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친구들보다 황정민 형을 직접적으로 때리는 장면이 많지 않아서 다행이었어요. 저는 주로 지켜보는 입장이었죠. 다른 인질범 역할을 한 배우들이 ‘왜 나만 계속 황정민 형을 때리냐’며 저보고 ‘날로 먹는다’고 했죠.(웃음) 사실 현장에선 정민이 형이 계속 ‘괜찮다. 편하게 연기하라’고 했는데도 배우들은 아무래도 부담이 컸죠.”
지난달 18일 개봉한 영화 <인질>에서 배우 황정민을 납치한 인질범 두목 최기완 역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김재범은, 7일 저녁 진행한 화상 인터뷰에서 대선배를 상대한 신인들의 말 못할(?) 연기 부담감으로 말문을 열었다. 새파란 신인배우가 누적 관객 수 1억명에 이르는 대배우의 따귀를 때리고 발길질을 스스럼없이 하기란 쉽지 않았을 터. 그러나 가상인물이 아닌 실제 배우 황정민이 납치됐다는 설정에 관객들이 몰입하려면 알려지지 않은 얼굴을 캐스팅하는 것이 필요했던 까닭에 이 영화에서 신인배우와 황정민의 대결은 숙명에 가까웠다.
영화에서 인질범 조직의 수장 최기완은 황정민 등 인질들을 납치한 뒤 몸값을 받아내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이코패스. 김재범은 황정민에게 주눅들지 않는 대범한 연기로 최근 한국 영화에 출연한 빌런(악당)들 중 가장 눈에 띄는, 서늘하고 소름 돋는 악역을 보여줬다. “오디션 경쟁률이 1000 대 1이었다는 건 나중에 들었어요. 사실 오디션 1차 합격했을 때도 ‘1차 합격이 어디냐’며 자족했어요. 최종 합격할 거란 생각은 전혀 못 했거든요. 예전 다른 오디션 때 ‘현장에서 보자’는 말까지 들었는데 결국 떨어진 경험이 있어 기대 안 하려고 했거든요.”
영화는 처음이지만, 그는 2004년 뮤지컬 <지하철 1호선>으로 데뷔한 이래 수십편의 연극·뮤지컬 무대에 선 배우다. 황정민이 연출한 뮤지컬 출연을 계기로 예전부터 그와 가깝게 지내왔다는 김재범은 “정민 형이 편하게 연기하도록 배려해준 점과 촬영 전 3~4주간 리허설을 한 것이 자연스러운 연기를 할 수 있었던 배경이었다”고 했다.
초반에 황정민을 괴롭히는 장면이 의외로 적었다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후반부 황정민과 처절한 사투를 벌이는 장면을 피할 순 없었다. “제가 1년에 한두번 등에 담이 오는데, 그 장면 촬영 전날 느낌이 오는 거예요. 다음날 되니까 진짜 몸을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로 담이 걸렸어요. 제작진에게 말하진 않고 매니저와 병원에 가서 근육통 주사를 맞고 연기했죠. 두들겨맞고 차에 치이는 장면에서 고통스러워한 게 사실 연기가 아니었어요.(웃음) 마치 제 몸이 ‘내일 맞는 연기 하지? 고통을 제대로 연기하게 해줄게’ 하고 담을 만들어낸 거 같은…. 준비된 배우라고 할 수 있죠. 제작진 여러분의 많은 연락 바랍니다.(웃음)”
인터뷰 내내 영화 속 냉혈한과 상반된 유쾌하고 밝은 모습을 보여준 그에게 좋아하는 감독과 배우를 묻자 농담을 곁들여 진심을 내비쳤다. “좋아하는 감독은 필감성 감독님이죠. 사실 처음 감독님 성함 듣고 예명이겠지 했어요.(웃음) 감성을 영어로 하면 ‘필’(feel)이니 영문 이름을 ‘필필’로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죠.(웃음) 좋아하는 배우는 당연히 황정민 형이죠.(웃음) 대배우지만 사석에서는 동네 형 같고 푸근한 형이에요.”
오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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