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문화일반

TV 밖에서도, 더 많은 오은영이 필요하다

등록 2021-09-10 18:17수정 2021-09-10 18:37

[황진미의 TV 새로고침] MBC ‘등교 전 망설임’·채널A ‘금쪽 상담소’
<금쪽같은 내 새끼>. 채널에이 제공
<금쪽같은 내 새끼>. 채널에이 제공

“XX계의 오은영 선생님”이란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그건 굉장한 칭찬이다. 그 분야에서 ‘공감의 아이콘’이란 뜻이니까. 소아·청소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가 최근 브랜드대상에서 전문가 엔터테이너로 선정되었다. 오은영은 15년 전부터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SBS), <60분 부모>(EBS), <금쪽같은 내 새끼>(채널A) 등을 통해 육아 문제를 상담해왔다. 또한 신문 칼럼을 통해 성인을 대상으로 심리 상담을 해왔으며, 저서도 여럿이다. 이런 경력을 바탕으로 오은영은 대중과의 신뢰를 두텁게 쌓았으며, 단지 방송에서 이름을 팔아 돈벌이에 활용하기 바쁜 일명 ‘쇼닥터’들과 결을 달리한다.

‘요즘 대세’ 오은영의 프로그램이 두 개 더 출시된다. 하나는 오디션 참가자들의 멘탈 관리 프로그램이다. <문화방송> 오디션 프로그램 <방과 후 설렘>의 번외편인 <등교 전 망설임>에서 오은영은 참가자들의 심리 상담을 맡았다. 극한의 경쟁과 비인격적인 대상화 과정을 거치면서 ‘멘탈이 갈려 나갈’ 참가자들에게 자존감을 지키고 자신을 돌볼 수 있도록 상담을 제공할 예정이다. 일단 환영할 일이다. <아이돌 학교> 등 극악한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한 소녀들이 우울, 섭식장애, 불면, 생리불순 등을 호소했음에도 이들의 고통을 그저 ‘루저의 호소‘쯤으로 여기지 않았던가. 대형기획사가 소속 아이돌에게 멘탈 관리 프로그램을 제공하듯이, 오디션 참가자들에게도 마땅히 제공되었어야 할 ’선수 보호 시스템‘이 이제야 마련된 것이다. 일각에선 참가자들의 멘탈 관리까지 콘텐츠로 만들어 팔아먹는 ’방송국놈들‘의 영악함에 혀를 내두르지만, 참가자들의 멘탈 관리가 매우 중요하고 이것이 일종의 콘텐츠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것만으로도 인식의 큰 발전이다.

또 다른 출시 프로그램은 <채널에이>의 <금쪽 상담소>이다. <금쪽같은 내새끼>가 육아 문제에 국한해 소아청소년들의 심리에 집중한 반면, <금쪽 상담소>는 성인들의 심리를 폭넓게 다룰 예정이다. <금쪽같은 내새끼>에서 성인 대상의 <금쪽 상담소>가 파생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금쪽같은 내새끼>에서 아이들의 문제를 진단하다가 필연적으로 부모의 마음속 상처를 들여다본 경우가 종종 있었다. 오은영은 부모에게 어린 시절의 상처를 마주하게 만들고, 부모의 어린 자아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하였는데, 이 장면은 마치 무당의 해원 굿처럼 쩌릿한 감동을 안긴다. 반려견의 문제를 교정하기 위해 견주의 나쁜 습관을 고쳐야 하듯이, 아이들의 문제는 어른의 문제와 맞물려 있다. 오은영은 문제 행동의 원인을 날카롭게 짚어내면서도, 누구를 탓하는 게 아니라 누구에게나 문제가 있을 수 있으며 문제를 알았기에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을 건넨다. 오히려 개선을 위해 첫발을 내밀어준 부모의 용기를 한껏 격려하며, 실천할 수 있는 솔루션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이런 성찰과 위로가 넘치는 프로그램이기에, 아이를 키우는 3040세대뿐 아니라 육아와 관련 없는 1020세대들도 프로그램을 즐겨본다. 치유받지 못한 내면의 어린 자아를 돌아보기도 하고, 부모 자식 관계를 비롯해 친밀한 관계에서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를 익히는 시간으로 삼는다.

<금쪽같은 내새끼>를 보며 느끼는 가장 큰 깨달음은 육아가 어렵다는 사실이다. 맞벌이 부부, 퇴근이 늦은 직장인, 일가친척의 도움을 받을 수 없거나 지역사회에서 단절된 부모는 아이를 돌볼 절대적 시간이 부족하다. 코로나로 어린이집과 학교를 갈 수 없어 아이들만 집에 두고 출근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육아는 더욱 난제가 되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육아가 단순한 돌봄 노동의 문제만이 아니란 사실이다. 요컨대 그저 돌봄 인력을 배치하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으며, 주양육자의 총체적이고 디테일한 관리가 필요하다.

육아 문제를 겪는 부모들의 일상을 살펴보면 수많은 문제들이 응축되어 있다. 하지만 육아가 그토록 복잡한 문제임을 인식하는 사람들이 드물다. 그동안 육아는 엄마들만 속병을 앓았던 영역이요, 문제를 제기하면 유난스럽다고 비난받던 분야이다. 얼마 전 오은영의 고액 상담료 논란이 잠시 일었다. 상담을 받았던 부모들의 적극적인 옹호로 금방 잦아들었지만, 그런 논란이 인 것도 육아가 전문적인 상담을 요하는 영역임을 인지하지 못한 탓이다. 최고 전문가의 법률상담이나 세무상담 90분에 81만원을 받았다고 비난을 받을 리 없지 않은가.

누군가의 서비스가 가치 있음을 알았다면, 그에게 서비스를 염가나 무료로 제공하도록 압력을 넣을 것이 아니라, 그런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사회적 재원을 마련하여 서비스를 보급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사회가 바람직하다. 한마디로 지역사회에 더 많은 오은영이 필요하다. 오은영은 홀로 깨달은 자가 아니라, 제도 교육을 받은 전문 인력이다. 그런 전문 인력들을 어떻게 네트워킹하여 지역사회에서 활용할 것인지를 숙고해야 한다. 또한 프로그램에 나오기 전, 엄마들은 어린이집 원장에게 육아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고, 다른 상담사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이들도 ‘지역사회 오은영’의 파트너로 활용할 수 있는 인력이다. 이런 인력들을 조직하고 서비스 질을 관리하여 지역사회에서 종합적인 육아 솔루션을 제시하는 복지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출생률을 높인다며 아이를 낳으면 얼마를 주겠다는 천박한 공약이 난무한다. 아이 키우기 좋은 사회를 만들려면 엄마 혼자 육아의 고민을 감당하는 사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어린이집 확충 등 보육인력의 배치뿐 아니라, 각 가정의 육아를 지도하고 상담하는 전문 인력을 지역사회에 배치하고 지도하는 데 국가가 돈을 써야 한다. 요컨대 건강가정지원센터나 육아종합지원센터가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를 누구나 잘 아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자, 이제 다 울었으면 할 일을 하자.”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