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너무 많이 사랑하고, 너무 강하게 증오하며, 너무 많이 알고 있다고 믿기에 무리한 일을 시도한다.” 청소년에 대한 어느 그리스 철학자의 이 정의는, 너무 뜨거워서 위태로운 10대를 정확히 꿰뚫은 말처럼 보인다. 몸은 성숙했지만 맘은 미성숙한 상태. 분출하는 욕망과 현실의 제약이 충돌하는 시기. 10대가 아름답지만 불운한 이유다. 9월1일 개봉하는 이우정 감독의 장편 데뷔작 <최선의 삶>은, 나아갈 수도, 그렇다고 머무를 수도 없는 10대의 상처와 혼란스러운 내면을 응시한 영화다.
열여덟 강이(방민아)는 꿈이 없다. 공부엔 흥미를 잃었고 넉넉지 못한 집안 형편은 스트레스일 뿐이다. 그저 같은 반 친구 아람(심달기)과 소영(한성민)과 어울려 다니는 것만이 삶의 유일한 즐거움. 어느 날 강이는 소영의 제안에 함께 가출한다. 돈이 떨어져 길거리에 앉아 있던 세 친구 앞을 스티커사진 가게 사장이 지나간다. 그는 이들에게 돈을 주고 술도 사준다. 이윽고 그의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 강이와 친구들. 쉽게 잠들지 못하던 강이는 사장이 잠든 소영의 발을 만지는 모습을 본 뒤 친구들을 깨워 몰래 도망친다. 이들은 이튿날 짧은 가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좀처럼 마음을 잡지 못한 강이는 친구들과 두번째 가출을 한다. 이들은 소영이 들고 온 부모님 신용카드로 반지하 방을 얻는다. 아람이 집을 비운 사이, 강이와 소영은 무더위에 옷을 벗고 자다가 서로 키스를 하게 된다. 그날 이후 소영은 강이를 멀리하고, 그렇게 두번째 가출도 끝이 난다. 학교로 돌아왔지만 소영은 강이와 아람을 모질게 대한다. 결국 소영과 치고받고 싸우게 된 강이는 왕따를 겪은 뒤 파국을 향해 걸어간다.
카메라는 제목처럼 ‘최선의 삶’을 살고 싶어 했던 소녀들이 최악으로 치닫는 과정을 가만히 따라간다. 학교도 부모도 도움이 되지 못하는 사이, 강이의 삶은 망가져간다. 스스로를 지키려 강이를 내치던 소영도 불행을 피하지 못하고,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아람은 처음부터 최선의 삶과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 한 그들이 당도한 곳은 더 나쁜 곳이었다. 강이는 말한다. “떠나거나 버려지거나 망가뜨리거나 망가지거나. 더 나아지기 위해서 우리는 기꺼이 더 나빠졌다. 이게 우리의 최선이었다.”
임솔아 작가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최선의 삶>은 청소년기에 처음 겪게 되는 관계의 기쁨과 슬픔에 주목한다. 이우정 감독은 30일 오전 <한겨레>와 한 화상 인터뷰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 상처를 주고받는 일의 시작이 청소년기라고 생각했다”며 “어른이 돼서도 반복되는 이러한 감정들을 청소년기에는 아무런 무기 없이 맞닥뜨려야 한다는 점에서 그 시기에 느끼는 것이 가장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비슷하게 묻어두었던 감정들을 가지고 있는 분들에게 그 감정을 정확하게 마주하는 이 영화가 위로가 되면 좋겠다”고 했다.
영화 <최선의 삶>의 이우정 감독. 엣나인필름 제공
영화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케이티에이치(KTH)상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새로운선택상을 받았다. 또 걸그룹 걸스데이 소속 가수로 꾸준히 연기 활동을 병행해온 방민아는 강이 역으로 지난 22일 폐막한 뉴욕아시안영화제에서 국제라이징스타상을 받았다.
오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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