈무리
17일 한국피디연합회와 한국방송작가협회 주최로 열린 ‘역사적 진실과 콘텐츠의 상상력’ 토론회 모습. 유튜브 갈무리

드라마가 외부 압력으로 방영 도중 폐지된 경우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파천무>(1980)는 5공 정권에 의해 조기에 종영했고, <땅>(1991)도 정치권 압력에 의해 끝까지 내달리지 못했다. 이제는 그 ‘권력’이 시청자로 옮겨갔다. 요즘 시청자는 비판에 그치지 않는다. <조선구마사> 때는 청와대 게시판에 프로그램 폐지를 요구하는 청원 글을 올리고, 광고 제품 불매운동까지 벌였다. <에스비에스>는 논란이 커지자 리스크를 최소화하려고 발 빠르게 편성 취소를 결정했다. 과거에는 편집과 대본 수정 등으로 어떻게든 방송을 이어가며 시청자들을 이해시킬 시간을 벌었지만, 결국 ‘손절’하며, 다양한 담론이 경합할 수 있는 시간도 갖지 못했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조선구마사> 사태가 역사극 침체기를 가져올지 모른다는 불안함도 존재한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 사태가 건강하게 발전하려면 대안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정덕현 평론가는 “역사극에 허구를 허용하되 실제 사건을 되짚는 프로그램을 선보이는 등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려주는 보조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시청자의 우려점을 해소해주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구마사> 사태가 제작진을 성찰하게 했다는 의견도 나온다. 정현민 작가는 “사극 환경이 안 좋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역사보다는 재미를 우선하는 관행이 있었다. 고증에 대한 시청자들의 요구는 높아졌지만 이런 상황에서 부차적 문제로 밀리기 일쑤였다”며 “<조선구마사> 사태로 경각심이 높아진 만큼 자성하고 성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구마사> 사태의 피해는 프로그램 관계자와 시청자 모두에게 돌아갔다. 드라마가 2회 만에 폐지되면서 창작자는 이견을 조율해갈 기회를 얻지 못했고, 본방송을 보지 못한 시청자들은 판단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조선구마사>가 폐지됐으니 그걸로 끝난 걸까?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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