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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궁전·공항 아니라고?…메타버스 관문 ‘버추얼 프로덕션’

등록 2021-09-13 04:59수정 2021-09-13 08:39

온통 다 LED 화면 ‘버추얼 스튜디오’
영상 후반작업 기간·예산 크게 줄이고
온라인 테마파크 등 메타버스 사업 확장 기대
경기도 하남시에 있는 브이에이코퍼레이션의 버추얼 3스튜디오 모습. 대형 엘이디(LED)로 이뤄진 벽면에서 화려한 프랑스 궁전 내부 전경이 나오고 있다. 마치 실제 공간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오승훈 기자
경기도 하남시에 있는 브이에이코퍼레이션의 버추얼 3스튜디오 모습. 대형 엘이디(LED)로 이뤄진 벽면에서 화려한 프랑스 궁전 내부 전경이 나오고 있다. 마치 실제 공간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오승훈 기자

#1. 지난달 30일 오후, 경기도 하남시에 위치한 브이에이코퍼레이션의 버추얼(가상) 3스튜디오. 육중한 문을 열고 들어서자 눈앞에 유럽의 궁전 내부가 펼쳐졌다. 화려한 샹들리에 조명이 조각상을 비췄고 중앙엔 고풍스러운 계단이 있었다. 아치형 구조물이 지붕을 떠받들고 옆과 뒤쪽도 궁전 모습 그대로였다. 실제처럼 보였지만 모두 대형 엘이디(LED)에서 나온 화면들이었다. 가로 53.5m, 세로 12m 크기로 곡선을 이룬 벽과 천장까지 모두 엘이디로 이뤄진 3스튜디오는 아시아 최대 규모로 연면적 1088㎡(329평)에 이른다. 타원형으로 휘어진 엘이디 벽을 이용해 대작 영화·드라마 촬영이 가능하다.

#2. 405㎡(122평) 넓이의 1스튜디오에는 멀리 지구가 보이는 달 표면이 직각의 벽 위에 노출돼 있었다. 한 방문객이 벽 앞에 서서 이동하자 앞에 있던 카메라맨이 그를 따라 움직이며 촬영했다. 옆의 티브이(TV) 모니터로 화면을 실시간 확인할 수 있었다. 피사체의 움직임에 따라 배경화면이 같이 움직여 평면이 아닌 입체적인 느낌을 줬다. 벽과 피사체의 이물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우주복을 입고 촬영한다면 컴퓨터그래픽(CG) 등 후반 작업이 간소화될 것 같았다. 주로 광고나 홈쇼핑 촬영이 이뤄지는 곳이다.

브이에이코퍼레이션의 버추얼 3스튜디오에서 영화 촬영을 하고 있다. 브이에이코퍼레이션 제공
브이에이코퍼레이션의 버추얼 3스튜디오에서 영화 촬영을 하고 있다. 브이에이코퍼레이션 제공

#3. 드라마와 소규모 영화 촬영이 이뤄지는 중간 크기(643㎡)의 2스튜디오는 인천국제공항 게이트가 배경이었다. 1·3스튜디오와 달리 바닥에서도 화면이 나오고 있었다. 트럭 정도의 무게를 견딜 수 있다는 바닥에 올라 출국장 배경으로 ‘셀카’를 찍었다. 지인들에게 보냈더니 “코로나 시국에 웬 인천공항이냐?”며 “해외출장 가냐?”는 답장이 왔다. 모두 속아버렸다. ‘이게 바로 버추얼 스튜디오의 위엄이구나.’ 순간, 엉뚱한 생각이 스쳤다. ‘이런 배경화면만 있다면 상갓집 간다고 거짓말해도 걸리지 않겠는걸?’

브이에이코퍼레이션의 버추얼 2스튜디오에서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을 배경으로 찍은 셀카. 오승훈 기자
브이에이코퍼레이션의 버추얼 2스튜디오에서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을 배경으로 찍은 셀카. 오승훈 기자

버추얼 프로덕션은 게임회사인 에픽게임즈에서 개발한 프로그램 ‘언리얼 엔진’을 기반으로 만든 화면을 대형 엘이디 벽에 띄운 뒤 그 앞에서 촬영하는 새로운 제작 시스템을 의미한다. 2019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공개된 ‘스타워즈’ 시리즈 <더 만달로리안>에서 사용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현실세계를 의미하는 ‘유니버스’와 가공·추상을 의미하는 ‘메타’의 합성어로 3차원 가상세계를 일컫는 ‘메타버스’의 부상과 함께 각광받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은 비대면 가상현실에 대한 관심을 폭발시키면서 버추얼 프로덕션의 장점을 부각했다.

특히 한국의 버추얼 프로덕션 기술·인프라는 할리우드와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김동언 브이에이코퍼레이션 대표는 “기존 영화 제작 방식은 굉장히 긴 후반 작업이 필요했다. 그래서 앞단의 흐름을 잘 모르는 기술감독과 시지팀이 중요한 결정을 후반부에 몰아서 하는 비효율이 발생했다”며 “버추얼 프로덕션 기술은 가상환경의 실감형 콘텐츠 기획과 제작, 실시간 시각효과 기술 전반을 아우르는 것으로, 엘이디 월을 활용해 실감형 콘텐츠 제작의 전 과정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일반 야외 촬영보다 더 자연스러운 빛을 구현할 수 있어 현실감 있는 연출이 가능한 것이 장점”이라며 “앞으로는 모든 결정의 주체가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중요한 결정을 할 수 있어서 작품의 완성도를 더 높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국내에서 최초로 시각특수효과(VFX)를 선보이며 300편의 영화·드라마·애니메이션 제작에 참여한 전문기업 모팩을 자회사로 인수한 브이에이코퍼레이션은 실감형 콘텐츠 제작 전반의 노하우를 가진 대표 기업이다.

비브스튜디오스의 버추얼 스튜디오에서 뮤직비디오를 찍고 있다. 비브스튜디오스 제공
비브스튜디오스의 버추얼 스튜디오에서 뮤직비디오를 찍고 있다. 비브스튜디오스 제공

후반 작업이 줄어드는 까닭에 버추얼 프로덕션은 제작비도 절감해준다. 브이에이코퍼레이션과 함께 대표적인 버추얼 프로덕션 기업으로 꼽히는 비브스튜디오스의 김세규 대표는 “로케이션에 직접 가지 않고, 스튜디오에서 어떤 공간이라도 불러와 촬영이 가능하기 때문에, 촬영 기간의 약 80%를 단축한다”며 “실시간 대응이 가능한 제작공정 프로덕션 디자인, 촬영, 시각특수효과 작업 간 하나의 통합된 형태의 제작 솔루션으로 30% 예산 절감 효과가 있다”고 했다. 방탄소년단(BTS)의 지난해 ‘마마’(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 무대와 <문화방송>의 브이아르(VR) 휴먼다큐 <너를 만났다> 제작에 참여해 이름을 알린 비브스튜디오스는, 지난달 빅히트뮤직 소속 그룹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뮤직비디오에 참여해 뛰어난 기술력을 선보였다.

버추얼 프로덕션은 엘이디 화면에서 나오는 자연광에 근접한 조명과 피사체와 연동된 배경 변경으로 더 실제 같은 촬영을 할 수 있다. 비브스튜디오스 제공
버추얼 프로덕션은 엘이디 화면에서 나오는 자연광에 근접한 조명과 피사체와 연동된 배경 변경으로 더 실제 같은 촬영을 할 수 있다. 비브스튜디오스 제공

버추얼 프로덕션은 촬영과 연출 외에 배우들에게도 이점을 준다. 김동언 대표는 “배우들 역시 기존 크로마키(그린스크린) 배경이 아닌, 실제 장소의 모습을 그대로 구현한 3D 배경에서 연기에 더 몰입할 수 있다”며 “종합적으로 제작에 투입되는 비용을 콘텐츠의 질적 향상 요소에 집중 투입할 수 있게 해준다”고 했다. 김세규 대표는 “스튜디오에서 제한된 인력으로 촬영이 이뤄지는 점도 코로나19로 현장 통제가 쉽지 않아진 상황에서 장점”이라고 했다.

이런 장점과 메타버스 열풍에 힘입어 버추얼 프로덕션에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가 잇따라 이뤄지고 있다. 씨제이이엔엠(CJ ENM)은 버추얼 프로덕션 사업 본격화를 위해 실시간 렌더링 기술을 보유한 에픽게임즈와 업무협약을 맺고 대형 버추얼 프로덕션 스튜디오를 연내 완공할 예정이다. 영화 <승리호>의 메인 시각특수효과를 담당해 높은 관심을 받은 덱스터스튜디오도 올해 상반기 43억원의 자금을 투입해 경기도 파주에 버추얼 프로덕션 스튜디오를 구축할 계획이다. 브이에이코퍼레이션은 최근 엔에이치엔(NHN), 컴투스, 제이티비시(JTBC)스튜디오, 엘지전자 등으로부터 전략적 투자를 받기도 했다.

버추얼 스튜디오의 장점은 촬영이 여의치 않은 공항 등의 보안시설을 실제와 차이가 없도록 구현해낸다. 브이에이코퍼레이션 제공
버추얼 스튜디오의 장점은 촬영이 여의치 않은 공항 등의 보안시설을 실제와 차이가 없도록 구현해낸다. 브이에이코퍼레이션 제공

업계에선 버추얼 프로덕션이 촬영 시스템의 혁신적인 변화에서 나아가 다양한 메타버스 사업으로 확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가령 영화 한편이 흥행해 팬덤이 생기면, 그 영화에 활용된 버추얼 이미지 등을 온라인 테마파크로 만들어 관객들이 새로운 콘텐츠로 소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콘텐츠업계를 중심으로 메타버스라는 이름의 거대한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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