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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불화·민화·단청…수십년 벼려 나온 미술사 노작

등록 2021-08-24 18:15수정 2021-08-25 02:04

삼국~조선 불교회화 통사 접근해
756쪽 총정리한 ‘한국 불교 회화사’
한국 호랑이 도상 ‘민화 호랑이’ 등
10년, 40년, 20년 공들인 책 출간
윤열수씨의 역작 <민화 호랑이>에 실린 조선 시대의 날개 달린 호랑이 상. 병사들이 행진할 때 군기로 들었던 호랑이 깃발의 도상이다.
윤열수씨의 역작 <민화 호랑이>에 실린 조선 시대의 날개 달린 호랑이 상. 병사들이 행진할 때 군기로 들었던 호랑이 깃발의 도상이다.

이 땅에서 고대부터 그려온 회화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옛 그림의 종류는 무엇일까?

산수화나 초상화 정도를 꼽는 이들이 적지 않겠다. 하지만 가장 풍성하게 전하는 그림은 불화들이다. 불교 경전에 나오는 부처와 여러 보살과 수호신, 중생과 악귀 등을 다채로운 채색과 구도로 담은 그림으로, 4세기 고구려 장천 1호 무덤 예불도부터 20세기 초반의 근대기 예불도·신중도에 이르기까지 무려 5천점 넘는 불화들이 전해진다. 수백년에서 길게는 1천년까지 건재해온 고찰에서 승려와 불자들 덕분에 보존된 유산들이다.

한국 불교미술사학계 원로학자인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가 팔순을 맞아 10여년간의 준비작업 끝에 낸 <한국 불교 회화사>(다할미디어)는 1500여년에 달하는 우리 불화사를 756쪽 분량으로 총정리한 초유의 성과다. 불화의 도상과 양식 변천을 총합한 불교 회화사 저술은 학계의 지난한 과제였다. 복잡하고 심오한 종교 도상인데다 불교사상 측면에서도 깊은 이해가 필요한 까닭에 통사적 접근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어려움을 딛고 삼국 시대부터 통일신라, 고려, 조선 시대의 역대 주요 불화 작품들을 망라하면서 화론과 더불어 양식의 변천과 화풍의 흐름을 갈무리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다양한 방식으로 진리를 체득할 수 있다고 보는 대승불교의 맥락에서 특정 종파에 쏠리지 않고 여러 종파들이 어우러진 ‘다불도’(多佛圖)의 양상을 보여준다는 게 한국 불화 역사의 특징이라고 통찰한다. 문 교수는 임진왜란 뒤 수많은 사원이 재건 중창된 효종·숙종 시대를 높이 평가한다. 불교미술뿐 아니라 조선 미술사의 최절정기였으며 기존 학계에서 문예 르네상스기로 평가해온 영·정조 시기는 정체기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차별적 견해를 내세워 눈길을 끈다.

불화 말고도 민화, 단청 등 미술사 여러 분야에 수십년 천착해온 연구자, 작가의 땀방울 서린 저작들이 잇따라 나왔다. 민화 연구 권위자인 윤열수 가회민화박물관장이 40여년 수집해온 한국 호랑이 도상들을 총정리해 500쪽 넘는 분량으로 펴낸 도록 <민화 호랑이>는 그 첫 줄에서 주목받을 만하다. 민화의 가치를 널리 알린 스승 고 조자용(1926~2000) 선생이 처음 본격적으로 까치호랑이를 명명하면서 시작한 호랑이 사료의 연구 기틀을 이어받아, 1970년대 이래 조사하고 촬영했던 전통 호랑이 도상 관련 사진과 민화, 공예품 수천점을 갈무리했다. 인왕산의 입 벌린 호랑이 바위, 담배 피우는 호랑이, 해남 대흥사 전각에 대롱대롱 매달린 호랑이, 호랑이 가죽을 지극정성으로 묘사한 호피도, 민화 호랑이 그림의 원천인 조선왕릉 석호상 등 온갖 호랑이, 표범상들이 모두 들어갔다.

사찰사진가 노재학씨가 펴낸 전통사찰 단청 문양 집대성 시리즈 첫 권인 <한국의 단청 1―화엄의 꽃>(미진사)도 눈여겨볼 만한 대작이다. 작가는 지난 20년간 전통 사찰 100여곳과 법당 120여곳 속 단청장엄 사진을 촬영하고 분석해 집대성했는데, 첫 권에서는 30여개 국내 사찰의 천장 부분에 무한의 개념으로 구현된 단청 문양들을 샅샅이 소개한다. 권역별 사찰 건축 구조와 단청 문양, 조형 원리를 심도 있게 소개하는 그의 기획은 모두 여섯권의 총서로 이어진다.

한국과 중국 전통 회화에서 산수화와 사군자, 초상화의 명성에 가려 잘 드러나지 않았던 꽃과 새 등 동물 그림에 초점을 맞춘 <꽃과 동물로 본 세상>(사회평론아카데미)도 나왔다. 한정희 홍익대 명예교수 등 15명의 연구자가 화조·영모·화훼화에 초점을 맞춰 관련 그림의 역사와 도상을 집중 분석했다. 조선 병합 직전인 1908년 창덕궁 인정전 옥좌 뒤에 걸린 근대 ‘봉황도’는 일제가 조선 왕실을 격하하려는 의도를 숨긴 정치적 그림이라는 등의 흥미로운 분석과 학설이 적지 않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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