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15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아이비케이(IBK)챔버홀에서 열린 ‘대학 가곡 축제’에서 참가자들이 한국 가곡으로 만든 음악극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은 <연꽃의 위로>의 한 장면. 예술의전당 제공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서정주의 시에 곡을 붙인 가곡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의 한 대목이다. 안 그래도 구슬픈 곡이 수많은 이들의 눈물샘을 터뜨렸다. 2014년 그날, 세월호 참사 이후 상실의 고통에 절규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잘 지냈니? 우리 딸. 엄마는 잘 지냈어. 사실, 엄마… 잘 못 지냈어. 가지 마. 얼굴 조금만 더 보여줘, 응? 엄마 옆에 조금 더 같이 있어줘.”
지난 15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아이비케이(IBK)챔버홀에서 열린 ‘대학 가곡 축제’에서 대학생 이현서가 선보인 음악극 <연꽃의 위로: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해요>의 한 장면이다. 세월호 유가족 어머니들의 상처를 보듬는 치유의 내용을 한국 가곡 ‘엄마야 누나야’ ‘초혼’ 등에 접목해 표현했다. 이현서는 “시로 된 우리 가곡의 노랫말이 감정을 더 깊게 표현해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양한 연령대의 대학생들이 참여했다. 70대도 포함된 SCU 성악 앙상블팀. 예술의전당 제공
대학 가곡 축제는 올해 처음 열렸다. 성악을 전공하는 전국 대학생들이 한국 가곡을 소재로 만든 다양한 음악극을 선보였다. 28개 팀이 지난 14~15일 네차례로 나눠 공연했다. 이 가운데 좋은 평가를 받은 여섯 팀이 9월16일 같은 장소에서 다시 무대에 오른다. 예술의전당 쪽은 “우리 역사와 함께해온 한국 가곡을 널리 알리고 활성화하려는 여러 시도 중 하나”라며 “특히 젊은 세대에게 한국 가곡을 접할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예술의전당에서 한국 가곡으로 음악극을 선보인 것은 처음이다.
지난해 탄생 100돌을 맞은 한국 가곡을 조명하는 다양한 시도가 이어진 한편, 친일 작곡가의 곡을 어떻게 봐야 할지에 대한 고민도 다시 불붙었다. 하지만 한국 가곡을 잘 모르는 세대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려는 시도는 흔치 않았다는 점에서, 한국 가곡 탄생 101돌에 열린 대학 가곡 축제는 작지만 소중한 출발이다.
참가자 중에는 이번 무대를 준비하면서 한국 가곡을 처음 부른 이도 있다. 한국 가곡 음악극을 처음 접한 이들도 많다. 코미디 로맨스 음악극 <꽃신 한짝>을 선보인 볼우물(이주형·박성은·이지석) 팀의 박성은은 “오페라나 연가곡 공연 외에 이미 발표돼 단독으로 불리는 한국 가곡으로 음악극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새롭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고 곡을 정했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노랫말인 시가 쓰인 배경을 들여다보게 됐다. 박성은은 “많은 한국 가곡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전에 모르고 있던 아름다운 가사를 읽어보고 노래를 들어보는 소중한 시간이 됐다”고 말했다.
취업준비생 이야기,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한국 가곡의 역사적 의미와 동시대성을 담은 다양한 극을 선보였다. 예술의전당 제공
취업준비생 이야기를 ‘달밤’ ‘가고파’(<달밤>)에 담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나뭇잎 배’ ‘내 영혼 바람 되어’(<끝나지 않은 이야기>)로 풀어내고, 이별의 아픔은 ‘사랑의 꿈’ ‘기도’(<달빛 그리고 사랑>)로 이야기하는 등 이번 무대를 통해 한국 가곡의 역사적 의미와 동시대성이 이어진다.
한국 가곡을 알리려는 노력에 ‘어른 세대’도 힘을 보탰다. 이번 대회에 서울사이버대 성악과에 다니는 다양한 연령대의 학생들이 참여한 점도 남다르다. 예술의전당 쪽은 “성악을 공부하는 70대 어르신도 참여했다”고 귀띔했다. 에스시유(SCU) 성악 앙상블(박종신·오세진·이병학·이종건) 팀은 40·50·70대가 한 팀을 이뤘다. <엄마의 꿈>을 선보인 들려드림(김동희·이은서·이준기) 팀은 가족이다. 엄마 김동희는 “한국 가곡을 너무 좋아해서 못다 한 꿈을 이루고 싶어 사이버대 성악과에 입학했다. 딸과 아들한테 대회에 같이 나가자고 하니 처음엔 둘 다 거부했었다”며 웃은 뒤 “(딸과 아들이) 함께 공연하고는 우리 가곡에 관심을 갖더라”고 말했다.
엄마의 권유로 각자 성악을 전공하는 가족이 출연하기도 했다. 예술의전당 제공
무대를 마친 이들은 “한국 가곡은 애절하고 감정 자체가 남다르다”(박종신)는 등 다양한 느낌을 쏟아냈다. 모두 이번 무대에 서면서 우리 가곡만의 힘과 아름다움을 깨닫게 됐다고 한다. 이현서는 “멀리 있는 외국 가곡들을 공부해왔지만, 정작 가까이 있는 아름다운 한국 가곡들은 놓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이 느낀 점을 더 널리 퍼뜨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성악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한국 가곡을 접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 가곡 클래스’를 개설해 우리 가곡을 공부하는 곳도 있지만, 대학 전공 학과에서도 대부분 4학년이나 돼야 한국 가곡을 배운다는 것이다. 이들은 초중고 학교 음악 시간에도 한국 가곡을 접할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하고 바랐다. 박성은은 “초중고 음악 시간에 한국 가곡을 한 곡이라도 익힐 수 있다면 거기서부터 큰 발전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가곡을 주제로 하는 무대를 많이 만들고 우리 가곡의 아름다움과 감수성을 알리는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이 한국 가곡 대중화를 위한 첫걸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박종신도 “옛 가곡들까지 더 다양한 곡을 들려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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